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찮다. 빨리 가라"

연재 : 나에게로 가는 시간- 33년을 건너온 육아일기(육아 편)

by 꼭두새벽

1993년 8월 30일 월요일


준영이는 계속 잘 웃고 건강하다. 4개월이 훌쩍 넘었다. 나는 요즘 준영이가 이빨 없이 잇몸과 입술만으로 환하게 웃을 때 정말 행복해진다. 잇몸만으로 이런 웃음이 가능하다는 게 신기하다. 이가 나고 나면 그 웃음도 다신 볼 수 없을 것이다.


준영이 할머니(친정엄마)는 준영이의 대변인이다. 말을 못 하는 준영이를 대신해서 모든 말을 한다. 난 도저히 상상도 못 할 말을 엄마는 거침없이 하신다. 대학 나오고 말이나 글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으리라 자신했던 나도 엄마는 못 당한다. 준영이를 대신할 때 엄마는 당신의 목소리가 아니라 약간 톤이 높은 목소리로 한다. 중요한 건 그 얘기 속에는 준영이를 우리와 똑같이 인격적으로 대하는 정신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아직 5개월도 안 된, 말도 한마디 못할 뿐 아니라 제대로 앉아있지도 못하는 아가를 엄마는 어른처럼 대한다.


준영이의 어떤 행동을 보고 우리가 감탄이라도 할라치면 “내가 말만 못 하지 다 안다” 그러니까 날(준영이) 무시하지 말라는 의미가 있다. 그건 엄마의 생각을 준영이를 통해서 하는 게 분명 아니다. 준영이의 생각을 엄마를 통해서 하는 것이다.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엄마는 마치 준영이의 무언의 소리를 듣고 다만 전달만 한다는 느낌이다.


아무튼, 난 엄마의 이런 육아가 존경스럽게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독립성이 강해진 건 아마 엄마의 이런 육아 방법의 효력이 아닐까 처음으로 생각했다. 아가를 어른의 세계로 동등하게 진입시켜 대화함으로써 자신이 살아야 할 세상을 빨리 익히게 하는 것일지도. 오늘도 우린 엄마를 통해서 준영이와 어른처럼 대화한다.


아, 그리고 준영이의 별명이 생겼다. “또란이”다. 엄마의 작품이다. 똘똘이의 작은 말이라고나 할까. 우리가 또란아~~하고 부르면 준영이는 그 이 없는 잇몸의 함박웃음으로 우릴 본다. 행복하다.




2025년 11월 26일 수요일


따뜻해서 저절로 미소가 번진다.

육아일기를 보면서 정말 ‘나에게로 가는 시간’을 경험하고 있다.

여성의 낮은 지위와 사회적 몰상식에 분노하기 잘하는 젊은 엄마이기만 했다면,

피곤한 육아가 됐을 거였다.

다행히 이렇게 행복하고 따뜻한 부분이 있어서 지금 난 행복하다.

자식의 효도는 이런 거다.


우리 부부가 직장생활을 했었어서 엄마 집 근처에 살면서,

평일 낮엔 친정엄마가 아기를 돌봤다.

주말이나 휴일에만 우리가 아기를 데리고 갔다가

월요일 아침이나 일요일 저녁에 다시 엄마에게 준영이를 맡기곤 했다.

평일 저녁 엄마한테 밥도 얻어먹고 아기를 보다가 아기가 졸려하면 집으로 돌아갔다.

미안한 마음으로 아가와 엄마한테 인사를 하면

아기를 안고 우리를 배웅하던 친정엄마가 우리 뒤통수에 대고 이런다.

“귀찮다. 빨리 가라” 아니면

“잘 가라. 낼 보자”

이 말을 마치 준영이가 우리한테 하듯이 무심히 툭 던지면

그때 준영이는 정말 귀찮고 졸리다는 표정을 짓는다.

둘의 콤비가 환상이었다.


결혼 전까지 나는 친정엄마와 그리 친한 딸이 아니었다.

그러나 엄마가 내 자식의 육아를 해주면서 당연히 엄마와 친해졌을 뿐만 아니라,

전보다 엄마를 더 이해하고 진심으로 감사했었다.

아기를 돌봐주는 엄마를 보면서 저렇게 나를 키웠다고 생각하니 감사가 저절로 나왔다.

육아를 통해 가족의 유대감이 더 끈끈해진다는 건 육아의 순기능이다.

그때 당시 자식을 향한 내 마음을 보면서

'내 자식에게 하는 거 십 분의 일만 엄마한테 해도 아마 나는 효녀일 거다’였다.

그래서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라고 했나 보다.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무조건적인 사랑에 비해

자식이 부모 생각하는 마음은,

애써 노력하거나 조건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좋겠다.


33년이 지난 지금 우리 엄마는 치매가 진행되고 있다.

단기 기억부터 사라지므로 방금 한 일을 묻고 또 묻고 무한 반복이다.

인지능력이 조금씩 쪼그라들어서 점점 아기로 돌아가고 있다.

93년 당시 지금의 나보다 젊었던 엄마는 이제 88세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마음이 아파서 잠시 진정해야 했다.

4개월짜리 아가를 당당한 어른으로 대했던 엄마는

종종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의 행동을 보인다.

그런 엄마를 가끔 답답해하는 나를 보며,

자식은 끝까지 이기적인가 생각하면서 반성한다.

난 아직도 93년의 엄마만 내 엄마라 착각하고 싶은가 보다.

하지만 이제 장성한 손자가 자주 안 온다며 (사실 며칠 전에 갔었던) 기다리는 할머니다.

엄마의 치매는 공격적이지 않고 귀엽다.

외식하러 나갈 때 지갑도 카드도 잘 챙기지 못하면서, 항상 당신이 밥을 사겠다고 나선다.

마음만은 여전히 자식을 키우는 엄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