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평화, 끝은 전쟁

연재: 나에게로 가는 시간 - 33년을 건너온 육아일기(교육 편)

by 꼭두새벽

2001년 10월 30일 화요일

* 초등 2학년 아이 일기

제목 : 수학단원평가

나는 오늘 학교에서 수학단원평가를 봤다. 나는 수학을 좋아한다.
그리고 나는 수학을 잘 보고 싶다. 그런데 한번도 100점을 받아보지 않았다.
집에서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번에 80점을 받아서 엄마가 스파게티를 사 주셨다.
집에서 공부하면 100점을 받을 수 있다.


* 다음 날 엄마인 나의 일기


학습지를 들고 차분한 마음으로

아이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며 나란히 책상에 앉는다.


나는 국어와 한자 담당.

시작은 조곤조곤, 눈도 맞추고 격려도 한다.

그러나 점점 목소리가 격앙되고, 결국 질타와 비난의 말을 하고

그런 내가 한심해서 울고, 아이도 울고.

그렇게 전쟁으로 마무리 짓는다.


아빠는 수학 담당, 대단하다.

평소에 세상에 대한 편견과 좋고 싫음이 너무 분명해서 나를 힘들게 하더만,

어쩜 아이에게는 저렇게 참을성과 친절이 발휘될까?

일관성이 없다고 꼬집기엔,

정말이지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는 아빠의 태도다.

준영이가 수학이 좋다고 한 건 아빠와의 공부 시간 때문일 거다.


반면에 나는 선입견 따위는 없는 그래서 공평한 사람인 척하더니

내 새끼한테는 그게 왜 안 되는 걸까?

평소의 나와, 자식 앞에 선 나는 왜 다를까?

나만 나쁜 엄마가 되었다고 속상해하기엔

아이한테 저런 아빠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안심부터 한다.

나도 내일은 진짜 잘해봐야지.




2026년 2월 11일 수요일


지금 생각하면 웃음도 나지만

그땐 그게 삶의 전부인 것 같았고, 또 그럴 줄 알면서도 계속할 수밖에 없었던 시간들이었다.

1993년 육아일기(임신과 출산 편)를 보면 난 절대 저런 엄마여서는 안 되는 거였다

이렇게 모순덩어리고 앞뒤가 안 맞는 사람이라니....


아무튼 저학년 때 학습지를 꾸준히 한 것은 지금 봐도 참 잘한 선택이었다.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아이에게 공부습관을 만들어 주기에 적절한 학습방법이고 가성비로도 꽤 괜찮았다.

천성이 성실하고, 현실적인 우리아이는 정해진 일정을 소화하는 것에 부담감을 느끼지 않았고,

오히려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얻었던 것 같다.


성실하기는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아빠는 아이의 수학을 중3까지 주말에 꼭 봐주었다.

공부가 끝나면 부자가 기분 좋게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나가곤 했었다.

스포츠 중계도 둘이 꼭 붙어서 보곤 했다.

아마 그런 시간들이 쌓였기 때문에 아들과 아빠는 지금까지 사이가 좋은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라고 삶의 굴곡이 왜 없었겠는가?

초등 4학년, 아빠가 지방으로 발령받아서 주말이면 아이를 데리고 아빠에게 향했다.

아빠는 그곳에서도 손톱과 발톱을 깎아주고, 여전히 수학 문제를 함께 풀었다.

물리적 거리나 고단한 상황도 아이의 일상을 침범하게 두지 않았다.

나 역시 그 일상의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남들은 아이문제로 싸운다고 들었는데, 우리는 아이에 관한 한 의견을 같이했다.

둘 다 어떤 일이 있어도 아이의 일상을 지키고 싶었고, 그걸 위해 노력했다.

아들이 안정적인 어른으로 성장한 건

어린 시절 할머니 삼촌들과 지내면서 받은 사랑,

그리고 부모로서 아이의 일상을 흔들지 않으려는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허물 많고 모순투성이인 인간일지언정,

부모라는 이름으로 기본적인 역할만큼은 그래도 괜찮았음을 다행으로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