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나에게로 가는 시간-33년을 건너온 육아일기 (육아편 프롤로그)
출산 휴가 60일을 다 채우지도 않고 출근했었다.
사무실에서 왜 벌써 나왔느냐고 놀라워 했더랬다.
육아할래? 야근할래? 야근이요를 자주 반복했다.
내 안에 명분은 얼마든지 있었다.
출산한 여성의 사회생활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사회에,
모성애를 강요하지 말라며 '비뚤어질테야'라는 심정이었다.
그리고 나는 정말 주책없이 비뚤어졌다.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해서라고 스스로 위로했지만,
그 안에는 회피가 있었다. 야망도 있었다.
양쪽을 다 잘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은 자만도 있었다.
육아도 잘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여성들의 자서전도 봤다.
나도 저들처럼 할 수 있다고,
그들의 진취적인 사고방식을 따라 하면 된다고 믿었다.
그걸 슈퍼우먼 신화라고,
그것도 위험하다고 지적하는 시각도 모르지 않았지만,
그 당시엔 ‘대체 그럼 나더러 어쩌라고?’ 그랬다.
그리고 뭐가 남았나.
월급을 착실히 모아 저축을 한 것도 아니고,
사회적 지위가 생긴 것도 아니고,
아이에게 충실한 엄마도,
내조를 잘하는 아내도 못 되었고,
말하자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속만 시끄럽고 외로운 인간이었다.
웃긴 건, 그렇게 얻으려 했던 것들을
지금은 별로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당시 내 모습은 머리만 비대한 괴물이었다.
그 커져버린 머리를 가누지 못해 이리저리 흔들렸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는 형국이었다.
부끄러운 고백이 될 테지만,
내 인생의 가장 큰 진폭과 진동으로 해매던 방황이었다.
물론 얻은 것도 있지만, 많은 걸 잃기도 했다.
남들이 보기엔 평범한 삶이,
내 속에선 풍랑과 파도가 격하게 일었다.
세월이 흘러 다시 기록을 펼치자,
서른쯤의 내가 지금의 나를 부드럽게 불러내고 있다.
이제 답을 해보라고. 자기 자신과 화해해 보라고.
결혼을 하지 않았을 수도
결혼을 했더라도 아이를 갖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가보지 않은 길은 쓸 수 없다.
그래도
내가 걸어온 길은 혹시 다른 이들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이 육아편을 시작한다.
이 육아편은 1993년 출산 직후부터
아이가 성인이 되기까지의 시간을 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