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나에게로 가는 시간 - 33년을 건너온 육아일기(임신과 출산편)
1993년 4월 14일 수요일
출산 후 집에 온 지 나흘째. 오늘만 빼고 사흘 동안은 제대로 몸조리를 할 수 없었다. 엄마가 모든 걸 잘 해주는데도 회음절개한 부분의 통증 때문에 아기를 안고 젖을 먹이는 일이 중노동처럼 느껴진다. 아직 아기의 생체 리듬에 익숙하지 않아 밤이고 낮이고 잠을 설친다. 온 종일 정신이 몽롱하고, 몸은 무겁고, 눈에는 잠이 쏟아진다. 다행히 오늘은 2시간 숙면을 하고 나니 한결 몸이 가벼워졌다.
또 하나 나를 괴롭히는 건 출산 후 변비다. 하루도 안 거르고 변을 보긴 하지만 눈물이 날만큼 힘들다. 내가 간과한 게 있었다. 출산 후 몸조리가 이렇게 고단한 일이란 걸, 상상도 못했다. 내 몸의 변화는 짐승처럼 원초적이다. 특히 출산 후 나오는 찌꺼기, 이걸 오로라고 하던데....오로를 처리할 때 마다 딱 내가 짐승이 된 느낌이다. 다시 사람답게 예전의 나로 되돌아가는 일이 이토록 구차하고 지난한 과정일 줄이야.
어제는 젖이 모자란지 아기가 밤새 보채서 나도 울었다.
혼자 아기와 단둘이 있을 때면 어둡고 험한 숲에 버려진 기분이 들었다. 엄마가 아기와 함께 자고 가는 날엔 얼마나 마음이 편해지는지 모른다. 그래서 남편의 귀가가 늦는 날이면 원망이 쏟아졌다.
2025년 10월 09일 목요일
일기를 다시 읽으며 마치 딸의 출산기를 지켜보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서른 살의 나를 본다.
처음 겪는 일에 당황하며 두려워하는 내가 안쓰럽다.
당시 나는 임신과 출산을 너무 추상적으로 생각했다.
뭔가 시작할 때 책을 통해 학습하는 버릇이 있던 나는
임신, 출산에 관한 최신의 정보를 책을 중심으로 수집해서 나름 준비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출산 후에 일어나는
이런 세세한 몸의 고통과 육아의 고단함을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지 않았다.
듬성 듬성한 정보였던 것이다. 93년, 그때는 휴대폰도, 인터넷도 없던 완전한 아날로그 시대였다.
요즘 엄마들은 산후 조리원에서 2주~4주동안 있다가 집으로 오는 모양이다.
93년 당시 친정엄마에게만 의지했던 나는
요즘 산후조리원의 시설과 돌봄 프로그램을 알았을 때 신세계를 보는 것 같았다.
하나마나한 얘기지만 우리 때도 요즘같은 산후조리원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조리원을 나와서도 조리원 동기들끼리 밥도 먹으면서
정보를 교환하며 아기를 키운다는 걸 알고 나서 세상 부러웠다.
유모차에 아기를 태운 키도 크고 늘씬한 엄마들이
커피를 들고 즐겁게 웃는 모습을 보면 내 얼굴에도 미소가 번진다.
하지만 그때로 다시 돌아가라면 노 탱큐!
산후조리원의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 꼭 좋은 면만 있는 건 아니란다.
그래도 만약 과거로 돌아가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다면 무조건 산후조리원에 들어갈거다.
엄마의 고생도 덜고 싶고, 무엇보다 산후우울증의 고립감을 혼자 견디지 않아도 됐을 테니까.
내가 겪은 산후우울증은 호르몬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전적으로 책임져야 할 생명을 앞에 두고 방금 엄마가 된, 아무것도 모르겠는 막막함과 낯설음이었다.
엄마는 저절로 알아서 하는 줄 알았는데 닥치고 보니 전혀 그렇지가 않았던 것이다.
정말 필요한 건 실제적인 지침이었고,
육아에 대한 부담이 당연하다는 걸 얘기해주며 다독일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정말이지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은 이 모든 과정속 디테일을
다른 이들은 다 어떻게 알고 해내는지 궁금했던 초보 엄마였다.
그렇게 끝이 보이지 않던 모든 과정을 좌충우돌 하면서 무사히 마쳤다.
그리고 참 다행이다.
엄마가 된 여성이 혼자 감당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되었다는 게,
그 시절의 나를 대신해 고맙고 안심이 된다.
조리원이라는 제도, 육아휴직, 임산부 배려석, 각종 커뮤니티와 온라인 정보까지
—이제는 여성들의 고단함이 사회의 몫으로 나누어진 시대가 된 것이다.
그 변화가 완벽하지는 않다. 여전히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많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때의 내 고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믿음이다.
오랫동안 수많은 여성들이 흘린 눈물과 분투가, 지금의 제도와 인식의 밑거름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여자로서, 엄마로서, 한 세대를 건너온 사람으로서 세상이 조금은 나아졌다는 사실이 고맙다.
지금은? 자식이 자란 만큼 난 나이를 먹었지만,
나름대로 지금의 삶에 충실할 수 있으니 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