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그 후 (6)

엄마

by 도미니

더운 여름 동안은 열심히 상담을 다녔다.

일이 있으면 한주씩 건너뛰긴 했어도 거의 매주 화요일마다 점심시간을 포함하여 외출을 달고, 다른나라 여행을 가듯 나갔다 왔다.


경직되고 조용한 회사와는 영 다른 세상에서 평소에 보이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지금의 나에게 절실히 필요하다 해서 하면서도, 사실 매주 나가는 것은 몹시 피곤한 일이기도 하다. 점심시간은 유일하게 방문을 닫고 낮잠을 조금이라도 자는 기회인데 화요일은 바쁘게 움직이느라 그럴 틈이 없다.


그냥 처음 가서 한번 엉엉 울면 되었지 내가 마음먹기 나름이지 이렇게 길게 받아야하나 하는 생각도 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인생에서 큰 숙제 하나를 마쳤으니, 현명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 해두어야지 하는 마음이었다. 일상적인 이야기들로부터 시작해서, 결혼 생활 이야기로 가고, 다시 그 전의 어린 시절 이야기길고 길었던 수험생활 이야기까지. 최근의 나는 이혼과 새로운 사회생활과 육아에만 집중되어 있었는데,


맞아. 이런 일이 있었지. 이런 생각을 했었지.


십년도 넘은 일인데도 아직도 말하기 전부터 눈물이 차는 것을 보면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일이었구나 다시 한번 느끼기도 하고, 또 와 참 큰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구나 하는 사건들도 있었다.

오늘, 그 상담이 끝났다.


총 합하여 15번을 진행했고, 중간에 건너뛴 주도 있으니 거의 4달 넘게 화요일마다 바쁘게 오갔고, 요즘 내 인생의 시계가 그렇듯 모든 일은 빠르게 진행되어서 처음 과장이 되고 안절부절 하던 시기도 조금 지나고 일찍 끝나 아이를 데리러가는 일상에서 느끼던 즐거움과 아직도 고생하는 이전의 과원들에 대한 미안함의 양가감정도 무덤덤해졌다.


크고 중요한 일을 또 하나 마친 것이다.


상담의 말미에 선생님은 그간 우리가 나눴던 이야기들의 주제를 하나하나 짚어주셨다.


이혼의 마무리와, 회사에서의 존재감 걱정과, 지나치게 낮은 나의 자신감과 또 자기 수용에 대해서

어떤 것이 달라지고 어떤 방향으로 가기 원하는지.


아이에게 어떤 엄마가 되고 싶으세요?


상담의 마지막 질문. 어떤 엄마. 그치. 내가 엄마였지.

또 예상못한 눈물이 앞을 가린다.


지금이야 어리니까 제 옆에 붙어있겠지만요, 나중에 커서도 저랑 있는 걸 즐거워할 수 있도록. 아이가 엄마는 정말 답답하고 이상해. 라는 생각들지 않도록. 열심히 살필 거에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마음이 드는 지. 어떤 게 필요한 지. 언제든 달려와서 상의할 수 있도록 해주려고 해요.


... 아마 지금 그게, 00씨가 엄마와 맺고 싶었던 관계일 거에요. 꼭 그렇게 해주세요.


이혼 상담으로 시작했는데, 결론은 역시 엄마였다. 우리 엄마는 영리하고 성실하고 좋은 엄마였지만, 나는 엄마의 자랑거리로 존재하는 아이였어서, 자랑거리가 되지 못했을 때에는 엄마와 아빠에게 모두 모진 말과 매를 맞았다. 그래도. 엄마의 바탕자체가 나쁜 사람은 아니었기에 중간 중간 그 사랑을 느끼고 애정을 먹으며 자라기는 했을 것이다.


하지만 먹어도 먹어도 늘 부족했던 사랑.


누군가 조건없이 나를 품어주고. 그 모습 그대로 수용해주기를 끊임없이 바라는 근원적인 마음

부모의 기대에 부응해야 예쁨받을 수 있다는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해버린 눈치보는 마음이 뒤엉켜

알수 없는 모양이 되었겠지.


인생에서 제일 스트레스 강도가 높다는 이혼을 저지르면서, 소송의 과정이 몹시 고통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힘들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었다.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너무 예쁜 아이가 내 손에 들어와 있었고, 또 과정이야 어쨌건 바라던 시험에 붙어서 어엿한 사람구실을 하고 있다. 이건 모두 내 결혼을 통해 얻은 성과이므로 이혼이 힘들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


하지만 부모와의 절연은 그 고통의 질과 강도가 아예 다른 차원이었다.


처음 소송을 시작할 떄 변호사는 양친이 생존해 계시냐며, 그런데 뭐가 걱정이냐고 이야기했었다. 부모는 인간 모두에게 그런 존재일 것이다. 어쩄든 내 편. 내가 뭘해도 내 편.


소송을 시작할 떄 재산분할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알았을 때에도 제일 처음 떠올린 것은 친정의 빚이었다 아. 나는 여태까지 엄마아빠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았었는데, 내가 이 재산분할로 해결해줄 수 있겠구나. 이렇게 엄마랑 아빠랑 애기키우면서 살아야겠다 생각했었는데.


그랬던 부모가. 그 뜨악한 얼굴로 나에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소리를 지르며 욕을 하며 월급이상의 돈을 요구하다니. 그걸 거절했다고 패륜아 취급을 하다니. 그리고 당신들이 먼저 연을 끊었음에도 끊임없이 본인들 욕구에 따라 아이를 보겠다고 불쑥 불쑥 나타났던 그 상황들이.

혼자 아이를 데리고 어떻게든 그 위기들을 넘어가 보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시절들이.


이제까지 40넘게 살면서 받은 상처 중의 가장 탑클래스로 마음의 흉터로 남아 버렸다.


이혼소송을 하며, 갓 입사한 회사에 적응을 하며, 만4세 아이를 키웠다.


새벽출근을 해야했던 어느 날은 캠을 켜놓고 출근을 했는데, 미처 캠 화면을 보지 못하고 서둘러 아이가 일어날 시간에 맞춰 관사로 돌아오니,

집에 아이가 없었다. 이럴 리가 없는데. 침대에 일어난 흔적이 있고. 아이가 없었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다시 뛰쳐나왔을 때 아파트 공동현관에서 마주친 아이는 까치발을 하고 공동현관 키를 누르려고 애쓰고 있었다.


어..엄마.. 내..가 일어나보니 엄마가 없어서.. 찾으러 나왔다가.. 근데도 엄마가 안보여서... 다시 들어가려고 했는데.. 내가 이 번호를 몰라.. 그리고 키가 안닿아..


끅끅 거리며 이야기하는 아이를 안고 엉엉 소리내어 울고 싶은데, 울 수가 없다. 아이를 진정시켜야 하니까 그럴 수가 없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정말 별 일 아닌 것 처럼.


어 그랬구나. 엄마 잠깐 회사 급한 일이 생겨서 갔다가 오려고 했는데, 중간에 일어났어. 이제 괜찮아. 아가. 아이구 놀랬구나.


등을 쓸어주며 더 크게 우는 아이를 안고.


일어났을 때 엄마가 없어서 얼마나 놀랐을까. 밖으로 나가서는 얼마나 당황했을까. 다시 들어갈 생각은 또 어떻게 했을까. 중간에 무슨 일이 나지 않고 이렇게 만나서 얼마나 감사한가


한참을 곱씹으면서도 이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하지 못했다.


소송 중이라 잘못하다 내가 아이를 키울 형편이 안된다고 누가 뺏어가 버릴까봐. 누구한테라도 말을 하면 그 말이 판사나 아이 아빠에게로 들어가 양육권에 불리해질까봐.

그 모든 험한 일들을 혼자 씹어 삼켰는데, 소화는 되지 않은 채로 토하지도 못하고 그래도 여기까지 무사히 왔네.


이제는 어머니가 많이 달라졌다고 하셨죠..?


네 선생님, 사실 저는 아직도 부모님이 신뢰가 가진 않지만. 엄마가 많이 달라졌어요. 전에는 본인이 하고 싶으면 제가 아프거나 말거나 윽박질러서 하게 만들었는데, 정말 이혼 초반에도 그랬었는데, 이제 그러지 않아요. 저랑 아이 상황에 맞추라고 하시고, 이번에 재산분할 받은 것도 빚 갚아주겠다고 했더니 그러지 말라고 하시더라구요. 하지만 저는 그래도 믿지 않아요. 영원히 믿지 않을거에요.


00씨의 어머니가, 이제 제 궤도를 찾으신 것 같아요. 어머니로서의 제 궤도 말이에요.

아마 전에는 본인이 불안하니까 그 불안이 그렇게 드센 모습으로 표출되었을 테지만,

여러가지 일을 겪으면서 깨달으신 거죠.

지금이 어머니의 어머니로서의 본 모습이니 조금 마음 놓으시면 어떨까요.


엄마가 너무너무 싫지만, 그래도 생각하면 안쓰러운 엄마. 우리 엄마.

나는 우리 아가한테 어떤 엄마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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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인간으로 태어나 사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입니다.

챙겨야 할 것이 참 많아요. 그 과정에서 상처를 주고 받는 일이 부지기수이지요

모든 것에 희망이 없어 보일 때면 늘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을 떠올립니다.

외롭고 빡빡한 하루하루에도,

제가 아이 재우고 공부하느라 앉아 있는 식탁의 맞은 편에 예수님이 오셔서 마주보고 있다. 생각해요.

그래, 뭐가 그렇게 힘드니. 뭘 어떻게 하면 좀 괜찮아 질거라고 생각하니?

부드럽고 힘있는 물음에 대한 답은 언제나, 지켜주셔서 고맙습니다. 에요.


그러고서는 또 이렇게 옛날의 상처에 연연하지만 이 또한 이런저런 공급을 주셔서 어떻게든 살아내게 해주실 거에요.


오늘도 너무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추석연휴 되시길 기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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