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계약'을 했다
팀장이 주최한 정신교육 시간이었다. 팀장은 23년 저조했던 실적을 공유하고, 두 번 다시 이렇게 저조한 매출은 안된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리고 그 저조했던 결과의 원인은 부정적이고 열정적이지 않은 모습이었다고 꾸짖는다. 또, 다음 주에 올, 그리고 앞으로 뽑힐 신규팀원들에게는 이런 모습을 보여선 안되고, 기존에 있는 사람들이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어서 연봉계약을 오늘내일 진행한다고 한다. 그리고 매년 연봉계약 때마다 듣는 팀장의 남편 이야기. 지겹기도 하면서 들을 때마다 웃기다. 그러니까, 연봉을 서로 얼마 받는지 공유하지 말란 거다. 각자가 다르게 시작하고 다른 평가를 받을 텐데 남의 연봉 들으면 사기가 꺾인다는 것이다. 남들은 얼마 받는지, 몇 % 올리는 정말 궁금하지만 한 번도 물어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다.
약 30분의 회의가 끝났다. 이제 팀장이 부를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어제 얘기가 나온 것을 오늘 정리해서 모이자고 했는데, 가망이 없다.
우선 타 브랜드 공식몰에 들어가 지난 이벤트를 살펴본다. 몇 개 안 하는 것처럼 했는데 (누가?) 전년도 월별 이벤트를 쭉 적어보니 많다. 한 달에 적게는 3~4개에서 보통은 6개는 하는 것 같다.
우리와 다르게 제품라인도 많고 제품군도 많으니 이벤트 콘셉트를 잡기가 좋아 보인다. 우리에게 적용하기 힘들다. 이렇게 저렇게 하고 싶은 게 더 생기기만 했다.
우리 내부 효율을 높이기 위해 간단하게 이벤트를 바꿔보려고 했던 생각은 무지에서 비롯된 잘못된 생각이었다.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는 부분은 있겠지만, 1~2개 정도일 것 같다. 기획이나 구체화하는 수밖에 없겠다.
점심시간 끝나기 2분 전, 너저분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고, 짐을 몇 가지 치워봤다. 그러다 책장 앞에 쌓여있는 택배, 그리고 제품들.
유튜버에 보낸 제품과 상시로 보관하고 있어야 할 제품들을 한 번에 시켜서 3박스나 있었다. 이것까지 치울 생각이 없었는데 한 팀원이 정리를 시작한다. 그래, 새로운 팀원이 왔는데 말끔한 모습을 보여줘야지.
무거운 박스를 캐비닛 앞에 옮기고서 제품을 넣으려고 하니 또 다른 팀원이 와서 손을 돕는다. 하지만 캐비닛 앞자리는 3명이서 일하기엔 과하다. 정리를 먼저 시작한 팀원에게 말했다. "이제 XX님이 오셨으니, 주임님은 앉으세요." 거절했지만, 거절은 거절했다. 임산부였다. 그렇게 다른 팀원과 3박스를 정리했다.
그러고 나서 퇴근 시간, 배가 많이 불러온 임산부 팀원과 얘기를 하는데, 버스에서 사람들이 안 비켜준단다. 이렇게 배가 나왔는데 아무리 힘들어도 이 정도 배는 비켜줘야 하지 않나? "인류애 상실이네요." 얘기하고 있는데 그 팀원이 말한다. "저도 이제 몸이 무거워져서 서있기 힘든데 안 비켜줘요." 그걸 듣고 아까 제품 정리하던 팀원의 모습이 생각났다. 임신해 본 적이 없어서 그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얼마나 힘든지 나는 알 수가 없다. 팀원도 힘든 척, 괜찮은 척 하지만 어쨌든 배가 이미 부른 상태라 평소와는 몸 상태가 다를 것이었는데. 좀 더 빨리 앉히지 못해 미안했다. 휴직까지 한 달이 남았다. 그동안 의식적으로 배려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회계팀에서 이번달 나간 수량을 보더니 재고 반품 안 되는 거 맞냐고 묻는다. 지난번에 거래처에 리마인드 하긴 했는데. 안 그래도 어제 발주받은 건 출고하면서 재고 확인을 요청했다.
회계팀 연락을 받고 확인해 보니 답신이 와있었다. 근데 재고가 아직 남아있다. 예약받는 주문 건만 발주 넣는다고 해서 재고가 0개여야 하는데 말이다.
다시 메일을 보냈다. 기존 재고를 소진하고서 발주를 해달라고. 그리고 재고가 남아있는데 사이트에는 왜 품절인지 다시 확인해 달라고 말이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더 출고된 제품은 반품이 불가하다고 명시하고 1월 내 모두 판매될 수 있도록 '요청'했다.
잠시 후 메일이 와 있어서 확인해 보니 어제 보낸 택배 2건 중 1건이 안 도착했단다. 잘만 나가던 택배가 하필 이 타이밍에 지연되니? 근데 재고 관련해서는 답이 없다.
택배가 상차는 되어 있는데 하차가 안 되어 있다. 내일까지 못 받으면 다시 연락 달라고 했다. 내일까지 못 받으면 분실일 테니. 그리고 재고관련해서 다시 또 한 번 명시하여 메일을 보냈다.
그랬더니 내일 고객이 물건을 받으러 오기로 했다며, 오전에 확인해 달란다. 그래 이건 해줘야지.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조회해 봐야겠다. 근데 왜 재고에 대해선 대답을 안 하는 거야? 물건 안 보내버릴까 보다. 돈을 받아야 하는 입장에서, 입금을 제대로 안 했던 거래처라 조마조마하다.
얼마나 올려줄까. 작년과 같은 요율이었으면 싶었다. 아니, 액수로 치자면 그것의 2배, 3배는 올려야 했지만. 내가 마지막 면담자였다. 생각보다 금방 끝났다고 한다. 원래 내일까지 시간을 잡고 있었는데 오늘 안에 마무리된 것이다. 태클을 건 사람이 별로 없었나 보다.
팀장이 말을 꺼낸다. 더 많이 주고 싶었지만, 매출이 많이 나오지 않았고 회사에서도 더 많이 챙겨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최고 등급으로 최대한 주려고 했고, 어쩌구 저쩌구 사족이 많다.
내민 연봉계약서를 보니 요율이 작년보다 떨어졌다. 전년보다 요율을 조정할만한 연봉액은 아닌데 말이다.
영업사원들은 0%고 (물론 기본급이 애초에 높고, 인센티브를 가져가니 그럴 수도 있지만, 이라고 팀장은 덧붙였다.) 다른 내근직들은 우리 팀보다 반밖에 안 줬다고 한다.
"회사가 힘든가요?"라고 순진하게 물었다.
"회사가 힘든 건 아니지만, 작년보다 성장한 건 아니니까..."
다른 팀이 나보다 반만 올리든 뭐든 내가 이만큼만 올린다는 게 '문제'다, 나에게. 지금 읽고 있는 책에서 작년에도 5%, 올해도 5% 상승한다는데, 연봉이 이 정도면... 게다가 이 정도 올렸는데 4대 보험료는 얼마나 떼어갈지가 기대가 된다.
야심 차게 "더 올려주세요."라는 말은 못 하겠고 그래도 한발 빼서 "올해 잘하면 내년에 1,000만 원 더해주세요. 다른 인센티브에서 추가로요."라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그것도 못했다. 1,000만 원이 큰돈인가도 싶었고. 올해는 진짜 회사가 어떻든 크게 성과를 내서 여기서 연봉을 올리든, 이직해서 올리든 하는 것이 나의 새해 다짐이었다. 그래서 올해는 진짜 작년보다 더 열심히 성과를 낼 것이다. 근데 저 말만큼은 용기가 없다. 좋은 게 좋은 거지란 생각 때문이다. 어차피 매출을 많이 못 올린 건 사실이니까.
"파트장님은 근데 대리 언제 돼요?" 팀장이 나에게 묻는다. 나에게 묻는다고? 그걸? 팀장이 올려줘야지, 내가 올립니까? 연차가 쌓이면 달아주긴 하는데 아마 나는 내년 상반기가 지나야 달 것 같다. 입사 5년을 채워야 달아주는 것 같았다.
"아니, 경력 많은 사람들도 앞으로 뽑을 건데, 경력 5~6년인 사람들은 못해도 대리잖아요. 그런데 파트장이 주임이면 좀 웃길 것 같아서요." 그렇게 해서 웃음거리를 만드는 건 당신 아닌가.
"근데 팀장님도 대리실 때, 과장급을 뽑으셨잖아요." 내가 말했다.
"저는 ~ 다 아는 ~ 대표님 딸이니까 ~ 괜찮은 거고 ~." 팀장이 대답했다.
아, 대표딸이 대리인데 팀장이고, 그 밑에 직원이 과장인 건 괜찮나? 그거나 그거 아닌가? 잘 모르겠다.
내가 말했다. "그러면 그분께 파트장을 주셔도 좋습니다. 명예욕, 권력욕 별로 없어요. (뒤에 덧붙였어야 한다. 돈욕심은 있다고.)"
"에이~ 그릇이 안 돼요." 팀장이 말했다.
그러면 그릇되는 저에게 돈을 더...
무튼 이 얘기는 여기서 마무리했다. 근데 집에 와서 설거지를 하며 오늘 면담 내용을 다시 떠올리는데, 팀장이 약간 절절매는 느낌이 들었다고 해야 할까. 요율이 낮으면 미안함 마음에 말을 흐리게 되는 건가? 왜지? 다른 사람들한테도 이럴까?
그래서 추측한 것이. 그래 절절매는 게 맞나 보다. 조금밖에 못 올려주는 미안함? 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 마음이 든다는 것은 더 줘야 할 사람한테 못 줘서 그러는 거 아닌지.
근데 이 글을 쓰면서 드는 생각은, 정말 이것밖에 못 주는 것이었나도 싶다. 작년 연봉계약 땐, 아직은 이만큼 올려도 되는 연봉이라는 식으로 말했으면서 1년 만에 내가 그 높은 연봉이 되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