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나에게로 가는 시간-33년을 건너온 육아일기(육아 편)
1997년 5월 23일 금요일
아이 목욕을 시키다 고집을 부리고 억지를 쓰길래 나도 화가 나서 손목을 잡아끌며 엉덩이를 적당히 한 대 때려줬다. 아이가 화를 내며 ‘왜 때리냐’며 악을 쓰면서 울어서 순간 당황했다. 왜 때리냐는 말이 섬뜩하게 다가왔다. 아무리 화가 나도 가능하면 말로 하려고 애써왔는데 마음은 급하고 도무지 설득이 안 되니까 나도 모르게 손이 나간 건 아닐까? 아프지는 않았겠지만 자존심 상해하면서 따지는 걸 보면. 준영이가 느끼기에도 그 손에 감정이 들어 있다고 느낀 것이리라.
생각해보니 일단 내 잘못이었다. 목욕한 물은 항상 자기가 버려왔는데 급한 마음에 예고도 없이 엄마가 버렸으니 어깃장을 놓으려고 새 물을 버리면서 저항했던 거였다. 일단 비뚤어진 마음은 내 설득이 먹히지 않았다. 하여 차분하게 대처했다. 때린 것에 미안하다고 사과했고 준영이가 왜 억울해하는지 마음을 헤아려 이해한다고 했다. 그다음에 엄마가 왜 화가 났는지도, 새 물을 그냥 버리면 왜 안되는지도 얘기했다. 그러자 아이가 내 목을 잡고 안기면서 순하게 목욕을 마쳤다. 아이가 모든 걸 이해했으리라고 생각 안하지만 그 느낌은 전달되었을 거로 생각한다. 무엇보다 내가 좀 더 신중하고 절도있게 대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자아가 한층 강해진 네 살의 준영이가 되었다.
2026년 1월 28일 수요일
아이를 키우다 보면 이성을 잃을 때가 생긴다. 우선 엄마가 뭔가에 쫓기거나 체력이 바닥날 때인 것 같다.
최악은 두 상황이 같이 올 때다. 그래서 아기를 키울 때는 시간과 체력 안배를 너무 촘촘하게 하면 안 되는 거였다. 젊은 엄마였던 나는 그런 지혜가 없었다. 시간에 쫓기면 여유롭지 못하고, 내 몸이 힘들면 다정할 수 없다. '다정도 체력에서 나온다'고 했던가.
이 일기를 보면서 떠오르는 장면이 하나 더 있다. 이상하게 그 일은 내게 비수처럼 꽂혀서 불쑥불쑥 어둡고 아프게 기억된다.
준영이 나이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6세 정도였을 거다. 자동차를 깨끗이 세차하고 기름을 넣으려고 주요소에 들렸다. 조수석에는 방송일을 같이 했던 지인이, 뒷좌석에는 준영이가 타고 있었다. 기름을 넣고 차가 출발하자 우유를 먹던 준영이가 우유를 흘렸다. 아이 잘못도 아닌데, 나는 심하게 화를 냈다. 깨끗이 세차한 차에 우유를 흘렸다는 사실에 말도 안 되는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굳이 핑계를 찾자면 아마 시간에 쫓기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완벽했는데 아이 때문에 뭔가 계획이 틀어질지도 모른다는 조바심과 안달이 묻어 있었던 것 같다. 도대체 인생에서 뭐가 더 중요한지 놓쳤던 어리석은 반응이었다.
나는 아들한테 이 일이 아직도 미안하다.
당시 아이는 주눅 들었을 거고, 엄마 마음에 들기 위해 쓸데없는 눈치를 봤을 거였다.
저보다 강한 존재에 대한 두려움으로 비굴한 태도를 익혔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너진다.
물론 이보다 더 심하게 굴었을 순간이 많았을 것이지만 유독 이 일이 생각나는 이유를 잘 몰랐다.
그런데 앞에 일기를 보다가 깨달아졌다. 내 안에 있는 폭력성을 드러낸 사건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보다 약한 존재에게 함부로 해도 된다는 폭력성을 드러내는 미성숙한 부분을 들킨 것이다. 우리는 자식을 본능적으로 사랑해서 내 목숨이라도 바쳐 지킬수 있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그 순간 사랑은 돌연 통제와 지배로 변한다. 나는 당시 준영이가 이해할 수 없는 언어폭력을 가했다. 아이가 통제할 수 없었던 상황을 내가 만들어 놓고 (아이가 우유를 먹고 있음을 확인하지 않고 차를 출발 시킨 것) 설명이나 이해 없이 조심성이 없다고 심하게 아이를 몰아세웠다.
나는 그때 일을 생각하면서 지금도 나 자신의 밑바닥을 본 것 같아 몸서리가 쳐진다. 목격자인 후배 앞에서 내 행동을 정당화하고 싶었는지 아이에게 끝끝내 사과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 기억이 아직까지 나를 붙잡고 있는 이유는 분명해졌다. 약한 존재를 함부로 대할 수 있는 내 안의 폭력성을 조심해야 한다는 '벌' 인 것이다.
그래서 이 기억은 떠나지 않는다. 용서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잊지 않기 위해서. 내 안에 그런 폭력성이 있다는 것을, 사랑한다는 이름으로 얼마든지 상처 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서.
97년 일기를 보면 그나마 사과했다. 때린 것에 미안하다고 했고, 아이의 마음을 헤아렸다. 그런데 6세 준영이에게는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당화했다. 같은 사람이 왜 이렇게 다르게 반응했을까?
답은 간단하다. 목격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4세 때는 집에서 둘이 있었고, 6세 때는 후배가 있었다. 후배 앞에서 나는 '제대로 된 엄마'로 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이에게 사과하는 대신, 아이가 잘못했다는 걸 증명하려 했다. 내 체면을 지키기 위해 아이를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다.
육아일기를 다시 펼치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부모가 아이에게 가하는 폭력은 대부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 "네가 잘되라고", "네가 조심해야지", "다음엔 더 잘하라고". 하지만 그 순간의 진실은 다르다. 내 불안, 내 조급함, 내 체면, 내 분노를 아이에게 쏟아붓는 것뿐이다.
아이는 자랐고, 이제 서른을 넘긴 어른이 되었다. 그 일을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진작 잊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잊지 못한다.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사랑한다는 이름으로 얼마나 쉽게 상처 줄 수 있는지 기억하는 것. 그것이 육아일기를 다시 펼친 이유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완벽한 부모는 없다. 하지만 자신의 실수를 직시하고, 그것을 반복하지 않으려 애쓰는 부모는 될 수 있다.
아니, 지금도 여전히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