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그 후(3)

영어공부

by 도미니

밤 9시가 되면 아이에 관한 대부분의 일과는 끝나고 이제 재울 시간이다.

그리고 나는 전화영어를 할 시간이다.


자기개발의 좋은 기회가 있어 운 좋게 시작하게 되었다. 첫 달에는 내 돈을 내고 등록해서 전화영어를 했었는데, 그 다음달부터는 회사의 공식적인 훈련기회를 활용할 수 있어 비용을 절약할 수 있었다.

단점은,

전에는 일주일에 2번 했는데, 이제는 매일 10분씩 해야한다는 것이다.

........

아니 일주일에 2번도 엄청나게 허덕이며 했는데.. 이게 말이 되나...? 난 정말 이걸 할 수 있을까...?

.... 그래도 내가 따로 하는 것보다는 말도 안되게 저렴하니 한 번 해보자. 정 준비를 못하면 그냥 맨몸으로 전화받으면 되지 까짓것. 10분 동안 말 제대로 못한다고 누가 때리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시작한 루틴은 이제 2달이 되었다.

그리고 참 힘들다.

아이의 저녁을 먹이고, 정리를 한 후에 과일과 간식거리를 들고 아이에게는 영상을 틀어준다.

재빨리 내 몸을 씻고 머리를 감고 나와서는

정리가 된 식탁에 앉아 그 날의 회화를 예습한다.

때로는 아무것도 못한 채로 그냥 앉기도 한다.

아이에게는 엄마 영어공부 해야하니까 10분만 절대 방해하면 안된다고 이야기를 하더라도 잘 지켜진 적이 없었다. 항상 일부러라도 노래를 크게 부르거나, 영상의 볼륨을 높이거나. 괜히 와서 말을 걸거나.

그래서 신경이 곤두선 상태로 전화를 받고, 끝나면 한숨을 쉬면서 나가 떨어지기 일쑤였는데,

왠일로 오늘은 아무 일도 없이 아주 성공적으로 전화영어를 마쳤다.

태블릿과 노트를 정리하고 영상을 보는 아이 옆으로 가서 끌어 안으니 눈은 TV에 고정한 채로 뭘 중얼중얼

응? 뭐라고 했어?

- 오늘은 엄마 방해 안했지..?

한 번더 힘을 주어 가슴에 꽉 안아보는 우리 아가.


엄마가 자신에게 집중하지 않고 공부하겠다고 허둥대는 것이 얼마나 마음에 들지 않을까. 떼를 쓸 땐 진정시키느라 무섭고 엄하게도 했는데.

또 이렇게 순전히 고분고분 말을 들어주니 이건 또 안쓰럽기가 그지없다.

엄마가... 열심히 공부해서 우리 아가랑 자유의 여신상 보러 가려고 그래. 잘 참아줘서 참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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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달 전 상급기관으로부터 갑작스런 전화를 받았다. 외국어를 어느 정도 하는 지 묻고는 두어달 후 일본에서 하는 국제회의에 참석하라는 이야기였다.

직장 내에서의 소문은 항상 빠르고 실체가 없어서, 일본어를 어느 정도한다는 나에 대한 소문은 벌써 몇년을 일본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으며 영어도 왠만큼 하는 초엘리트(?)가 되어 있었다. -_-

그래, 아무튼 그러면 거기에 맞춰야지. 하는 마음으로 급하게 전화영어를 등록하고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아침 6시부터 8시까지 두시간
그리고 저녁에 전화영어 10분.

5시 반에 일어나 눈을 비비며 어제 설겆이 해놓은 그릇들을 정리하고 건조기의 빨래들을 꺼내어 갠다. 건조기는 참 고맙지. 일일이 빨아 널어야 하는 수고를 덜어주다니.

매번 느끼지만 직주근접이면서 쿠팡 로켓배송건조기만 있으면, 남편없이 혼자서 일하며 애를 키울 수 있다.

하나님 고맙습니다.
중얼거리며 갠 빨래를 정리하고 커피를 한잔 내려 자리에 앉아 영어공부를 할라치면,

몹시 피곤하고.
눈도 잘 보이지 않고.
뭐가 왜인지 마음에 잘 들지 않고.
출근하기가 너무 싫고.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지만 그래도.

하루하루 하다보면 조금은 나아져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또 조금씩 연필을 쥐고 끄적거리며 하루가 시작이 된다.

ㅡㅡㅡㅡㅡㅡ

즐겁고 기대되었던 출장은.

갈수록 자료와 발표준비, 그리고 부담감에 치여서,

괜히 간다 그랬다.... 하는 후회를 조금 하였지만.

어쨌든 지금은 꿈처럼 무사히 다녀왔습니다.

아이는 부모님께 맡기고, 가기 전까지 아이 걱정도 태산이었는데, 가서는 발표와 질문에 대한 대답 연구하느라 아이 생각은 거의 하지도 못했어요.

그래도.

5일 내내 맛있는 조식을 마음껏 먹고.
열심히 일하고.
신혼여행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일본을 가보았고.
가슴에 맺히도록 아팠던 일본어를 마음껏 썼으며.
혼자라면 가지 않았을 맛집을 동료들과 다녀왔어요.

이제는, 아이 아빠가 저에게 했었던 모자란 말들을 잘 기억하지 않지만.

그래도 간간히 생각나는

너는 성격이 이상해서 사회생활도 못할거야. 라는 문장을, 보기 좋게 어긋나게 하고 있다는 생각에 서글퍼도 참 기뻤습니다.

오늘도 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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