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나에게로 가는 시간-33년을 건너온 육아일기(육아 편)
1993년 12월 27일 월요일
아기의 9개월 발달 과정에서 부모는 무엇을 해주어야 하는지,
아기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오늘 저녁에는 꼭 책을 찾아봐야겠다.
사실 아기와 함께 있을 때는 뭘 해야 하는지 생각할 여유가 없다.
그러다 육아에서 잠시 벗어나 사무실에 앉아 있을 때
비로소 차분히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누구든 아이와 종일 붙어 있는 것이 꼭 최선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가끔은 하루에 몇 시간, 아니 잠깐잠깐이라도
아기와 떨어져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지난달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이제 봄이 되면 준영이는 걸어 다닐 테고, 그때는 안심하고 놀이터에서 놀 수 있을 것이다.
엄마와 함께 살게 되니 무엇보다 아침저녁으로 준영이를 실컷 볼 수 있는 게 가장 기쁘다.
어른들끼리 이야기를 하면 귀를 쫑긋 세우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빤히 쳐다본다.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학습 중이다.
사랑스러운 학습이다.
2025년 12월 27일 토요일
요즘은 육아에 관한 책뿐 아니라 단편적인 정보도 잘 나와 있다.
육아 관련 각계의 전문가들이 이론부터 현실적인 처방까지 친절하게 알려준다.
특히 엄마가 아이에게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에 관한 책들을 보면,
감탄이 나올 정도다.
문제는 그런 걸 보고 있으면 자책이 밀려온다는 것.
왜 진작 저렇게 하지 못했을까.
이제 다시 기회가 온다면 훨씬 더 잘 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다 문득 생각해 본다.
정말 몰라서 못했던 걸까?
아니다.
구체적인 방법은 몰랐을지 몰라도,
기본과 원칙을 알면서도 지키지 못했던 순간들이 더 많았다.
1993년까지의 육아일기만 보면, 아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겠다고 썼다.
적어도 일기 속의 나는 꽤 괜찮은 엄마처럼 보인다.
그런데 아이가 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이어지는 육아일기를 다시 읽다 보면
일단 한숨부터 나온다.
육아를 길게 잡아, 한 인간이 성인이 되는 과정,
대략 18세까지의 시간으로 본다면
나의 흔들림과 실수는 그 세월만큼 점점 바닥을 드러낸다.
“육아는 아이를 키우는 일이었을까,
나 자신의 바닥을 드러내는 과정이었을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다.
그러니 이 글은 육아를 잘한 사람의 기록이 아니다.
임신하고 출산하면서 다짐했던 나와
2000년대 공교육 현장에서 무너져가던 나는
과연 같은 사람일까 싶어진다.
임신과 출산의 초심은 분명했지만
초심과 점점 멀어지며 흔들렸던 한 여성의 시간이 보인다.
아이를 사랑했고, 또 아이와 싸웠던 시간들,
육아와 사회생활을 병행하려 애썼던 여성으로서의 나,
급변하던 90년대 한국 사회 속에서
살아남으려 발버둥 쳤던 한 사람의 기록이다.
과거의 육아일기와 나란히 놓고 쓰는 이 글들은
그래서 단순한 회상이여서는 안된다는 사명(?)이 생겼다.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인류의 과거를 다룬 소설 『신』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과거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
인류 전체의 과거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
자기들의 개인적인 과거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그 과거를 다시 살게 될 것이다.
인류 전체의 과거까지는 아닐지라도,
개인의 과거만큼은 이해하고 싶었다. 그 잘못된 시간을 다시 살게 될까 두렵다.
그래서 지금을 살핀다.
이것이 ‘나에게로 가는 시간’을 여행하는 이유다.
그리고,
이제는 생물학적으로 같이 늙어가는 (스무 살 중반부터 인간의 노화는 시작된다니까)
아들을 바라보며 인생 선배로서 내 역할이 무엇이어야 하는지까지 생각한다.
후회와 자책으로 과거에 매몰되고 싶지는 않다.
아이와 함께 흔들리며 성장한 지금의 내 모습을 정확히 들여다보면서
이제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세워서
지금도 성장하고 있는 아들이 함께 살아갈 세상을 그려본다.
내가 속해 있는 세계를 여전히 학습중인 사랑스러운 학습자가 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