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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평범 Feb 12. 2024

설 연휴 전날, 몇 시에 퇴근하나요?

퇴근시간은 내 재량이 되었다

사진: Unsplash의 Samantha Gades








1. 명절 전날이라고 4시까지 단축근무하게 되었다.


대표가 기분이 안 좋아서 단축근무 얘기를 못 꺼냈다는 팀장의 말을 들었는데 다행히(?) 매년 그래왔듯 명절 전날이라고 4시까지 근무하고 퇴근하게 되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팀장이 2024 사업계획서에 23년 12월 매출과 비용 업데이트 해달라고 요청해서 그 업무를 최대한 마무리하고 퇴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 팀원의 업무가 아직 안 끝난 것이 보였다.




2. 4시가 넘었는데 SMS 푸시 타겟을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 묻는다. 


설맞이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설연휴 동안 푸시를 세팅해야 한다고 팀원에게 알려줬었다. 오후에 다른 팀원에게 푸시하는 방법을 설명 듣는 것 같았는데 내게 와서 푸시 타겟 설정하는 방법을 묻는다.


우리 오늘 단축근무인데...


이제 묻는 게 이해가 안될뻔했지만 오후 내내 세팅하고 있는 것을 알았고, 신입이니, 시간이 오래 걸리는 친구구나 생각하기로 한다.


작년 설과 추석 때 타겟을 확인하고 깊게 고민하지 않고 똑같은 조건의 타겟을 뽑으라고 말했다. 4시가 넘었으니 아예 내가 뽑아주기로 한다.


자리로 가서 데이터를 다운받는 것을 확인하고 조건에 맞는 타겟을 뽑기 위해 직접 엑셀 함수를 써넣는다. 단순하게 match 함수만 썼는데 모르는 함수란다. 필터기능으로 필터까지 해서 "이 데이터 사람들한테 보내세요."하고 난 다시 내 자리에 앉아 내 업무를 마저 하며 기다린다.


얼마 뒤에 단톡방에 푸시 세팅을 했다는 메시지를 보냈기에 확인하는데 내가 아까 봤던 타겟은 8천 명대였는데, 2천 명 대만 타깃 되어 있다.


다시 팀원 자리로 가서 최종 데이터를 확인하는데 csv 파일이라 데이터가 깨져있다. 아까 다운받았던 데이터들을 다시 다운받아 똑같은 함수를 넣어서 봤는데 8천명대가 나온다. 왜 틀렸을지 확인하니 전화번호 칸에 빈칸이 있어서 전체 선택처리가 안 됐던 것이다. 


오류가 있었던 부분을 캐치하여 알려주고 다시 팀원의 최종 메시지를 기다린다. 


다시 받은 메시지. 내용에 SMS 타겟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서 다시 알려주고, 2014년이라고 기재한 것을 2024년이라고 다시 또 고쳐준다. 2014년이라고 쓴 것 옆에 2013년이라고 기재한 것은 따로 언급 안 했더니 24년만 고치고 13년은 그대로다. 2023년이라고 적어야 한다고 다시 알려준다. 1개를 알려주면 1개만 아는 팀원이기에 좀 더 자세히 가이드를 해줘야겠다고 회고에 쓴다.




3.  퇴근길,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온다. 


모르는 번호는 보통 받지 않는데, 연휴 전이기도 하고 '혹시 푸시 세팅에 문제가 있어서 우리 팀원이 전화한 건가, 내가 팀원 연락처를 저장을 안 했었나' 하면서 받았다.


"여보세요?" 하니 본인의 신원을 밝히지 않은 채 나를 먼저 확인한다. 여자 팀원이 전화했다고 생각해서 받았기에 여자라고 생각했는데, 듣고 있으니 연구소 소속의 남자 연구원이다.


나보고 문을 잠그고 갔냐기에 '문을 잘못 잠갔나?' 생각했는데 안에 본인이 있는데 잠그면 어쩌냐고 화를 낸다. 근데 나 지금 퇴근한 지 20분이 지났는데? 뭐지? 상황파악이 안 된다.


"저 퇴근한 지 20분이나 지났는데요?" 퇴근한지 한참이나 지났기에 오해하나 싶어 말했다.


그랬더니 그 연구원이 하는 말이, 안에서 하던 일 마저 하고 누가 감갔는지 추적하다가 이제야 전화를 했단다. 


아~ 20분이 지난 이제야? 


본인이 빨리 퇴근하려고 불을 끄고 연구실에서 일하고 있었단다. 전혀 몰랐다. 불 끄기 전, 사무실을 보면서 "아무도 안 계시죠?"하고 묻기까지 하고 인기척이 없기에 팀원이랑 같이 문을 잠근 건데 안에 있어서 안 들렸단다.


그 연구원은 내게 앞으로 연구실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고 불을 꺼달라고 한다. 이미 불이 꺼져 있는 연구실까지 확인을 하라고? 불이 꺼져있는데 사람이 있는지 확인해 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도 아니고 시비조로 말하니 빡이 친다.


나도 의도는 아니지만 실수한 부분이 있으니 "죄송합니다."하고 넘어갔으면 되는 건데 그놈의 자존심이 갑자기 튀어나와서 '절대 사과하지 말아야지.'란 생각해버렸다.


"불 꺼진 연구실까지 제가 확인을 해야 합니까? 그리고 이 얘긴 다음 주 출근해서 얘기해도 됐잖아요. 굳이 전화를 할 문제입니까?" 나도 날을 세우며 말했다.


만약 내가 평소에 좋게 생각하는 동료가 그랬다면? 혹은 나보다 상사가 그랬다면? 이렇게까지 말하진 않았을 것 같다. "아이쿠 죄송합니다. 몰랐어요!!"라고 바로 사과했을 것이다. 


내가 평소에 이 연구원을 정말 안 좋게 생각했구나도 싶었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연구원은 내가 인사를 해도 받지도 않고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는 사람이었다. 내가 정수기에 물을 받고 있는데도 본인 컵을 들이대면서 본인 물을 먼저 받으려고 하는, 그런 사회부적응자 같은 모습들이 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불 껐다고 승질이 나진 않았을 것이다. 깜짝 놀라기야 했겠다만, '누가 감히 내가 있는데 문을 잠그고 갔어?'라며 추적해서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난 때에 퇴근한 사람에게 전화해서 이런 시비를 걸진 않았을 것이다. 


"저 혼자 똥 밟을 순 없잖습니까." 이 시간에 별것 아닌 일로 전화받은 것에 기분 나빠하는 내게 그 연구원이 이렇게 말했다. 웃음밖에 안 나왔다.


여차저차해서 전화를 끊었는데 분이 가라앉지 않는다.


그랬는데 집에 와서 샤워하면서 이 일을 곱씹어보니, 이 사람이 날 칼로 찌를 것 같은 거다. 왠지 그럴만한 성격이랄까. 그 정도로 내 눈엔 사회부적응자의 모습이 보였는데. 성질 나서 전화까지 하며 따진 사람에게 맞섰으니 이건 칼 들고 있는 사이코패스에게 무방비로 서있던 거나 마찬가지 아닐까. 등치도 진짜 큰데. 


샤워하면서 "어떡해 어떡해" 호들갑을 떠니 동거인이 왜 그러냐고 묻는다. "그 사람, 나 칼로 찌를 것 같애!!! 나 보디가드 붙여줘어!!!" 하니 동거인이 "그니까 이상한 사람은 피하라 그랬잖아. 그냥 미안하다고 말지, 왜 자존심을 세웠어."란다. 그러게 말이다. 이렇게 쫄 거면서.


좁은 탕비실에서 마주치거나 내 자리로 와서 말을 시킨다면 난 찐으로 소리 지를 것 같다.


설 연휴 전날, 정말 똥을 밟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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