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그 후 (7)

아빠와 엄마 사이

by 도미니

엄마 어제 내가 비행기에서 떨어지는 꿈을 꿨어.

어린이집 친구들이랑 있는 데 내가 쿵 하고 떨어졌어.


아이는 이제 만 6세가 되었다.

만 2세에 말이 급격히 늘 듯, 지금은 글이 느는 시기인지. 이제 일기도 한 페이지를 꽉 채워 쓸 줄 알더니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도 생기고 있다. 일기를 쓰다 말고 느닷없이 시작한 꿈이야기는 제법 스토리 라인을 갖추고 거기에 유사한 기억들이 붙어가다가 곧잘 삼천포로 빠지지만, 그게 또 아이와 하는 대화의 즐거움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 지 떠볼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오..! 위에서 떨어지는 꿈을 꾸면 키가 크는 건데!


... 근데 엄마 나 이런 기분 전에 또 느껴본 적이 있어. 비눗방울을 만지고 싶은데 금방 터져버렸을 때랑, 엄마랑 헤어질 때가 그랬어.


색연필로 쓱쓱쓱 열심히 색칠을 하면서 무심히 하는 말이었다.


... 엄마랑 헤어질 때? 어린이집가고 엄마는 회사 가느라 헤어질 때..?


아니, 아빠 만나느라 헤어질 때.


언제나, 듣고 싶지 않았던 말.


애써 외면해보고 다른 상황을 만들어 봐도 현실은 늘 힘이 세다. 그래 너 또 이겼다. 잠을 자도, 술에 취해봐도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은 항상 이렇다.


나와 아기는 둘이 있어 더없이 행복하고 즐겁지만, 대부분의 가정이 갖추고 있는 구성원 한명이 없다는 것은 차가운 날 술술 바람이 들고 나는 것으로 여실히 그 차이를 보여주고 만다.


이럴 때는 방법이 없다. 그냥 정면돌파할 수 밖에.


아.. 우리 애기 엄마랑 영어학원에서 헤어질 때 말하는 거구나? 아빠가 데리러 오는 날이라서 엄마가 안녕하고 갈 때. 그 때 슬펐어어... 아직도 슬프지 그치? 엄마도 그래. 엄마는 우리 아가 밖에 친구가 없잖아. 00이랑 노는게 엄마는 제일 즐거운데. 그래서 아빠한테 00이가 가는 날 너무 슬퍼. 근데 그래도 어떡해. 엄마랑 00이랑 같이 사니까 가끔은 아빠도 만나야지 안그러면 아빠가 너무 쓸쓸하잖아.


덜컥 내려앉는 마음을 감추고 응 그렇구나. 하고 정말 괜찮아지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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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 리디아의 정원 > 이라는 책이 있다.

1936년 경제대공황으로 형편이 좋지 않아진 리디아네가 9살짜리 리디아를 빵집을 운영하는 삼촌에게 잠시 보낸다.


오래전부터 집에 있었고 이따금씩 읽어주었었는데, 몇달 전 잘자리에 아이가 그 책을 들고 왔다.

내년에 학교들어가는 우리 애기! 문장력이랑 어휘력이랑 독해력이랑 다 갖춰야하니 글밥 많은 책은 더 반갑다 열심히 읽어줘야지!


등장인물들에 맞는 성대모사까지 하며 열심히 읽고 있는데, 아이가 진지하게 물어본다.


엄마, '형편' 이 뭐야?


응 형편은... 리디아네 아빠가 일을 못해서, 월급을 못 받잖아. 그래서 장도 보고 전기요금도 내고 할 돈이 없는 거야. 그런 걸 형편이 좋지 않다고 해.


우리 집은 '형편'이 좋아?


응 그치. 우리 집은 하나님이 너무 감사하게 엄마를 일하게 해주셔서 월급을 받잖아. 그래서 형편이 좋지. 그래서 엄마는 우리 00이 아무데도 안보내고 엄마가 열심히 키울거야. 엄마 보물이니까.


보들보들 땡땡하게 균형잡혀 가는 아이의 엉덩이를 두드리며 다정하게 이야기하는데, 아이가 갑자기 정색을 하며 일어나 앉는다.


엄마도 나 보냈잖아.


응? 엄마가? 어디를 보내?


엄마도 아빠한테 나 보내버렸잖아.


....


인생의 크고 작은 균열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앞을 바라보고 가다보니 보지 못할 뿐이다. 밑에 커다란 틈이 있더라도 내가 모르고 방방 발끝으로 뛰어다니며 넘을 수 있다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딛지 않으면 된다. 외나무 다리이더라도 이게 숲속 오솔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콧노래를 부르며 그 길만 따라 갈 수 있다.

대부분의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좋은 것만 보면 좋은 것으로 보인다.


아이와 에너지 소모없이 너무도 당연히 예배드릴 수 있는 일상, 밤에 루틴으로 큐티인을 할 수 있는 뿌듯함, 학원이 끝나고 눈치볼 필요없이 자유롭게 놀러가고, 추석 긴 연휴에 대비해서 친정부모님과 여행계획을 편하게 짤 수 있는 모든 것들이.


그게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은. 이렇게, 우리가 한부모 가족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될 때마다 또 한번 찌릿하게 마음에 들어와 박힌다.


맞아 내가 가고 있는 길이 오솔길이 아니었지. 밑에는 천길 낭떠러지가 있었어. 여기서 우리 아이를 떨어뜨리면 어떻게 되나. 아니 내가 발을 헛딛으면 어떻게 하지. 재빨리 아이 손을 놓아버려야지. 나는 떨어져도 이 아이는 제대로 끝 마칠 수 있게 빨리 손을 뿌리쳐 버려야지. 아.. 근데 너무 무섭다 정말 너무너무 무섭다. 혼자라도 무서웠을 테지만, 그래도 아이가 있어 더 힘을 내어 갈 수 있겠지만, 그런데도 한편으론 이 작은 사람까지 온전히 간수해야한다는 것이 더 어렵기도 하다 정말.


어떻게 하면 좋지. 정신을, 정신을 가다듬고.


00아.. 엄마가 그걸 아빠한테 보냈다고 생각하는 구나... 그렇게 생각했었어?


우리 참 분위기 좋았었는데, 엄마는 오늘 일도 잘 마쳤고, 노래가사처럼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고, 소고기 구워서 영양가 있고 맛있는 저녁을 먹고 뽑기도 했고, 새로 빨아 좋은 냄새가 나는 잠옷을 입고, 엄마 팔을 베고 살냄새를 맡으며 동화책을 읽고. 아무튼 너무너무 좋았었는데,


아이는 울기 시작했다.


얼굴이 일그러지며 우는 아이를 보며 차마 더 말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항상 인간관계에서 깨닫는 것은 내 의도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 내 의도와 상관없이 상대방이 어떻게 느끼느냐가 중요하다. 그는 항상 나에게 본인은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뻔뻔히 말했다. 네 의도는 중요하지 않아. 의도없이 그런 행동을 했다면 넌 무뇌아이고, 니가 의도를 가지고 그랬다면 그건 악함이야. 어느 쪽이든, 우린 같이 살 이유가 없어


난 한번도 아이가 힘들어서 아빠한테 보낸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항상 같이 있고 싶지만 아빠도 만나야 하니까. 하는 마음으로 보냈는데,


널 보내고 엄마의 마음은 늘 아팠는데.


어느 비가 오는 토요일 오후에는


아이를 영어학원에 넣고, 청첩장을 준다는 후배를 만나 밥을 먹고 다시 비가 내리는 광화문 광장에 우두커니 서서.


도대체 뭘 해야하나 어디로 가야하나 우리 아기는 잘 있을까. 너무너무 보고 싶다. 생각하며 어찌 할바를 몰라 울면서 버스를 탄 적이 수두룩 한데.


엄마는 세상 누구보다 너랑 있는 시간이 정말 즐거운데.


울음이 그치고 잠든 아이를 보다가 아이의 발치에 등을 기대고 앉아 동글동글 아이의 발가락을 만지며.


방금 전 이 이야기를 들은 것이 꿈이었더라면, 생각한다.


괜찮다.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오겠지. 이런 날들은 얼마든지 있을테니 익숙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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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사실 어쩌면, 이주에 한번 6시간이라도 쉬고 싶은 마음도 없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빠랑 놀고 이따 만나...! 하며 아이를 학원에 들여보낼 때마다 한참 그 뒷모습을 보고 있었어요.


늘 쓸쓸한 어깨로 기운을 억지로 그러모아 아이가 없을 때 할 수 있는 필요한 일을 했을 뿐 기쁜 적은 없었는데.


엄마가 자신을 아빠에게 보내버렸다고 하는 말을 들으니 너무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작은 마음으로 상황을 그렇게 해석할 수 밖에 없었을 시간들이 미안하고 또 속도 상했습니다.


하지만,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기 마련이니까요.

부부싸움의 살얼음판에서 오들오들 떠는 숙제는 안겨주지 않았으니 그래도 좀 아이에게 떳떳해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이후로 더 많이 너와 있어 엄마가 참 기쁘고, 엄마는 우리 아가와 함께 노는 시간이 너무너무 재미있다는 것을 표현해요.


항상 부족한데도 분에 넘치는 칭찬과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상완근이 하나도 없어 턱걸이나 매달리기는 절대 못하지만, 22키로의 아이들을 안고는 걷기도 뛰기도 잘하는 엄마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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