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쿠키
얼마 전 자동차 정비 도서 하나를 구입했다. 아무도 제대로 대답을 못한다면 그냥 내가 배워버리겠다.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사람이란 참 못난 존재인 것이, 어떤 분야에서 문외한이니 계속 그것을 도와줄 존재를 찾게 되고, 그럴만한 존재가 주변에 없으니 결국은 신세한탄으로 이어진다.
내 최대의 약점은 내가 가지지 못한 것.
난 남편이 없어서 그래. 그래서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거야. 왜 나만 남편이 없어. 다들 남편있어서 좋겠다.
맹세하건대, 저런 생각을 많이 하지는 않았다.
그저 아무것도 모르겠어서 슬프고 외로운 와중에 아주 조금 마지막 끝자락 대략 3% 정도는 했던 것 같다.
이성을 되찾고 생각해본다.
내 전남편은 원래, 저런 것을 못한다. 그가 그나마 했던 것은 운전이었고, 나는 그 떄 운전조차 못하는 애였으니 그가 나보다 나아보였을 것이다. 같이 살았어도 이 모든 것은 나혼자 해야하는 작업이다. 그러면서도 옆에서 댕댕 거리고 놀며 잔소리나 해대니 오히려 속이 더 문드러졌겠지.
상황을 받아들이자. 그리고 내 얼굴을 인정하듯 내 인생의 생김새도 받아들이자.
모르는 것은 알면 된다. 잘 못하는 것은 하면된다.
결국은 내가 하기 귀찮아서 누가 해줬으면 하는 마음에 회피하고 싶어서 이런 저런 핑게를 대고 있는 것 아닌가. 남들은 누군가 해주더라도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모두 해야하는 사람이니 그것을 받아들이면 된다.
자동차건 뭐건 내가 알면 더이상 무섭지 않을거야.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복음 8장 32절)
내 결심은 과연 진리였던 것일까.
하나님은, 내가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며 결심하는 그 모습이 마음에 드셨을까.
앞뒤로 면벛이나 왔다갔다하며 책을 읽고, 엉금엉금 기어 나에게 맞는 자동차 수리점을 찾아내고, 또 맡기고 이것저것 맞춰서 1년이나 지나서야 중고차 수리를 하고 났지만,
모르는 영역은 딸꾹질처럼 자꾸자꾸 나타난다. 멈추질 않는다.
이번엔 대출이라는 큰산이었다.
집을 계약한 것이다.
누구나 첫 집을 살 때 그렇듯이 휘청거리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어릴 때부터 살던 동네의 작은 집. 한 때는 친구집이 있는 곳이라 친구 엄마의 공부방으로 매일 드나들던 곳에 적당한 매물이 나왔고, 지금 겉에서 보기엔 다 쓰러져가지만 여러가지 조건이 들어맞는 곳이었다.
내 예산으로는 모두들 선호하는 아파트를 살 수는 없었고, 장차 아파트가 될 가능성이 좀 있다고는 하지만 그보다는 교회와 가깝고, 아이가 다니게될 학교와 가깝고, 무엇보다 책임지는 것이 무서워 덜덜 떠는 당시의 나에게는 이렇게 누군가 등을 떠미는 듯한 상황의 만들어짐이라면 한번 가볼만하다는 생각이었다.
거스러미가 일어난 건조한 손가락으로 은행어플을 열고 로그인을 해 들어가
내가 가지고 있는 자산들을 훑어본다.
계좌, 주식, 연금, 외화.. 없는 집 쌀독을 긁듯이 아무리 긁어모아도 얼마되지 않는 숫자들을 계산하고,
틈틈마다 미간을 찌푸리고 인터넷을 뒤지고 다녔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방공제, DSR, LTV 를 적고 계산기를 두드리고 여기저기 전화를 돌렸다.
디딤돌, 버팀목. 한부모혜택. 어떻게든 지금의 상황에서 받을 수 있는 지원을 받고 싶었지만, 하나가 되면 다른 곳이 찢어지고 또 다른 하나가 되면 이 쪽이 찢어지는 형국이라 이도 저도 할 수는 없었다.
몇번이나 손을 놓고, 심호흡을 하고 이게 정말 맞는 건가 고민을 하다가,
어느 것도 좋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자잘자잘한 몇가지를 과감히 포기하고 - 당시에는 자잘해보이지 않았던 것들이어서 그 포기가 또 그렇게 큰 품이 들었다.
은행어플로도 몇천만원의 목돈이 이체가 되는지 확인을 여러번 하고 계약한 내 첫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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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추워지며 완연히 밤과 같아진 새벽, 아이가 아침으로 먹을 오렌지를 꺼내 자른다.
두툼한 모헤어 가디건을 걸치고도 추위에 웅숭그리며 오렌지를 자르다 첫 향기에 순간 문득 동작이 멈춰졌다.
고시공부를 하던 20대에는 항상 그렇게 딴 짓이 하고 싶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너무 당연하게 했던 공부가 어쩌면 그렇게 하기가 싫었는 지 항상 다른 궁리를 하며 살았다. 어떻게 하면 이 답답함에서 벗어날까 어디를 가볼까. 무엇을 해볼까.
그 대표적인 것이 오렌지쿠키였다.
대학로 구석에 있는 작은 카페에서 오렌지쿠키라는 것을 팔았는데 거기에 반해서 틈만 나면 그 가게를 찾아갔었다. 오렌지 껍질의 부드럽고 상큼한 향과 설탕과 버터가 섞인,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맡게 되는 그 즐겁고도 평안한 향기를 맡으러 가서 사먹기도 하고 온 집안에 벌창을 하며 만들기도 했던 기억.
그 때 그 생각이 나게 하는 연주황색 냄새. 가을이 올 때마다 이유모르게 왠지 문득 몹시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았지만, 이제는 그럴 일 따위 없다는 것을 꺠닫고 아주 오랫동안 안테나와 더듬이를 잘라가며 살아서 상기하지 못했던 그 설레는 냄새가 코 끝에 머문다.
더이상 설레지 않는다. 세상을 알아버린 40대의 나는 에이. 그래도 그 떄 좀 열심히 공부할 걸. 하는 현실적인 아쉬움이 따라왔다.
그랬으면, 지금 집하나 쯤은 쉽게 가지고 있었을까.
ㅡㅡㅡㅡ
날이 부쩍 추워졌어요.
집은 이제 잔금을 남겨 놓고 있습니다.
사실 규제가 생기면서 은행권대출만으로는 부족해서 다른 대출까지 준비하느라 되게 많이 힘이 들었어요.
그래도 어떻게 어떻게 또 여러개의 산을 넘어 이렇게 막바지에 이른 것은 정말 감사할 일 이라고 생각해요. 단순히 내 집이 생긴다는 것은 당분간은 이런 저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만으로도 정말 기쁩니다. 물론,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의 후회는 남아있겠지만 말이죠 ^^
인생의 셀 수 없이 많은 순간마다 할 수 있는 최선을 선택을 하고 나면 그것으로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행여나 내 불성실함으로 게으름과 태만으로 주님이 주시는 복을 놓치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이 제일 컸던 것 같아요.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했으니, 정말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어렵게 받아낸 재산분할이.
마구마구 불어나면 참 좋겠지만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