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은 현재의 밀도를 높인다.

연재 : 나에게로 가는 시간- 33년을 건너온 육아일기(육아 편)

by 꼭두새벽

1993년 8월 26일 목요일


준영이가 태어난 후 길에서 마주치는 아가들의 개월 수를 맞춰보는 이상한 취미가 생겼다.

점심시간이면 어린이 병동으로 가서 아이들을 구경하는 것도 재밌다.

내 자식은 엄마한테 맡기고 나는 나와서 딴 집 자식들의 개월 수를 맞춰보고 물어보는 거다.

어이없다.


퇴근하고 집에 오자마자 할머니 등에서 준영이를 받아 바닥에 엎드려 놓고, 나도 같이 얼굴을 맞대고 즐거운 시간을 가지려던 참이었다.

그때 준영이가 너무 좋아서 고개를 흔들다가 내 이빨에 머리를 세게 부딪치고 말았다.

아직 말랑말랑한 준영이의 머리는 내 이빨보다 약하다.

웃고 있는 내 이빨에 준영이의 머리가 사정없이 부딪쳤을 때의 끔찍한 느낌이 지워지지 않는다.

주사를 맞아도 울지 않는 아가인데 얼굴이 빨개지도록 울었다.

준영이는 곧 잊어버렸는지 눈에 눈물이 고여 있는 채로 날 보고 웃어주었다.

그러나 부딪친 이마가 금방 부풀어 오르는 걸 보며 내 가슴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팠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주의를 해야 하는지 뼈저리게 깨닫는 순간이다.




2025년 12월14일 일요일


건설회사 아파트 광고(벌써 5년 전)를 아주 감명 깊게 봤다.

젊은 부부의 일상을 사실적이고도 사랑스럽게 담아낸 광고였다.

앞에 여러 장면도 재밌지만, 내가 기억하는 장면은 거의 마지막에 나온다.

아가는 잠들었고 아빠와 엄마가 아기의 손톱을 깎아주는 모습이다.

아기를 키워본 사람은 그게 얼마나 주의와 집중이 필요한지 알 것이다.

젊은 아빠는 머리에 랜턴을 두르고 있고, 그 옆에 걱정스러운 엄마는 잘할 수 있는지 의심하고 있다.


엄마: 살 안 집히게 잘해.

아빠: 알겠어. 나 수색대 출신이야.

엄마: 그게 뭔데?

아빠: 의사라고 보면 돼.


빵 터졌다.

우리도 그런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내가 준영이의 손톱을 깎으려다 실수로 살을 살짝 집은 것이다.

내 심장이 집히는 것 같았다. 그 이후로 난 다시는 준영이 손톱을 못 건드렸다.

그 사건이 있은 후 내내 훨씬 섬세하고 찬찬한 아빠가

초등학생 때까지 매주 손톱, 발톱을 정리해 주었다.


육아일기를 보면서 사람은 자기 나이를 뛰어넘을 수 없음을 알았다.

아니, 자신의 나이 때에만 겪을 수 있는 경험치와 사고의 한계가 있다는 걸 알았다.

내가 5개월 된 아가를 키울 때는 딱 그때만 알 수 있는 경험치가 있다.

그래서 지나가는 모든 아가들의 개월 수가 궁금해진 것이리라.

그건 한계이기도 하지만,

그 순간에만 누릴 수 있는, 지나가면 다시는 경험할 수 없는 것이었다.

지금 다행이다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육아일기를 쓰면서 당시 순간을 포착할 수 있었고 그 시간을 향유했다는 것이다.


기록으로 남긴다는 건, 기록을 남기는 시간 동안

현재를 더 밀도 있게 살아낸다는 것을 지난 육아일기를 통해 깨닫는다.

기록하지 않았다면 그냥 흘려보냈을 순간들이,

글로 남기는 동안 더 선명해지고 소중해진다.

시간이 지나가면 다시는 같은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한계가,

항상 지금을 맘껏 누리며 성실하게 살아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기록은 그 지나가는 시간을 붙잡는 유일한 방법이다.

기록은 시간을 배로 만든다.

기록은 지나간 순간을 다시 살게 한다.

기록은 현재를 더 깊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