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연재 : 나에게로 가는 시간- 33년을 건너온 육아일기(임신과 출산편)

by 꼭두새벽

1992년 12월 11일 금요일


정말 안타까운 건 이것이 남성에게 없다는 것이다.


생명을 내 안에 잉태시킨다는 건 아무리 여러 번 강조해도 부족할 만큼 경이롭고 아름다운 일이다.

물론 임신과 출산의 일련의 과정이 여성의 지위를 이 지경으로 떨어뜨린 주범이라는 걸 감안해도 마찬가지다. 아무튼, 임신은 삶을 위대하게 만드는 대단한 경험이다. 이 경험을 원천적으로 할 수 없는 남성들이 불쌍하다.

나는 남성도 여성과 같이 생명에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해야 한다는 생각이 요즘 강하게 들고 있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를 통틀어 한 인간의 성장 과정을 여성과 같이 해야 한다.

왜냐면 그 어떤 지식보다 인간을 존재 그 자체로 소중하게 여기게 되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이토록 치열하고 정직한 경험을 남성은 (미련하게도) 그동안 여성에게 빼앗겨 버린 것이다.


생명을 성장시키는 일은 마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표현해야 하며 실천해야만 하는 일이다.

여성들은 남성에게 이 위대한 경험을 같이 공유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참여할 기회를

적극적으로 마련해 주어야 한다. 그런 의미로 나는 남편에게 아기에 대해 자세히 얘기하고 같이 의논한다.

그래서인지 요즘 남편은 분만장에 아빠를 참석시키지 않는 불합리한 처사에 대해 자주 불만을 토로한다.

남성도 아기의 탄생을 지켜볼 권리가 있고, 남성은 그걸 당당하게! 요구해야 한다.


남편은 결혼 후 내게 했던 것처럼 아기에게도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을 쏟고 있다.

그런 마음가짐과 분명한 태도를 나는 사랑하고 있다.

사랑은 물론 형태도 빛깔도 없으니 눈에 보이거나 만져지는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그것보다 더 크게 느낌으로 전달되는 것이 분명하다.


지금도 아기는 내 안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며 날 필요로 하고 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생각에 저절로 행복해지는 순간이다. 밖에는 지금 축복 같은 눈이 내린다.



2025년 11월 5일 화요일


임신과 출산의 경험을 할 수 없는 남성들을 불쌍하게 생각했다니. 지금 읽으니 좀 웃긴다.

하지만 당시엔 정말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생명을 잉태하는 경험이 너무나 경이로워서, 이걸 경험하지 못하는 남성들이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임신과 출산이 여성의 지위를 떨어뜨린 주범이라고 쓰면서도,

동시에 그 경험을 남성들이 못 해서 불쌍하다니. 모순적이지만 그게 당시 내 솔직한 마음이었다.


육아일기 속 내내 반복되는 주제는 임신·출산·육아 과정에서 남성의 참여를 끈질기게 원했다는 점이다.

지금 돌아보면 그 바람이 세월을 따라 조금씩 이루어져 왔음을 느낀다.

남편이 분만실에 들어가는 것이 당연해졌고, 임산부 배려 좌석이 생겼으며, 공공장소 흡연은 금지되었다.

남성 육아휴직이라는 제도 역시 이제 낯선 단어가 아니다. 실행 여부와는 별개로 말이다.


그리고

그 모든 걸 뛰어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한때는 먼 나라 이야기 같던 저출산이 이제 한국 사회가 정면으로 마주한 과제가 된 것이다.

어쩌면 여성들이 속을 끓이며 분노하던 것들이 풀리지 못한 채 쌓여,

지금의 저출산이라는 현실로 터져버린 건지도 모른다.

개인들의 이기적인 선택이 아니라,

오랫동안 우리 사회가 도피해 온 문제들이 드러난 결과라고 생각한다.


샘통이다, 거봐라. 내가 뭐랬냐! 하는 마음이 들지만 해결해야 할 사회적 과제는 너무도 심각하다.

이제라도 정책과 제도가 시민들의 실제 필요를 세심하게 살피고,

여성들이 겪어 온 억울함과 부당함을 풀어내는 데 진지하게 힘써야 한다.


92년도 뱃속에 있던 아가는 이제 어른이 되어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결혼을 서두르지 않고, 결혼을 한다 해도 아이를 반드시 가져야 한다는 생각은 없어 보인다.

세대가 달라지면 삶의 선택지도 달라진다.

그 변화는 자연스러운 흐름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풀어내지 못한 숙제들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시대가 남긴 무게와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결국 우리 모두가 함께 짊어지고 가야 할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