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화요일은 바쁘다.
과장이 되고나서는 항상 유연근무를 해서 5시반에 집에 갈 수는 있지만, 그래도 과원들 모두 고생하는데, 땡쳤다고 훨훨 가기가 왠지 민망해서 밍기적거리며 이것저것 보고 나가기 마련이다 - 빨리 나가버리면 더 좋아하려나 ㅎㅎ
하지만 화요일은 그럴 수가 없다. 공부하기 싫어서 집에 가는 시간만 기다리는 아이처럼 준비를 다 하고 시계바늘을 눈으로 들어올리며 시간이 가길 기다리고 있다가 30분이 되면 부랴부랴 나가야 한다.
아이가 발레를 가는 날.
헐떡거리며 나가서 어린이집에서 발레복을 갈아입히면 꼭 그 차림새로 교실로 도로 가서 남아계시는 선생님들과 친구들 앞에서 한바퀴 빙 돈다.
그런 아이를 보며 민망함과 뿌듯함의 양가감정을 느끼다, 정신을 차려 아이를 빨리 가자고 몰아세워 데리고 나간다.
열심히 깜빡이 켜고 차선을 바꿔가며 운전을 해서 가면, 발레수업 5분 전.
완벽주의자인 따님은 발레하다가 쉬야를 하러 갈 수는 없다며 꼭 안나오더라도 확인은 하고 들어간다고 우긴다. 그렇게 화장실을 들러 나오면 항상 6시가 넘어 쿵쾅거리며 발레교실로 뛰어들어가고.
나는 한숨을 쉬며 대기 소파에 앉아 영어공부를 시작했는데,
한달전부터 여기에 하나가 더해졌다.
상담을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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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금 야금 늘어가다 예상을 한참은 벗어났던 소송비용에 괴롭던 <초기> 를 지나,
나에 대해 우주끝까지 적대적일 답변서를 읽어야 하고, 또 그것을 하나하나 읽고 분석하고 반박해야하는, 그야말로 수천개의 못 위에 누워 몸을 뒹굴리는 듯한 고통을 느껴야했던 길고 긴 < 중반> 을 지나.
8주가 넘는 상담까지 하고는.
정말 이혼이 가능하기는 한 걸까..... 이제 될대로 되라 하며 퍼져있던 < 막바지 > 에서
어렵게 눈을 뜨던 어느 날 아침.
상담사 선생님을 다시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혼을 결심하고, 공식적으로 따로 살기 시작하고, 마음을 닫고 그 얼굴을 보지 않았던 몇년간은 차라리 그런대로 괜찮았는데, 막상 상담과정에서 그의 얼굴을 마주하고 그 뻔뻔한 말들을 듣고 있자니 솟구치는 화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나와 얼굴을 마주하고서도,
상담사선생님까지 앞에 있는데도,
소장에 가득했던 거짓말들을 밝힐라치면 말을 돌려대는 뻔뻔함을 다시 겪으니 모든 걸 퍼부어대고 싶었고, 또 누군가에게 쟤 좀 보라고 쟤 저게 말이되냐고 실컷 말하고 판단 받고 싶기도 했다.
내가 뭘하고 있는 것인지, 왜 이런 지경에 처한 것인지 파악도 되지 않고 이유도 모르겠는 어느 날에는 새벽부터 일어나 앉아 문자로 그에게 악담을 퍼부었다.
3년이 꽉차도록,
나는 어차피 같이 살 것이 아니므로 그에게 무엇을 잘못했는지 추궁하지도 왜 그랬는지 따지지도 않았었는데.
아마도 상처가 건드려져서 일 것이다.
근근히 근근히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이를 안고 세찬 물살이 넘실거리는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었는데. 마침내 모두 건넜다 생각한 순간 잔뜩 웅크렸던 온 몸과 마음이 아파오기 시작했을 것이다.
너무도 당연한, 어느 정도는 예상된 결과 였다.
그나마 소송 중에는 그 분노를 에너지 삼아 질질 끌고 오기라도 했는데, 소송이 모두 끝나버렸다.
나는 청구한 만큼은 아니더라도 일정량의 재산분할을 받아냈다.
그것은 내 분노의 값이었다.
아무리 몇년 동안 그에게서 어떤 수모와 치욕을 받았더라도. 어떤 부당한 대우를 받았더라도. 이제 더이상 말하면 안된다는, 이것으로 너의 분노를 모두 없애라는 법원의 명령이고, 자본주의 세상의 도리였다.
나는 더이상 그에게 화를 낼 자격이 없다.
.... 근데.. 왜 계속, 화가 나는 걸까.
나는 변한 것이 없는데, 세상이 변했을 때.
세상은 변한 것이 없는 데 나 혼자 변했을 때.
관성의 법칙이 앞으로 나아가려는 나를 너무 오랫동안 잡고 있을 때,
또 관성의 법칙이 이제 멈추려는 나를 계속 앞으로 밀려가게 할 때.
내 마음은 아직도 소송이 지속되는 분노의 한가운데에 있는데 모든 것이 끝나버렸다는 현실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내 개인적으로는 건들 수도 없을 만큼의 도대체 이 방대한 이야기를, 도대체 이 복잡한 이야기를.
하지만 동시에 객관적으로는 고작 5년 살고 헤어져버린 정말 별것아닌 평범하고 능력없는 부부의 이야기를 누구에게 어디서 부터 풀어낼 것인가.... 막막했을 때 떠올린 상담선생님에게 연락을 해보니,
재판이 끝났다면 상담이 가능하다는 답을 주셨고.
드디어 오늘 처음 다녀온 날.
하나님, 이 얼마나 아름다운 날들인가요.
우리 짹짹이가 발레복을 입고 종종거리며 발레를 배우러 들어갔어요.
저는 일하는 엄마에요. 열심히 일하고 아가를 발레를 배우게 해주러 운전을 해서 데리고 온
제가 그렇게도 바라던 멋있는 일하는 엄마에요. 하나님.
눈에 또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서 영어단어가 잘 보이지 않으면, 그저 손으로 쓱 닦으면 된다.
아무것도 신경쓰지 말자. 앞으로 나아가고 있으면,
다 괜찮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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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전남편 욕을 실컷 하고 싶어 간 상담이었는데,
막상 처음 나온 이야기는 친정부모님 때문에 힘들었던 그 시간들이었어요.
역시 사람이란, 괴로움을 인지하는 것도, 그 괴로움의 원인을 인지하는 것도 헛다리인 경우가 많습니다.
법원상담과정에서는 이혼말고는 아무 문제가 없는 척을 했었거든요.
보조양육자가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행여나 아이를 빼앗길까봐
저 사람만 내 인생에서 나가면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지금도 너무 비참해서 입에 담고 싶지 않은 가혹했던 부모와 나의 관계를 숨기며,
얼마나 좋은지, 내가 얼마나 잘 지내고 있는 지를 강조했었어요.
아이 봐줄 사람이 없어서 매일 7시가 넘어 혼자 남아 시들어 가는 아이를 데리러 간신히 뛰어간 주제에.
저녁 회식에 아이를 데려가기 위해 도시락과 놀이 가방까지 싸가지고 나온 날에도.
그리고 앞으로 회식이 한달에 6번이 더 남아있는 그 절망적인 날들 중에도.
예배를 드리기 위해 아이를 업고 지하철과 버스를 오르락 내리며 갈아타고 왕복 4시간 거리를 다니면서도.
관사는 내 집이 아니므로 육아휴직이라도 내면 당장 오갈 곳이 없는,
그 말도 안되는 날들이었음에도.
눈빛과 목소리에 힘을 주어 가며
저는 회사에서도 아무 문제가 없이 편안하게 잘 지내고 있으며, 아이를 키울 여력이 충분히 된다고.
우기던 과정에서 아마 모든 힘이 다 소진되었던 것 같습니다.
거짓말해서 죄송해요 선생님. 아이를 빼았기면 안되잖아요.
우리 아기를 빼앗길까봐. 그래서 그랬었어요.
엉엉 울고, 모든 전후 사정을 아는 누군가의 따뜻하고 정확한 위로를 받고 보니.
또 한결 괜찮아 지고 있습니다.
오늘도 참.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