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나에게로 가는 시간-33년을 건너온 육아일기(육아 편)
1993년 8월 27일 금요일
미국의 유명한 컬럼리스트 봅그린이 쓴 육아일기를 어제 하루에 다 읽었다. (그는 아기가 태어나서 돌이 될 때까지 하루도 안 빼고 씀) 내가 쓴 육아일기와 어쩔 수 없이 비교가 되었는데, 그의 육아일기는 훨씬 자세하고 사실적이었다. 문장의 수려함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았다. 얼마나 진실하며 또 구체적이냐는 것이었다. 육아의 과정을 언어로 정확하게 드러내는데 감탄했다. 다시 처음부터 쓰고 싶을 정도로 샘이 났다.
하지만 다시 쓰는 걸 포기했다. 왜냐하면 내가 준영이를 키우는데 그와 같을 수 없고 부족한 대로 시간을 쪼개서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준영이는 준영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제부터 쓰는 일기는 성의를 다해서 단어를 고르고 정직하게 쓸 것이다. 그래야 나중에 일기를 읽으면서 자신을 더 자랑스러워할 테니까. 준영이는 지금의 자신을 기억 못 하니까 자기에게로 향한 정성과 사랑을 이 일기를 통해서 알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2025년 12월 6일 월요일
지난 육아일기를 읽으면서 여러 번 “왜 육아일기를 썼을까?” 생각하게 된다.
또 하나의 답을 찾자면 본인이 얼마나 사랑받았는지,
본인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했는지 알려주고 싶은 기록이었다.
너는 온전히 사랑받고 성장했으니 자신을 귀하게 여기라고 말하고 싶었다.
부모에게는 세상에서 맛볼 수 없는 행복, 기쁨, 감사가 있는데
그 존재가 바로 ‘너’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뭘 잘해도, 뭘 못해도, 그건 너의 존재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걸,
그러니까 살면서 생기는 그 어떤 결과물도 네 존재와는 분리시켰으면 좋겠다는 소망이었다.
네가 노력해서 얻은 성공이나 성취를 잠시 누리고 뿌듯해 할 수 있지만,
그게 네 존재를 다른 사람보다 높이는 자만의 근거로 삼지 않기를.
반대로 실패나 잘못이 잠시 너를 좌절시키고 절망하게 할지라도,
그 역시 네 존재를 비참하게 만드는 건 아니라는 걸 반드시 알았으면 좋겠어서.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를 자꾸 비교하고 평가한다.
시험 점수로, 학교의 이름으로, 연봉으로, 직함으로, 외모로,
내가 존재할 가치가 있다는 걸 우리는 자꾸 증명하려 든다.
엄마인 나조차도 중간중간 너에게 세상의 잣대로 그랬노라고 고백한다.
마음은 튼튼하고 견고한 울타리로 널 지키고 보호하고 싶었으나,
마치 빈틈 많은 울타리 같아서
바람도 들어오고 빗물도 새는 울타리밖에 못되었던
모든 순간이 미안하다.
그래도 성장한 아들에게 다시 같은 말을 하고 싶다.
너는 굳이 네 존재를 증명하지 않아도 된단다.
나무가 "나는 나무입니다"라고 증명하지 않듯이,
너도 그냥 너로 있으면 된다.
존재 자체가 너를 지으신 분의 기쁨이란다.
그러니 너는, 그리고 나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이는,
자기 자신을 증명하느라 애쓰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이미 충분하다. 존재하는 것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