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나에게로 가는 시간- 33년을 건너온 육아일기(육아 편)
1993년 9월 2일 목요일
난 천사에게 환영받는 엄마다.
퇴근하고 집에 갔을 때 준영인 보행기를 타고 있었다. 날 보더니 그이(치아) 없는 환한 웃음으로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두 팔을 양쪽으로 벌리고 환영을 표했다. 준영이는 세상에서 제일 반갑게 날 맞이했다.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적인 환영식이었다.
친정엄마는 준영이가 날 엄마인 줄 안다는 걸 인정하지 않았다.(그건 준영이를 돌보는 당신의 특권이셨다)
하지만 어젠, 친정엄마도 "어미인 줄 아는 모양이다"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만큼 나를 향한 준영이의 환영식은 대단했던 것이다.
난 친정엄마의 특권을 뺏을 생각이 없다. 아들이 삼촌들과 할머니가 있는 대가족 분위기에서 자라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젊은 엄마 혼자 육아를 담당하는 다소 폐쇄적인 육아 환경은 지양한다.
생후 5개월이 된 준영이는 장난이 뭔지 아는 것 같다. 맘마를 먹을 때도 눈웃음을 치며 예쁜 소리를 낸다.
쉴 새 없이 웃음 지으며 눈을 맞추고 얘기를 하자고 소리를 낸다. 그 모습을 준영 아빠는 참 좋아한다.
5개월 된 아기는 그냥 천사다.
2025년 12월 13일 토요일
준영이가 없었으면 내 평생 이런 감동적인 환영을 받을 일이 있었을까?
그러고 보니 그 이후로도 아들한테 받았던 수많은 환대가 기억났다.
단지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해준 그 많은 환대를 왜 잊고 있었던 걸까?
갑자기 그 기억만으로도 나는 기쁨이 넘치고 가슴이 웅장해졌다.
맞다. 갑자기다.
이 일기를 보는 순간 찾아온 이 벅참을 뭐라고 설명할까?
이런 순간의 행복과 기쁨을 알고 있었는데
그래서 나는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 왔는데, 그 시작이 아들이었다는 걸 새삼 육아일기를 펼치며 깨닫는다.
내가 아기를 키운 게 아니라,
내 쪽에서 아기를 일방적으로 사랑한 게 아니라
아들이 나를 키웠고,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해 준 것도 아들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퇴색되었더라도
그 시간들이 반짝 거리는 건
아마 그 순간이 한 치의 거짓도 위선도 없이 사랑한 순수한 결정(結晶) 그 자체였기 때문이리라.
우리는 흔히 내가 가장 빛나는 순간이 내가 잘해서라고만 생각한다.
그래서 자주 억울하고 또 힘에 부쳤나 보다.
나 혼자 애쓰는 것 같았고, 내 노력으로만 뭔가를 이뤄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나를 가장 빛나게 한 건
곁에 있던 아가였고, 또 부모였고, 친구였고,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로부터였다고
생각되니까 사람이 귀하고 보배롭다.
그러니 누군가 나를 진심으로 환영하는 순간이 있다면
놓치지 마시라.
그때가 바로 당신이 존재만으로
가장 빛나는 순간이 될 거니까.
육아일기를 보면 나한테는 그게 아들이었다.
퇴근하고 갈 때마다 온몸과 마음으로 환영하는 아가가 있어서
내 존재가 빛났던 것이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환영해 줄 때
상대방이 가장 빛나는 순간이 된다는 걸 기억하자.
나는 오늘 누구를 가장 환영해 줄까?
얼른 생각이 안 난다.
그렇다면 적어도 누군가를 적대적으로 여기지 말자.
그것도 환영의 한 형태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