3회차 부터의 상담은 아이아빠와 함께 진행하고 있다. 상담사 선생님은 내가 거부하면 할 수는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효과적인 상담을 위해 함께 하는 것을 추천한다고 했다. 여기서 거부했다가 법원에서 행여나 노력조차 안한다고 이혼에 불리한 영향을 줄까 겁이 나서, 한숨을 몇번이고 쉬고는 그러겠다고 했다.
내 굳은 얼굴을 풀어주려는 듯 다음 대화가 이어진다.
아이에 대해 이야기해볼까요? 아이는 지금 어떤 가요?
우리 아가. 40이 넘도록 이보다 더 좋은 것을 가져본 적이 없고, 이보다 더 탐나는 것이 없었던,
소중한 우리 아가.
- 우리 애기는, 너무 고마워요. 저랑 같이 살아줘서 정말 얼마나 고마운 지 몰라요. 아이가 힘들다는 생각은 안해봤어요. 제가 힘든 건 대부분 저 자체가 감당이 안되거나 상태가 안좋을 때이지 아이때문은 아니에요.
엄마가.. 이제 사십대 초반인데도 아이에 대한 태도가 참 아름답네요.. 일하며 키우려면 많이 힘들지는 않았나요?
- 요즘들어서 눈치가 빤하니, 엄마 미워! 엄마랑 안살아! 소리 잘하거든요. 그러면 저도 지지 않고 난 그래도 너랑 오래오래 살거야! 니가 아무리 엄마를 미워해도 소용없어! 엄마는 죽을 때까지 우리 아가를 사랑할거니까! 하고 우겨요. 전, 정말로 진심이에요.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렇게 할 거에요.
굳은 결심은 울먹임에 묻힌다. 꼭. 그렇게 하자. 정말 그렇게 해야지. 일단. 우리 아가한테 훌륭한 엄마가 되어주자. 나머지는 나중에 생각하면 되지.
상담사는 아이에 대한 내 태도를 크게 칭찬해주었다. 칭찬은 참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도 다른 사람에게 아이와 나에 대한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는 것이 마음이 붕붕 뜰 정도로 신이 났다.
친정부모님과도 이야기를 오래 깊이 나눈지는 오래되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얼굴을 보지만 이제는, 어떤 화제로 깊숙이 들어가는 것이 두렵다. 되도록 피상적인 대화만 하고 일상은 나누지 않았다.
마음놓고, 필터없이 하는 이야기. 그야말로 매일 무섭고 아프고 힘들다는 투정같은 필터없는 이야기는 캐나다에 있는 언니와 하는 잠깐의 카톡이 다였다. 아이와 단둘이 지내니 우리에 대한 피드백이 없는 생활에 익숙해졌다.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순간마다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그럴 땐 어떻게 하는 지.
아이가 어떤 예쁜 행동을 하고 어떤 포인트에서 서로 상처받았는지,
우리는 일상의 벌거벗은 시간들 속에서 서로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며, 어떻게 마음을 먹어야 하는 지에 대해.
밀접하게 개입하거나 돌볼 가족은 없다.
필연적인 외로움.
간결하고 산뜻하지만 외로운 미니멀리즘의 일상이었다. 누군가에게 우리의 이야기를 마음껏 쏟아내고 대화를 나눈다는 것을 상상도 못했는데, 이런 틈새 속의 세계가 있었구나. 적극적으로 오로지 내 이야기를 듣겠다는 사람과 일상을 조근조근 공유하는 것. 꽉 닫힌 돌틈 사이로 눈부신 가느다란 빛이 무지개처럼 비추고 있다. 이내 사라지겠지만 그래도 이 순간은 참, 시원하다.
소설 파친코에서 보면, 옥살이로 반송장이 되어 돌아온 이삭에게 아들 모자수가 엄청 착하고 예쁘다고 이야기하는 선자의 모습이 나온다. 아주버님네가 함께 살며 키워주지만 차마 조심스러워 그 앞에서 아이 예쁘다는 소리를 삼켜왔던 선자가. 남편이 죽기 전에 지나온 시간동안 생긴, 그리고 앞으로 생길 마음 속 작은 응어리를 풀어내는 모습.
사별이나 이혼 등등 배우자가 사라지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다. 우리 아이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아이 이야기를 주책없이 할 만한 대상인데,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을 상대가 사라진다. 색색으로 빛나는 아이의 순간은 누군가와 공유할수록 반짝거릴 텐데, 그럴 수 없다. 마음을 닫고 입을 닫고. 회색인 채로 지낼 수 밖에 없는 생활의 면적이 많아지는 것. 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역할을 감당해주는 것만으로도 사실 가족은 의미가 있는 공동체였다. 서로 공유하는 기억과 사실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우리는 서로 소중히 대해줄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인데. 근데.
나는 왜 그를 이토록 밀어내고 싶을까.
그는 왜 나에게 그렇게 했을까.
이걸 누구의 잘못이 시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이미 의미가 없어졌는데, 그래도 난 왜 계속 내 탓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은 걸까..
눈치를 보지 않고 아이와의 일화를 쏟아내고 나니 내 마음도 기죽을 펴는 것이 느껴지는데 이제 남은 상담은 그 보기 싫은 얼굴과 또 나란히 앉아서 받아야 한다니 기운이 쭉 빠진다.
정말, 정말 싫지만, 근데 상황이 이러니 억지로 하긴 하겠다는 나에게 상담사는 남편은 30분 일찍 와서 나와 겹치는 시간은 30분이내로 하겠다고 약속해 주었다. 그 약속을 믿고 오늘은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옮겨 상담을 받고 돌아가는 길.
걸어가며 꺼내먹는 호두과자 몇개로 점심을 떼우고, 30개짜리 한 상자는 사무실에 두어 오가는 직원들이 먹게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