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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평범 Jan 29. 2024

대리를 언제 다냐니

어필 못하는 내가 바보죠

사진: Unsplash의 Rohan Reddy








1. 오늘 신규 사원이 입사했다.


출근시간 12분 전에 도착했는데 이미 와서 인사팀의 안내를 받고 있었다. 나는 낯가리니 팀장이 올 때까지 따로 말은 걸지 않았다.




2.면세점 벤더사의 대량 발주를 나가도 되는지 대표 결재를 받아야 한다.


대표는 해외 거래처 공급가를 확인하더니 이 정도면 나갈 수 있을 거라고 한다. 단, 선금을 받으라고 한다. 우리가 튈 일은 없고, 워낙 금액이 크기도 하고, 거래처에서 입금을 미뤘던 전적도 있으니 선금을 받으라는 것이다. 그 생각은 안 해봤는데. 근데 돈이 많은 거래처가 아니라서 판매하고 그 대금을 받아야 우리한테 넘겨줄 텐데 될까? 싶었다.


자리로 돌아와 거래처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출고가 가능은 하지만, 선금을 받아야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열을, 열을 낸다. 잊고 있었다. 다혈질 거래처라는 것을. 


계약 해지 조건도 안되는데 우리 측에서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했다는 둥, 근데도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이러냐는 둥, 선금 조건이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냐는 둥 따져댔다.


계약 해지 조건이 따로 있어야 하나? 계약일이 종료되어 계약을 종료하겠다고 하는 건데 이걸 상호 협의해야 하나? 협의하고 싶었으면 협의를 하든가 하지도 않아 놓고 이제 와서 난리. 선금 조건은 없지만, 1년의 거래동안 입금 밀린 게 6번이 넘는다. 그건 계약 위반사항이 아닌 건가. 


화만 내고 대화는 안되고 절레절레 다. 자기 방식대로 한다며 전화를 끊는다. 이런 뭣 같은 매너를 봤나. 아침부터 기분이 더러웠다. 


몇 번이고 생각한다. '거래 종료하길 잘했어.'




3. 어차피 이 거래처가 아니더라도 다른 면세점 벤더사가 있다.


B 거래처는 일처리도 깔끔하다. 일은 이렇게 하는 거였다고 느낀다.


B 거래처에 신제품 입점 제안을 하기로 했다. 미뤘던 업무인데 빡이 쳐서 이 업체에 좀 더 신경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팀장에게 컨펌을 받고 입점 제안 메일을 썼다.


11월에 출시된 제품인데 실사용 후기가 333개가 쌓여있다. 아, 2차 제조를 출시 2개월만에 들어갈 정도로 핫한 제품인데 이 말을 빼먹었네. 


제품을 확인해 볼 수 있도록 상세페이지와 제품소개서를 보내고, 우리가 적극적으로 제품 홍보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유튜버와 협업한 영상과, 제품명을 검색했을 때 보이는 검색결과 링크를 함께 보냈다.


확인해 보니 바로 답장이 와있다. 이제 입점 서류만 준비하면 된다. 


이래서 다리는 양다리를 걸치고 있어야 하나보다. 이제 또 새로운 벤더사를 알아봐야 할 차례인가.




4.  지난주에 신규 사원이 의견 냈던 것 중에 쓸만한 것이 있는지 다시 훑어보았다.


모든 의견을 다 쳐내면 그 팀원도 재미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실현가능성이 있고, 바로 해볼 수 있을만한 후기 퀄리티 높이는 방안에 대해 추가 의견을 전달해 줬다.


후기 이벤트 페이지도 리뉴얼하고 노출해서 내부 고객들에게 보여주는 것도 방법이지만, 퀄리티를 높이려면 쓴 사람들한테 후기 작성 혜택을 적극 어필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리뷰 솔루션을 도입하고 손보지 않았던 후기 작성 가이드 부분을 수정할 수 있다고 팀원에게 알려줬다. 


아마 이것저것 만져보면서 기능을 익혀야 하겠지만, 어차피 나도 다시 이것저것 만져보면서 기능을 확인해야 한다. 우선 팀원에게 맡겨보기로 했다.


다른 업무를 하다가 다른 리뷰 솔루션 소개 페이지를 보게 됐는데 다양한 기능이 있더라.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리뷰 솔루션도 이런 기능이 있지 않을까 하여 팀원에게 레퍼런스로 타 리뷰 솔루션 소개 페이지를 보내주었다. 


아마 지금은 2월 프로모션 문안 짜느라고 정신이 없을 것이다. 이건 아마 손도 못 대봤겠지. 


타 부서로부터 업무 협조받은 거랑 12월 비용보고서만 재빨리 쓰면 내가 확인하고 싶다. 빨리 끝내... 야지...




5. 제품 부자재 리뉴얼을 한지 어언 6개월이 되어간다. 


리뉴얼을 했으니 빨리 촬영을 해야 하는데, 경험자가 없으니 바로 진행도 안되고 담당자가 없으니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하지만 이제는 해야 할 때다. 


팀장이 나를 포함해서 같이할 팀원들을 붙여줬다. 그래서 오늘 단톡방을 만들어 차근차근 진행해 보기로 했다.


우선 다른 브랜드 촬영을 진행해 본 팀원이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었고, 그에 따라 가장 먼저 정해야 할 것을 촬영 TF팀에게 공유했다.


이벤트용의 사진을 찍을지, 상세페이지용의 사진을 찍을지 말이다. 


그러고서 팀원들이 의견을 내는데, 역시 가이드가 없으니 붕뜨는 느낌이다. 나도 모르니까 다른 팀원으로부터 가이드를 전달받아 그대로 전달해 줬지만, 그들도 해봤던 업무가 아니니 와닿지 않는다. 결국 질문이 계속 이어지자 나도 시간을 내어 레퍼런스를 찾는다. 


찾다 보니 이벤트용, 상세페이지용이 딱히 필요한가 싶고, 개인취향인가 싶은 게 나는 상페용을 이벤트용, 광고용으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고도 보이더라. 


우선 나는 대충 정했고, 한 팀원의 의견만 기다리면 된다. 또 새로운 일 하니까 신나는구먼. 근데 이 일만 하면 안 될까. 멀티는 너무 힘든데 말이다.




6. 지난주 금요일에 CRM 솔루션을 하나 설치했다.


금요일에 팀원이 캡처해 준 것만 보고 UI가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잠깐 만져보니 엑셀로 필터링하는 것보다 빠르고, 유입경로도 다 세세하게 나와있고, 고객 정보가 그 페이지 안에서 다 확인되더라. 오 이거 너무 좋잖아?


때려 죽어도 이번주에 기본 세팅은 다 끝냈다고 선전포고했다.





7. 오픈되고 클로징 되는 이벤트들을 더블체크했다.


오늘 종료되는 이벤트를 훑어보니 아직 '진행 중인 이벤트' 게시판에 들어가 있다. 그래서 담당 팀원에게 바로 수정해 달라고 말했다. 사람일이란 게 어쩔 수 없이 하나씩 누락한다. 체크리스트가 있어도 체크할게 많으면 체크할 수가 없다. 그런 것 같다. 그냥 한 사람이 한 번 더 체크를 해주는 수밖에. 


그러면서 지난주에 종료됐던 이벤트도 아직 '진행 중인 이벤트' 게시판에 들어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 아직 후속 이벤트가 남아서 넣어둔 것 같은데 후속이벤트는 또 게시글이 하나 더 있으니, 이 게시글은 숨기고 관련 회원만 확인할 수 있도록 링크를 후속이벤트 글에 넣어달라고 담당 팀원에게 전달했다. 모바일까지 잘 되었는지 더블체크 완료.


2월 1일에 오픈하기로 했던 유튜브 시크릿 링크인데 유튜버가 관련 영상을 벌써 올렸다. 이미 영상은 플레이되고 있고 시크릿 링크는 2월 1일로 예고된 채로 있더라. 이러면 앞서 본 사람들은 관심이 있어도 이탈할 것이 뻔한데. 그게 아쉬워서 출고 관련부서인 지원팀과 물류팀에 양해를 구하고 오늘 바로 링크를 살리자고 담당 팀원에게 말했다. 그런데 지원팀에 오늘 오후 늦게서야 연락을 한 모양이다. 그러니 답은 없고. 이렇게 하루가 지나가니 아쉽다. 게다가 이벤트 배너도 올라가야 하는데 디자이너가 작업할 시간이 부족하다. 야근을 강요하는 회사가 아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또 미뤄진다. 


설 이후 진행할 프로모션 기획은 완성이 지난주에 다 됐다. 담당 팀원에게 설명도 끝났다. 그런데 데드라인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 다시 대화를 걸며 1차 문안을 내일까지 작성해 달라고 했다. 


팀장은 팀원들을 문안 만드는 기계로 만들라고 했다. 데드라인을 빡빡하게 주고, 더 깊은 생각은 나중에 숙련됐을 때 하게 하고, 지금은 문안을 빠르게 찍어내는 근육을 만들게 하라고 했다. 이 팀원이 내일까지 얼마만큼의 완성도를 가지고 전달 줄지 기대가 된다. 이제 5개월 차니 되겠지!




8. 신규사업 자금 사용내역을 내일모레까지 작성해서 기획팀에 넘겨줘야 한다.


한 3주 전에 업무 협조 요청을 받았던 건데 결국 데드라인까지 오고 말았다. 진짜 미리 해주고 싶었는데, 그동안 정말 바빴다. 


오늘도 집중해서 하고 싶었는데 집중이 안되는건가, 다양한 업무가 있는건가.




9. 월요일은 주간 업무 회의가 있는 날이다.


9시 땡 하자마자 회의실로 가서 회의를 시작한다.


팀원들이 쓴 회고를 보니 내가 맡고 있는 브랜드에 대해 내 의견이 안 들어간 게 없고, 보고 받지 않은 게 없다. 나름 뿌듯했다. 


그랬는데 퇴근 시간 즈음, 현타가 올만한 에피소드가 생겼다.


친구들 톡방이 활성화돼서 얘기를 하다가 연봉협상했다는 얘기를 꺼냈다. 작년 매출이 얼마 안 올라서 명분이 없다고 회사 변명을 내가 했다. 물가상승률+구내식당 점심값 정도 반영됐다고 얘기를 하며, 덧붙였다. "팀장이 나한테 대리 언제 다냐는데?"


친구들이 물었다. "그걸 왜 너한테 물음?"


우리 회사는 연차가 쌓이면 자동으로 직급을 달고, 기타의 경우 특별 승진이 될 수 있다. 나는 22년 7월에 주임을 달았으니, 그로부터 3년이 지나야 대리를 달 수 있다. 그러니까 25년 7월이 된다. 


연차가 되지 않았더라도 팀장이 내가 대리를 달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달아줄 수 있다. 왜냐하면 팀장은 나보다 3개월 정도 입사가 빠른데 올해 과장으로 승진한 특별 승진 케이스였기 때문이다.


한 친구가 이 상황을 듣더니 예리하게 말했다. "자기는 그럼 왜 승진했는데. 명분도 없는 사람들 대가리면서."


맞다. 내 연봉은 명분이 없어서 못 올리는데, 팀장은 어떠한 명분으로 승진까지 한 걸까. 매출은 얼마 오르지도 않았는데 어떠한 명분을 댈 것인가. 당당하게 대표딸이니까 됐다고 말할 것인가. 그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니까.


무튼 이 말을 들으니 기운이 빠진다. 집에 가서 타로 공부나 열심히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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