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나에게로 가는 시간 -33년을 건너온 육아일기 (육아 편)
1993년 9월 9일 목요일
태어난 지 정확히 5개월이 되었다.
하루 안 본 사이에 준영이는 다시 저만큼 자라 있다. 드디어 배밀이 시대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기기 시작한 것이다. 얼굴 표정에 훨씬 빠르게 이동한다는 자신감이 묻어있다. 운동신경이 좋은가 싶을 만큼 뒤집기도, 기는 것도 빠르다. 준영이가 깨어 있는 동안은 이제 혼자 둘 수 없다. 행동반경이 넓어지고, 위험도 커졌다. 그래도 성격이 밝고 건강해서 다행이다.
준영이를 통해서 생명의 존귀함, 위대함을 본다. 그리고 자식에 대한 애정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라는 막연한 질문도 해본다. 이런 물음이 자식에 대한 욕심을 덜어내기 위한 시도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아이의 본성대로 키우고 싶다. 부모의 작품이 아닌, 아이의 고유한 특성을 살려서 마음껏 자신의 장점을 발휘할 수 있도록!
2025년 12월 10일 수요일
과연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키웠을까?
아니다.
초심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자식을 키우는
긴 세월 앞에서 맥없이 흐려지다가 사라지곤 하는 일이었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본인의 삶을 살도록 응원하는 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특히, 학교를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흑역사는 시작되었다.
아들도 나도 똑같이 학업성적에 전전긍긍하면서 상처와 좌절을 경험했다.
대학입시를 종착역으로 여기는 한국의 공교육 흐름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었다.
자식에게 갖는 쓸데없는 욕심에서 벗어나려고
‘자식에 대한 애정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라는 물음을 가졌던
혈기왕성했던 젊은 엄마를 비웃는 시간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결국 내 안의 불안과 욕망을 내려놓는 일이었다.
자식이 부모의 작품이 아니라, 고유한 인간으로 서는 일을 돕는 존재라는 뻔한 얘기.
5개월 된 아기를 보며 "부모의 작품이 아닌, 아이의 고유한 특성을 살려서"라고 쓴 그날,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달랐다.
초심은 학교 입학과 함께 흐려졌고, 성적표 앞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30여 년의 세월 동안 아날로그에서 디지털시대로 판이 바뀌었다.
다시는 과거의 아날로그가 지배했던 시절로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내 경험과 지식으로는 미시적이든 거시적이든,
어떤 조언이나 충고로 아들을 도울 수 없다는 걸 알아버렸다.
그래도 돌이켜보면,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그 질문 덕분에 나는 욕심의 무게에서 조금 빠르게 벗어날 수 있었다.
현재 건전한 대한민국 남자로 중소기업의 직장을 다니는 아들은
(한국사회에서 30대가 겪을 수 있는 모든 과정을 온몸으로 헤쳐나가면서)
음악에 조금 소질이 있어 보인다. 절대음감을 가졌고 박자감도 남다르다.
지금은 드럼을 배우면서 신나 하고 있다.
독서보다는 운동을 좋아해서 축구며 볼링을 즐기긴 하지만,
본인이 운동 신경이 있는 건 아니어서 스포츠 경기 관람에 더 열광한다.
이 별거 아닌 것을 인정하는데도 제법 시간이 걸렸다.
이 뻔한 얘기를 깨닫는 데 이토록 어렵게,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걸
그 당시에 몰랐다는 것이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말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너는 내 작품이 아니란다. 너는 네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