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라떼를 만드는 방법

연재: 나에게로 가는 시간 -33년을 건너온 육아일기 (육아 편)

by 꼭두새벽

1993년 7월22일 목요일


준영이를 친정엄마에게 맡기는데 마음에 늘 걸린다. 아니라고 우겨도 늘 그런다.

가장 미안한 건 아가에게, 그 다음은 엄마다.

내가 직장을 그만두지 않는 한 엄마한테 미안한 마음은 당장 극복할 대안이 없지만,

준영이에게 그릇된 미안함에 대해선 머리로는 많이 극복(?)하고 있다.

아가와 많은 시간을 못 보내는건 미안하지만, '엄마니까' 더 미안한 건 아니다.

이런 속마음을 입밖으로 내면 또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욕을 먹겠지만,

아빠보다 더 미안한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는 것에서 극복되었다는 것이다.

엄마니까 1차 양육의 책임으로 아빠보다 더 미안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말이다.


준영이가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에서 살도록 가정내에서라도 최선을 다해서 교육하고 싶다.

내가 그렇지 못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마다 더 절박하고 간절하다.

그래서 준영이가 남자다움에 얽매여 감정의 다양성을 잃지 않도록 배려할 것이다.

남자도 슬프면 울 수 있고 부드럽게 사람을 이해시키고 돌봄의 마음도 있다는 걸 가르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먼저 정신적으로 무장하고 현실적으로 실천하기 위해 남편과 노력할 것을 맹세한다.




2025년 12월 3일 수요일


나라를 구하는 것도 아닌데

뭘 정신적으로 무장하고 현실적으로 실천하기 위해 맹세를 했는지

지금 시각으로 보면 하찮을 수 있다.


미스터 션샤인이라는 드라마를 보면

‘어제는 멀고 오늘은 낯설며 내일은 두려운 격변의 시간이었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각자의 방법으로 격변하는 조선을 지나는 중이었다.’

라는 내레이션이 나온다.


어떤 시대를 살고 있든 그 시대를 지나는 모든 세대는

자신이 가장 격변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말한다.

지금 세대도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격변을 지나고 있다.

이 말과 쌍벽을 이루는 건 ‘요즘 것들은 예의가 없어’ 라는

고대 이집트 벽화(기원전 1900년)에서 발견되었다는 말일 것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도 “젊은 세대는 버릇이 없다”고

언급했다고 전해지는 거 보면 인류 역사속에서

세대간 갈등이 반복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또 하나, 이제 곧 나올 말

‘다사다난한 한 해가 저물어 간다’는 말도 식상하지만 늘 맞는 얘기다.


육아일기를 보면서 내가 느끼는 격변은 결혼, 출산, 육아에 대한 사회적 정서다.

여성에게만 엄마라는 이름으로 강요가 당연했던

일련의 과정이 이렇게 쉽게 선택해도 되는 거였다고!

그럼 나는 그때 왜 그렇게 고민하고 눈치보고 투쟁해야 했는데?

뭔가 살짝 억울하기까지 하다.


결혼과 임신 출산 육아의 과정이 후회되거나 억울하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면 당연히 ‘그건 싫은데,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라고 얘기할 수 있는 거를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소리쳤다.

그나마 만만한 엄마한테 드러내도 가끔씩 엄마의 억장을 무너뜨리고

엄마 입에서 자주 '미친년' 소리를 들어가며 걸었던 행보가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은 사회가 된 것이다.

주위 일가 친척들과 지인들에게 별스럽다고 욕먹지 않기 위해 겉과 속이 다르게 살아야 했던 시간도 많았다.

지금 생각하니 하드웨어는 같은데 소프트웨어가 좀 다른 나의 '이중 생활'이였다.


그런 인지부조화가 소리없는 아우성으로 이불킥을 하거나

육아일기를 빙자한 분노와 해방의 글쓰기로 풀어내곤 했다.


그래서 ‘라떼는~~’이 생긴거다.

그들은 좀 억울한 거다. 알아줬으면 좋겠는거다.

너무 당연하게 누리는 이 모든 게

당연하지 않았던 시대를 겪고 살아남았는데 인정을 못 받으니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하지만 젊은이들은 ‘그래서 뭐 어쩌라고요?’ 다.


얼마전에 올캐는 자기가 조선시대 태어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며, 그때 태어났다면

아마 벌써 멍석말이 당해 죽었을 거라고 했다.

신분이 명확했던 시대에 노비로 태어나지 않은 거,

가부장적인 억압이 심했던 시대나,

현재도 지구 저쪽에 존재하는 나라에

여성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도 다행이라고 나도 맞장구를 쳤다.


물론 지금 살고 있는 여기도 여러 차별이 존재하고,

신분사회는 아니지만 재산이나 직위를 신분처럼

함부로 휘두르는 분위기가 있다는 것도 인정.

그래도 생계나 목숨의 위협에서는 멀어졌으니 하는 소리였다.


33년을 건너온 육아일기가 추억팔이가 될까 경계한다.

물론 나도 추억팔이를 좋아한다.

추억은 대체로 따뜻하고 정겹고 애틋하며 아련하다.


하지만 사람이 옆에서 굶고,

가난으로 딸을 팔기도 했던 지난 날을

'그래도 그때는 사람들이 서로 위해주고 정이 많았어'라고

무조건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나쁜 건 나쁜거고 힘든건 힘든거다.

내 육아일기를 보면 무조건 좋았다고 말하기에는

힘들었던 순간이 많았고 꽤 길었다.


추억은 시간이 걸러낸 것이다.

좋은 것만 남기고 나쁜 것은 흐릿하게 만드는 게 추억의 또 다른 모습이다.

그래서 위험하다.

추억 속에서는 배고픔도 낭만이 되고, 가난도 순수함이 된다.

하지만 실제로 그 시절을 산 사람은 안다.

그건 낭만이 아니라 고통이었다는 것을.

그러니 조금 다르게 얘기해야 한다.


추억팔이 끝에 다시 춥고 배고픈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게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는 다정하고 친절한 말이 하고 싶었노라고.

그러니까 같은 ‘라떼’ 라도

좀 더 맛있는 라떼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억지나 강요가 아니라

어른답게 이해하고 길을 열어주는 ‘라떼는~~~’를 말하면

배척당하지 않고 귀 기울여 주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쓴맛만 강조하는 아메리카노 같은 라떼 말고,

부드럽고 따뜻한 라떼.

그래서 젊은 세대도 한 모금 마셔볼 만한 라떼~~를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