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좋아? 아들이 좋아?

연재 : 나에게로 가는 시간 -33년을 건너온 육아일기(임신과 출산편)

by 꼭두새벽

1992년 10월 1일 금요일


전형적인 가을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어제를 고비로 다시 시작된 입덧으로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이제 14주가 조금 넘은 임신 4개월이 지나고 있다. 힘들고 피곤해서 잠을 정신없이 자고 나면 어느새 아침이 되었다. 어제는 중간에 먹은 수제비 때문인지 저녁도 제대로 못 먹었는데 이상하게 맥주 딱 한 모금 생각이 간절했다. 갈증이 심해서 그런 것 같다. 나는 아기한테 나쁘다는 걸 잘 참지만, 개인적인 노력이 무색하다. 아기를 갖고 나서야 보이는 생각보다 나쁜 유해환경에 놀라고 화가 난다. 남성들의 몰지각한 흡연습관, 길거리의 지독한 매연, 함부로 울리는 자동차 경적, 행인들의 무례하고 무신경한 공중질서의식 등으로 화나고 짜증을 자주 느낀다.


오늘 아침엔 남편이 아들인지 딸인지 궁금하냐고 물었다. 난 아니라고 답했는데 그는 정말로 그런 건 하나도 궁금하지 않다고 강하게 말했다. 진심인 것 같았다. 우린 둘 다 태어날 아기의 성(性)에 대해선 전혀 궁금해하지 않고 있다. 이상할 정도로……. 그러나 누굴 닮았을지는 굉장히 궁금해한다. 아니 어떻게 생겼을까가 더 궁금하다.



2025년 9월 25일 목요일


당시 임신 중이던 나는, 육아일기 곳곳에서 임산부에 대한 사회적 배려가 없음을 자주 적었다.

그리고 지금, 그 기록을 다시 읽으며 임산부로 내가 얼마나 불편하고 외로웠는지를 새삼 확인하게 된다.

하지만 오늘은 다른 점을 얘기하고 싶다.


당시 한국에는 아들 선호사상이 여전히 많이 남아있던 때였다.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당시 중국에서 인구증가를 통제하기 위해 한 자녀 정책을 시행 중이었다.

이로 인한 부작용으로 성비 불균형이 나타났다.

그쪽도 아들을 선호하는 문화가 여전했는지 딸이면 낙태를 시키는

반인륜적인 일이 자행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고,

그래서 남자 100명당 여자 80명 미만이라는 웃지 못할 결과가 초래되었다.

우리라고 다를까?

만약 한국에서 한 자녀 정책을 했다면 중국보다 더하면 더 했지 조금도 들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행히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로 한국의 인구정책은 마무리되었다.


남아 선호사상은 참으로 끈질겼다.

뭐든 문화로 굳어지면 끈질기게 지속되는데 한국뿐이 아니라 농경 문화권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다.

농경 사회에서 노동력이 가족 생계를 책임지는 역할이었으니 시대상으로 이해가 된다.

문제는, 바뀌는 시대를 인간의 고정관념이 따라잡지 못한다는 것이다.

해외여행이 일반 시민들에게도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하면서

‘아들은 버스 태워주고 딸이 비행기 태워준다’는 말도 2000년쯤에서야 나오기 시작했으니까.


그러니 우리 부부가 아기의 성별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는 건

당시에 상당히 진보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조차 첫아들을 낳자,

둘째를 가져야 한다는 압박에서 조금 자유로웠다고 기억된다.

만약에 첫애가 딸이었으면

주위로부터 아들은 하나 있어야 한다면서 훨씬 더 많은 압력을 받았을 것이다.

물론 딸이었대도 둘째는 없었을 거지만.

그리고 지금은 오히려 여아를 더 선호하는 시대가 되었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남아선호사상이 드디어 종말을 고했다.


이제는 성별의 문제가 자녀를 계획하는 부모의 소박한 소망일 뿐이라는 게,

이렇게 변했다는 게 좋다. 믿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