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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평범 Feb 07. 2024

오늘도 열심히 했고요

남들도 그렇게 볼진 모르겠네요

사진: Unsplash의 Jane Boyd & ECE Workshops








1. 베트남에서 기념품으로 사 온 드립커피를 집에서 가져왔다.


출근시간보다 15분 전에 도착하면 사무실도 한가하고, 탕비실도 한가하다. 업무 시작 전, 여유 있게 드립커피를 타본다.


물을 적당히 채웠을 쯤에 하나, 둘, 셋, 사람들이 출근해서 탕비실에 들린다. 드립커피를 타는 동안 그들과 스몰토크를 나눈다. 


오늘은 평화로운 하루가 되길.




2. 생각해 보니 이렇게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다.


어제저녁까지 마감장을 달라고 집착했던 거래처에서 아직도 마감장이 오질 않았다. 나도 화나니까 8시 57분에 문자를 남긴다. 그리고 관련 부서 담당자에게는 지금 진행사항을 공유해 준다. 10시까지 답이 오지 않으면 전화를 하기로 한다.


10시가 되기 전, 문자가 온다. 



전화가 온다. 이어폰을 끼고 두 손을 자유롭게 한 후 받는다. 


이 사람의 주장에 따르면 맞는 말인데, 그 주장이 타당하냐. 또 휘말릴 뻔했다. 그래서 다시 내 주장을 펼친다. 그랬더니 또 그건 아니란다. 바쁘다며 궁시렁대며 다시 자기주장을 한다. 바통을 이어받아 내 주장을 펼친다. 그랬더니 갸우뚱하나 보다. 


"1월 마감장에 있는 재고는 1월 제품을 다 판매한 후입니다. 1월 1일 재고는 12월 마감장을 보셔야 합니다."라고 말하니 확인해 보겠다며 끊는다.


다시 전화가 올 것 같은데 신규 직원 자리를 만들자며 팀장이 부른다. 전화가 오더라도 놓치지 않게 벨소리로 해두었는데 자리에 돌아와 앉으니 이미 부재중이 와있었고 문자가 남겨져 있었다.



능숙하지 않은 거래처 때문에 내 시간을 많이 허비했다. 내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보상받지 못한다. 그래도 죄송하다는 말을 들으니 조금은 마음이 풀린다. 


이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면 인간관계론을 읽은 것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모른다. 욱하고 올라오는 게 있고 나도 똑같이 비난하고 싶지만 그래봤자 달라지는 게 뭐 있겠는가. 상대의 기분만 상하게 만들 뿐. 내가 상대를 공격한다고 해도 내 기분이 나아지지도 않을 터이고, 공격하면서 오른 흥분 때문에 기분은 더 오래 상해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다음 달까지만 연락하면 되는 사람이다.




3. 팀장이 남편 비염 수술 때문에 간호한다고 이번주 월화 자리를 비웠다.


다음 주 월요일에 신규 직원이 오는데 자리가 마련되지 않았다. 그래서 팀장에게 메시지로 신규 직원 자리 어떻게 할 건지 물었다.


메시지를 확인한 팀장이 와서 책상을 구하자고 한다. 어떤 책상이 좋을까. 큰 책상밖에 없어서 난감하다. 팀장이 영업부 사무실에 가보자고 한다. 내가 알기론 엄청 작은 책상이었는데.


"권고사직할 때 쓰는 짜투리 책상 같은데 괜찮을까요?"


그 정도로 미니미한 책상으로 기억했다.


영업부 사무실에 가니 미니미한 책상 말고 일반적인 사무용 책상 빈 것이 몇 개 있더라. 그래서 그 책상을 꺼내기로 한다. 짐을 치우고 빼내려니 선이 연결되어 있다. 이 책상은 안되고 다시 옆에 있는 책상을 빼낸다. 


책상을 뺄 수 있게 도와준 남자 과장이 나와 팀장을 보며 여자 둘이 왔다면서 남자 주임과 책상을 든다 한다.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남자 과장이 괜찮다고 괜찮다고 도와주신다. 책상을 옮겨주신 두 분에게 감사인사를 확실히 한다.


책상을 옮기니 너무 덩그러니다. 다른 부서 빈자리에 있던 의자도 갖고 오고, 책상 서랍도 갖고 온다. 쓰레기통도 여분이 없어서 비품 신청을 해둔다. 여전히 책상 위가 비어있으니 허전하다. 또 둘러보다 다른 빈자리에 있던 필기도구가 있길래 총부인사팀에 얘기하고 통째로 들고 온다. 


파티션을 추가할까 했는데, 창고 깊숙한 곳에 있다. 어차피 3주만 있으면 또 치워야 하는데. 하지 말지 뭐.




4. 약 2주 전에 도입한 CRM 서비스를 사용해 본다.


이것도 만져보고 저것도 만져본다. 그러다 '응? 뭔가 좀 이상한데? 왜 이것밖에 안 뜨지?'


A제품의 추가 구성옵션에는 B제품이 들어가 있어야 하는데 C제품이 들어가 있다. 왜? 추적추적추적해 보니 작년 연말에 옵션을 만지면서 수정이 됐더라. 누가 세팅한 건진 확인하지 않겠다. 어쨌든 나도 이제야 알아차렸으니.


주문비율을 확인해 본다. C제품이 잘 나가면 굳이 바꿀 필요가 없으니. 근데 차이가 난다. B제품으로 세팅했을 때 보다 C제품으로 세팅했을 때 선택률이 반으로 떨어진다. 다시 B제품으로 세팅한다. 이직하게 되면 공식몰 MD 이런 거 잘할 것 같다.


주문확인하는 부서에 옵션 내용이 바뀌었음을 공유하고 해당 내용도 우리 팀 단톡방에 공유한다. 이러면 세팅한 사람은 본인이 잘못한 걸 알겠지.




5. 어제 매출이 좋았다.


4일 동안 이벤트가 없어서 이번에 터진 것인가. 아님 설날 버프를 받은 것인가. 아님 혜택을 높인 덕인가. 


작년 설과 추석과 비교해도 첫날 매출이 좋다. 해당 내용을 팀원들에게 공유한다. 


그리고 추가로 어떤 제품이 잘 팔렸는지 본다. 구매금액별 쿠폰이라 그런지 대용량이 많이 나갔다. 근데 그 와중에 대용량이 없는 샴푸도 Top3에 든다. 2개 묶음 상품페이지를 만들 때다. 


다른 브랜드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레퍼런스를 좀 찾아봐야겠다. 그리고 기안서 쓰고~ 상품 만들고~ 상단에 올릴 배너도 만들어야겠다.




6. 유튜버 채널로 유입시키는 상품의 판매건수가 0건이다.


우리 브랜드의 주력 상품군이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유튜버 빨이 있어야 하는데 전혀 없다. 사실 그도 그럴 것이 구독자 1천 명이다. 담당 팀원에게 상품 판매 내역 확인해 봤는지 물었다.


담당 팀원이 우리 상품 홍보해 준 유튜버의 영상을 확인했는데 조회수도 500회대다. 다른 영상들보다도 잘 안 나온다고 하면서 썸네일이 약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확인하니 정말로 다른 영상들보다 덜 자극적이다. '다른 유튜버는 어떻지?' 돈 주고 브랜디드 광고했던 협업 유튜버 영상을 찾아본다.


조회수가 1만이 안된다. 우리 영상 전에 올라온 다른 영상과 이후 영상들을 봐도 조회수가 차이 난다. 팀원이 얘기한 인사이트를 여기에 적용해 보니 썸네일이 덜 자극적이다. 제목도 너무 '제품 홍보 영상'임을 알리고 있다.  



우리 영상보다 1주 전에 올렸던 광고 영상도 이보다 조회수가 잘 나왔는데, 그건 뭔가 정보를 주는 느낌의 영상이었다. 그렇다 보니 우리 제품이 궁금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굳이 이 광고 줄줄인 영상을 보지 않는 것이다. 유명하지도 않고 핫하지도 않은 제품 리뷰를 누가 일부러 본단 말인가.


물론 이 영상이 재미없어서 그랬을 수도...


다음엔 브랜디드보다 긴 PPL 영상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7. 오늘까지 촬영 레퍼런스 파일을 정리하기로 맘먹었는데,


시작하려니까 벌써 5시. 퇴근 1시간 전이다.


우선 어제 정리해 둔 게 있으니까, 다시 맑은 정신(?)으로 파일을 정리해 본다. 어제 갸우뚱했던 부분들, 의견이 필요한 부분들을 TF 동료들에게 던졌다.


다들 의견 피력이 적극적이지 않은 것 같아 내가 먼저 대담하게(?) 의견을 던졌다. 다들 각자의 생각을 말한다. 좋다 좋다.


마지막까지 달리고 싶었는데 나의 피드백을 기다리는 팀원이 있어 끝까지 못했다. 


이제 1개만 풀면 된다. 그럼 바로 견적 의뢰한다.




8. '목적, 타겟, 의도는 무엇인가?'


다음 주 오픈하는 프로모션을 준비하는 팀원이 오후 5시 45분에 SNS 배너 문안을 보내며, 피드백을 요청했다. 나는 다른 업무를 하느라 오십몇 분쯤에 파일을 확인했다. 스크롤을 내리며 슬라이드를 들여다보는데 재미가 없다. 재미가 없는 레퍼런스들을 활용한 것이다. 


재미가 없는 것은 주관적일 수 있겠다. 그럼 이 배너의 의도는 무엇인가. 누구를 위해 이런 카피를 쓴 것인가. 이 배너를 본 사람이 무엇을 하길 원하는가. 구체적으로. 그것이 보이지 않았다. 아마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


화장실을 잠시 다녀오면서 어떻게 피드백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우선 이 팀원의 의도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얘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화장실에 갔다 돌아왔는데 그 팀원이 퇴근을 하려고 겉옷을 입고 있다. 


"OO님. 내일 오전에 문안 설명해 주시면 피드백해 드릴게요."


그리고 자리에 앉아 아까 보낸 메시지에 대한 답변을 확인했다.



제일 어울릴만한 것이라... 그 기준이 무엇이었을지 내일 들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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