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는 예쁘지만,
모성애는 강요하지 말아줘!

연재 : 나에게로 가는 시간 - 33년을 건너온 육아일기(육아편)

by 꼭두새벽

1993년 9월 22일 수요일


아기가 태어난 지 5개월 보름쯤 되었다.

얼마나 이뻐졌는지 정말 사랑스럽다.

아가의 웃음도 좋지만, 호기심에 가득 찬 눈망울이 나는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안아주면 자신의 높이에서 볼 수 없었던 풍경이 들어와서 그런지 새까만 눈망울이 더 빛난다.

그 빛나는 눈망울로 나를 보는 이 아이는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이 와중에 나는 강요된 모성애를 경계한다.

한편, 정작 아기에 대한 소중한 감정을 놓칠까 봐 전전긍긍하는 이상한 엄마다.

강요된 모성애를 조심하는 건 진심으로 준영이가 자유롭기를 원해서다.

엄마의 지나친 애정이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그리 건강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모성애만큼이나 부성애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개인적인 사명감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권리나 의무를 지켜주는 것이 곧 아이의 세계를 넓히는 일이라 믿는다.

다행히 남편은 내가 애쓰지 않아도 그 믿음을 행동으로 보여준다.

준영이는 아빠를 참 좋아한다.


다른 이야기 같지만, 같은 맥락에서 나는 또 하나를 조심한다.

직장을 다닌다는 이유로 내 아이를 특별히 안쓰럽게 여기지 않으려는 것이다.

물론 아이가 아프거나 다칠 때면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그건 온종일 엄마가 곁에 있는 아이도 겪는 자연스런 과정이다.

우리 아가는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며 대체로 건강하다.

무엇보다 아빠와 할머니, 삼촌들에게서도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있다.

그래서 나중에 아들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엄마가 온 종일 곁에 있진 못했지만, 다른 가족들에게도 충분히 사랑받고 자랐단다.”


나는 ‘아이는 무조건 엄마가 키워야 바르고 건강하게 자란다’는 말로 걱정하는 시선을 거부한다.

오히려 하루 종일 엄마 한 사람에게만 의존하는 돌봄이야말로,

아이도 엄마에게도 건강하지 못 한 경우도 있다는 걸 고려해야 한다.




2025년 12월 17일 금요일


아기는 세상 무엇보다 소중했지만, 강요된 모성애는 싫었다.

당시의 만연한 정서와 조용히 싸우며

‘다른 방식의 엄마’로 살고자 했던 젊은 내가 있었다.


모성애가 본능이며 그토록 아름다운 거라면 모두가 공유해야 하지 않았을까?

역사를 돌아보면,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은 언제나 기득권이 쉽게 내어주지 않았다.

육아와 가사가 오롯이 여성의 몫이었던 이유는,

그 일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탐낼 만한 가치로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모성애는 여성의 희생을 포장하는 논리로 사용되면서

인류가 얻었던 건 대가 없는 노동이었다.

별로 탐나지 않는 가치를 여성에게 전담시키고

그 대가로 여성들의 지위는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낮아지는

이런 이중성은 아주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그리고 알다시피 산업혁명 이후 가부장적인 논리와 자본주의가 결탁해서 더욱 공고해졌다.


당시까지 대부분 집에서 남자의 주방 출입을 공식적으로(?) 금기시 했다.

물론 일부 생각 있는 남편들이 설거지나 청소를 도왔지만,

시댁 식구가 오면 상황은 달라졌다.

남편이 부엌일을 하면 마치 큰일이라도 난 듯 눈치를 주거나 대놓고 타박했다.

그들의 논리는 ‘남자가 부엌일을 하면 큰 일을 못한다’ 였다.


그런데 준영 아빠는 달랐다. 그는 아기 목욕부터 집안 청소, 빨래까지 제 몫을 했다.

다행히 친정이나 시댁 어느 쪽에서도 그 모습을 대놓고 비난하지 않았다.

나는 거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지금 돌아보면 조금 웃기지만, 틈틈히 ‘의식화 교육’도 잊지 않았다.

그가 더 마음 놓고 가사와 육아에 참여할 수 있도록 옆에서 응원했다.

“당신은 나를 도와주는 게 아니야.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거야. 인류의 해방이야.”

이 말은 진심이었다.


물론 그에게도 한계는 있었다.

대기업을 다니던 남편은 대부분 귀가가 늦었다.

토요일도 오전 근무를 하던 시절이었는데,

그나마 하루 있는 휴일인 일요일에도 회사 일로 나가는 경우가 잦았다.

결국 집안 일을 함께하고 싶어도 시간과 제도의 벽 앞에서는 개인의 의지만으로 한계가 있었다.

비약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래서 제도의 중요성을 알고,

선거도 잘해야 한다는 것도 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라고 나는 지금도 명심하는 중이다.


자식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독점하는 것도 힘들지만,

독점하지 않으려는 노력도 쉽지는 않았음을 고백한다.

우리 가정도 여러 고난과 시련이 있었다.

그런 중에도 아버지의 자리를 인정하고, 그 자리가 흔들리지 않도록 애썼다.

다행히 그런 균형의 노력은 지금 아들의 모습에서 확인된다.

자식을 끔찍하게 여기는 남편이었기에 아버지의 자리를 잘 지켜주었고,

성인이 된 아들은 아빠하고 여전히 살갑다.

돌아보면 육아에 대해서 후회와 자책이 왜 없겠는가.

그래도 이 부분은 ‘참 잘했다’ 서로에게 칭찬할 수 있다.


한쪽은 과잉된 책임으로 지치고,

다른 한쪽은 소외된 채 외로워졌던 육아문화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지금은 아이에 대한 돌봄이 여성만의 의무가 아니라,

인간의 본능으로 회복되는 쪽이다.

개인에게만 맡겨두지 않고 사회가 같이 책임지고 참여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완벽하지 않지만 적어도 세상은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시대가 변하는 건 다양한 변수가 있겠지만,

한 사람이 품고 있었던 좋은 씨앗이라는 게 있음을 믿는다.

그 한 사람들의 바람과 작은 행동이 세상을 바꾼다.

한꺼번에 혁명적으로 바꾸지는 못해도 결국 좋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는 걸

33년을 건너온 육아일기를 통해 알게 되어서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