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나에게로 가는 시간 - 33년을 건너온 육아일기(육아 편)
1994년 1월 25일 화요일
육아는 굉장히 힘든 일이다. 하지만 인생에서 단 한 번 해볼 수 있는 귀중한 경험이고 경이의 세계다.
게다가 아기의 성장은 나를 기억할 수 없었던 내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소중함도 배가 된다.
무엇보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사랑스러움이 매일매일 축복처럼 쏟아진다.
그래서 더욱 순간순간을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다.
둘째 생각이 없으므로 아쉬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육아라는 새로운 경험에 대한 호기심과 신기함이 더 크다. 아이의 성장 과정은 한 번 지나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가 되어버리는데, 자라는 속도가 눈으로 보일 만큼 빠르다. 태어나서 일 년 동안의 성장이 인간의 생애 중 가장 빠르다는 얘기는 정말이었다.
2025년 12월 31일 월요일
육아를 하다 보면 인간의 ‘성장’이라는 단어에 천착하게 된다.
아이의 성장과 나의 성장은 엇갈리고 맞물리면서 흘러왔다.
엇갈려서 삐그덕거릴 당시에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지금보면 맞물리며 잘 굴러온 시간도 제법 있었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 중학교 2학년 때 전혜린의 수필을 만났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모든 괴로움 또다시".
그녀의 삶과 독일 뮌헨을 동경했고,
끝내 시대와 화합하지 못하고 일찍 가버린 것까지도 멋있게 보였다.
내가 사는 세상이 답답하던 차에 나를 알아주는 선배를 만난 것 같았고,
그녀의 절망이 클수록 난 분기탱천했다. 바야흐로 사춘기의 절정이었다.
나를 분기탱천 하게 한 사람은 단연코 외할머니였다.
우리 집안에서 유독 가부장적인 가치관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었다.
사사건건 내가 하는 모든 것에 ‘여자가~~’ 로 시비를 거셨다.
나도 지지 않았다. 그 모든 것에 말대답을 했고 화를 내고 분해했다.
그 당시에는 그런 여자애가 별로 없었던 모양이다.
외할머니랑 워낙 심하게 부딪치니까,
엄마는 외할머니가 오신다고 하면 나를 친구 집에 가서 놀다 오라고 하거나
학교에서 공부하다 늦게 오라고 했었다.
아무튼 나는 좀 이상하리만치 반골 기질이 있었다.
엄마는 나의 투쟁을 '발광'한다고 했는데 미친 사람한테 하는 말이여서 싫었었다.
하루는 내가 왜 나를 미친사람 취급하냐고 했더니 엄마는 뭔 소리냐는 표정으로 무심하게 한마디했다.
“건드리면 해파리마냥 발광하잖아”
알고 보니 발광(發光) /bioluminescence)이었던 거였다.
자극받으면 빛을 내는 해파리처럼, 나는 건드리면 더 빛을 냈던 것이다.
그 말이 이상하게 용기를 주었다. 발광하는 것이 내 사명처럼 느껴졌다.
외할머니땜에 극에 달했던 중학생 때의 답답함이 대학에서 여성학을 만나면서 풀어졌다.
반골 기질은 있었으나 투사가 되지는 못했으므로, 스펀지처럼 빨아들이기만 했던 것 같다.
당시 여성학 강의는 엄청나게 많은 참고도서를 읽고 정리해서 제출하고,
그걸 토대로 토론하는 방식이었다.
동그란 탁자에서 서로를 마주 보고 말하는 것도 신세계였다.
'대학에서 뭐 기상천외한 걸 배우는 건 아니네' 했던 나도 문화인류학과 여성학 시간은 사랑했다.
그렇게 외할머니와의 전투경험과 여성학이론을 갖추고 사회에 나왔는데,
사회는 외할머니와는 비교도 안 되는 센 괴물이었고, 여성학의 이론은 이론이었다.
외할머니는 실체가 분명한 보이는 적이었다면 사회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적이었다.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그야말로 우물 안 개구리였던 거다.
그렇게 결혼과 임신, 출산 그리고 육아까지 그 과정을 고스란히 90년대를 겪었는데,
육아는 여성으로서 삶의 현장이자 혼돈 그 잡채였다.
여기까지만 말하면 내가 뭐 대단한 것 같지만,
고백하자면 난 그저 천둥벌거숭이였다.
아기는 예쁘지만 모성애는 강요하지 말라면서도,
이중적인 모습으로 친정엄마의 육아 도움은 냉큼 받았다.
하지만 또 다른 여성을 묶어둘 수밖에 없는 구조는 종종 죄인같은 죄책감도 동반했다.
게다가 직장맘으로서도 제대로 뿌리 내리지 못하고 떠돌아야 하는
10년의 세월이 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94년 그 해는 12월 말에 (촉탁직으로 있던) 그나마 공무원 비슷한 직장에서 잘렸다.
안정적인 직장의 운은 딱 거기까지 였다.
그 해 아기는 돌을 맞이하고, 날로 사랑스럽고 새로워졌다.
사회로 나가려는 여성에게, 여성성은 축복인 동시에 저주였다.
임신과 출산은 여성으로 가장 명확하게 자리 매김하는 경험이다.
내 몸으로 생명을 품고, 낳고, 키우는 일.
하지만 바로 그 여성성이 사회에서는 걸림돌이 된다.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엄마가 되었다는 이유로 밀려난다.
여성학을 배우고 평등을 외쳤지만,
정작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는 아이를 낳고 나서야 뼈저리게 알았다.
성장에는 고통이 따른다지만, 여성으로 성장한다는 건 더 가혹하다.
아기는 커가는데, 엄마는 작아졌다.
진정한 성장을 제대로 들여다볼 저력이 없던
나는 가짜 욕망을 성장이라고 착각했다.
그래서 비뚫어지며 나를 키웠다. 그러니 올바른 모양일리가!
이상한 모양으로 삐죽 빼죽, 울퉁 불퉁 성장했다.
밀려나서 다른 길로 갈 수밖에 없었고, 그런데 그 길은 제대로 이어지지 못했다.
왜곡되고 비틀렸다. 다른 의미의 '발광(發狂)'이었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
모든 성장은 그 성장의 높이만큼의 방황과 시련을 담보로 하는 거였다.
아기에 대한 제법 세세한 성장 과정과
천사를 키우는 엄마로서의 기쁨을 적은 일기를 읽으면서,
그 안에 쓰지 못한 방황과 실수와 설익은 다짐들이 보여서
나는 내가 자꾸 안쓰럽고 가엾다.
지난 육아일기를 통해
이제라도 나를 위로하고 스스로를 용서하고 시대와 화해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건드리면 발광(發光)한다.
하지만 빛이 공격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알 만큼 노련해진 나는,
때와 장소를 봐 가면서 빛을 숨기기도 하고 드러내기도 한다.
엄마가 말한 발광의 계절은 끝나지 않았지만 빛을 다루는 방법을 연습하면서 성장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