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터덜터덜 힘없는 걸음을 걷고 있는 이유는,
나는 참 매번 느끼지만 계산에 약하다.
참 이상하다. 어릴 때부터 수학은 잘했는데, 그것과 현실에서의 이재는 완전 다른 이야기인가보다. 숫자는 좋아하지만 그 숫자에 경쟁이 개입되고 현실이 되는 순간, 전혀 보이지 않던 날개가 슬슬 돋아나더니 내 눈 너머로 날아가 사라져 버린다.
결론은 돈버는 재주가 전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면으로 항상 시댁식구들이 부러웠다. 시작은 친정과 비슷했던데, 터 잡은 곳의 땅값이 오르고... 또 시아버님이 일찌감치 부동산에 관심을 가지셔서. 그래도 어려웠겠지만 아무튼 빚 걱정없이 살아가는 중산층이라는 것이 참 부럽고 우러러 보였었다.
그건 지금도 그렇다. 분명한 재주이지 않은가.
하지만 본인들의 그런 장점으로 그런 재주가 없는 나를 바보 취급하는 것은 참 힘든 일이기도 하다.
돈이 많은 것은 분명히 참 좋은 일이고 편리한 일이지만 그저 장점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것으로 누구를 무시하고 억압할 이유는. 되지 않는 것 아닌가.... 하지만 이미 세상에서 돈의 역할은 거의 전부가 되어버려서 참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튼 간에.
나도 돈이란 것을 좀 벌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줄곧 한다.
· 아이와 영어학원이 끝나고 숙제를 마치기 위해 카페를 찾아들어가면 카페가 있는 건물을 천천히 본다.
나도 이런 데에 집이 있으면 좋겠다.
· 아이를 아빠에게 보내고 버스에서 내려 최근에 재개발이 된 큰 아파트 단지를 지나 걸어가려고 하면 못내 아쉽다. 어릴 때 놀러다니던 동네였는데, 여기 뭐라도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그럼 지금 나도 이런 곳에 살 수 있었을까.
· 회사 근처의 박물관을 아이와 함께 가보면 개발되기 전, 1990년대의 강남 모습이 역사로 나온다. 그리고 같이 국민학교 다니던 단짝친구가 이쪽으로 이사간다고 하며 전학을 갔던 일도 떠오른다.
그 친구 집은 부자가 되었을까. 그 때 우리 엄마아빠도 여기에 터를 잡았으면 좋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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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알아보고 있다.
넉넉하게 산 기억은 없지만 그래도 항상 우리 집은 있었다. 친정은 가난해서 빚을 갚아야 하지만 어쨌건 집이 있었고, 결혼해서 들어간 시댁도 감사하게도 집이 있었다. 철부지처럼 결혼을 했으니 집을 알아보거나 큰 거래를 해야하는 일은 없었는데, 그 너무도 당연한 어른이 되는 과정을 이제 겪을 때가 되었다.
관사에 사는 일은, 너무도 고마운 일이지만 쉽지가 않다. 마치 큰 기숙사 같아서 일단 집에 들어가면 간소한 차림으로 나오는 것은 어렵다. 직장의 인간관계가 그대로 집으로 이어지므로 흐트러진 모습을 보일 수가 없는 것이다.
주말이라면 아이와 집에서 뒹굴다 아이스크림을 사러 나오고, 동네 산책도 하고 그런 것이 일상이지만, 관사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발자국 나서면 계속 직원들을 만나게 되고, 그보다 더 걱정되는 것은 나는 인식하지 못하지만 누군가는 우리를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냥 직원이었다면 그래도 나았을까.. 어쨌든 간부진이니 예의주시될 수 밖에 없는 부분들이 있었고, 그들의 눈에 어떤 모습이 보일 지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라 아이와 한들한들 동네를 거니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었다. 또 지나다니며 마주치는 사람마다 인사를 하다 지쳐, 아이의 입도 이만큼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늘, 주일 오후 관사로 돌아올 때에도 바로 오지 못하고 중간에 다른 곳을 들러 최대한 놀다와야 했다.
일단 관사에 한번 도착하면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 된다. 일단 안에 들어오면 편안하지만 밖으로 나가는 것은 또 다른 마음먹음이 필요한 반쪽짜리의 특수한 공간은 엄밀히 말하면 집이라 할 수는 없다.
이래저래, 지금 집이 필요하다.
하루라도 빨리 서울에 집을 장만하는 것이 이득이라는 것은 모두들 공감할 것이다. 남편이 소장에 쓴대로 아이와 전국을 떠돌아다니더라도 내 근거지는 있어야 마음이 편한 것이 인지상정이며 무엇보다도
재테크를 해야한다.
화폐가치는 계속 떨어질텐데, 통장에 있는 작은규모의 목돈을 저 상태로 둘 수는 없었다. 이미 집값이 많이 올랐다고는 하지만 지금이라도 무언가 하지 않으면 오히려 기회가 더 적어질 지도 모른다.
지금 뭐라도 해놓아야 하는데...어떻게 해야하지 뭐가 맞는 거지. 머리를 싸매고 괴로워하다 집을 사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근데... 문제는 지금 내 사정으로 집을 살 수나 있을까.
미지의 세계를 헤매고 있다.
경매로 하면 조금 싸게 집을 살 수 있을까. 순진한 마음으로 여러번 궁리하고 시도하다 큰 손해를 입기 직전에 멈추기도 하고,
그나마 가격이 맞는 집을 찾아 부동산 사무실을 들락거리며 보러 다니다가 이런 저런 이유로 놓친 것도 몇번.
그 때마다 마치 모든 가능성이 사라진 듯 절망스러웠다가 기도를 지팡이 삼아 아주 간신히 힘이 다 빠져버린 비관에 절은 무릎에 소망을 넣어가며 일어섰다.
내 상황에 가능한 집은 어느 정도인지, 대출은 얼마나 받을 수 있는 것인지.
처음으로 내 소득이 얼마인지 증명서를 떼어보고,
아.. 나는 한부모라도 소득이 높아서 지원대상은 아니로구나 깨닫고.
그러면 받을 수 있는 다른 혜택은 무엇이 있는 지 찾아보고.
또 집을 알아보고. 이걸 사는 것은 맞는 선택일까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대출을 도대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인지 계산해보고.
그러다 정책이 바뀌어 또 다시 리셋하여 알아보고.
모두, 순진하고 멍청한 나로서는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을 넘어 외면하고만 싶은 영 모르는 분야라서.
발을 질질 끌며 등떠밀리듯 알아보고는 있지만 얼굴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하루 종일 소진하다가
둘째 주 토요일 저녁 아빠를 만나고온 아이를 만났다.
아가, 엄마가 업어줄까?
생각치도 못했는 지 졸려 있던 눈이 번쩍 뜨이는 우리 아가. 응! 하는 대답이 나도 참 반갑다.
엄마, 근데, 전에는 안아줄 수 없다고 했었는데 요즘은 왜 갑자기 날 안아주고 싶게 된거야?
아이는 안기는 것을 참 좋아한다.
생각해보면 작년초까지만 해도 자는 아이를 그대로 옷을 입혀 안고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곤 했었는데,
아이가 크면서 내 손목도 체력도 어려워졌고, 무엇보다 아이의 인성에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을 느낄 계기가 몇번 있어서 안아줄 수 없다고 단호하게 대한지가 1년이 넘었다.
그래도 할아버지만 보면 업히고 안기고 하는 버릇은 여전했는데, 요근래 엄마가 자주 안아주니 그게 이상했구나 ㅎㅎㅎ
00아. 엄마가 너 안아주기 싫어서 안아주지 않은 게 아니야.. 엄마도 00이 안는 거 좋아해.
근데 이제 너도 커서 어른한테 안기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거든. 그리고 엄마 손목도 너무 아프기도 하고.
사람이 원래 크면서 달라져야 하는 것들이 있는데 이것도 그것 중의 하나라서, 그래서 못 안아주는 거야.
엄마 진짜 나 안아주는 거 좋아해?
그러엄. 00이를 안으면 엄마가 용기가 생기니까. 뭐든 지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서 엄마는 정말 우리 00이 안는 거 좋아해. 정말이야.
우리 아가랑 같이 살 집을 살 용기.
험하고 무서운 세상을 살아낼 용기.
너와 나를 서로 지켜내고 성장할 용기.
묵직한 아이의 무게가 손목의 아픔으로 전환되면,
내가 이 아이를 잘 지켜냈구나, 잘 먹이고 잘 입혔구나 마음이 놓인다.
이제까지도 잘해왔으니, 앞으로는 더 잘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용기가 솟아서.
아이가 모르는 눈물은 다시 삼키며 집을 사보자. 어떻게든 방법을 만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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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가을이에요.
오늘은 아이가 아빠에게 가는 날이라 학원에 들여보내고 지난 6개월 간 가지 못했던 피부과도 가려고 했는데. 날씨도 너무 좋은데.
또 너어무 힘이 들어 그냥 집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대부분의 엄마들이 면접교섭을 위해 아이를 보내고 나면 이럴거라고 생각해요.
허전해서 쉬지도 못하고, 하고 싶던 것이나 계획했던 것은 기운이 없어 하지 못하고.
그저 어정쩡하게 흘러가는 좋은 시간들을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인생이 다 그렇죠.
모두들 즐거운 가을 주말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