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내가 우주가 되는 경험

연재 : 나에게로 가는 시간 - 33년을 건너온 육아일기(임신과 출산편)

by 꼭두새벽

1992년 11월 12일 목요일


이제 임신 20주(5개월)가 넘어가고 있다. 다음 주면 6개월로 접어든다.

아기는 끊임없이 내게 자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낸다. 쉬지 않고 꼼지락 거리며 느낌을 전달한다.

그런데 움직임은 비단 아기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오늘 불현듯 들었다. 내 가슴도 뭔가 준비하고 있으며, 아니 내 몸 전체가 아기를 위한 작업을 한시도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내 몸의 현저한 변화들이 그걸 증명하고 있다. 정말 경이롭다.

한 생명을 탄생시킨다는 것에 내가 온몸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건 내 생애 아마 처음으로 느끼는 전일적인 체험이 될 것이다. 내 몸에서 일어나는 지속적이고도 치열한 움직임이 생명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작업임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하나의 우주로써 나는 이 자연 속에 존재하고 있으며 이럴 때 내가 여성임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지금 일어나는 이 모든 변화가 하나도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한 생명을 창조하는데 내 몸과 의식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유기체로 제각기 치열하게 참여하는 것이다. 누가 뭐래도 이것은 하나의 우주다. 나 자신이 우주가 될 수 있다는 이 체험은 아마도 내가 앞으로 살아갈 생애를 더욱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드는데 큰 몫을 차지할 것 같다.


이 소중하고도 경이에 찬 일을 남편에게도 설명하고 나누고 싶지만 과연 남자가 임신 중에 몸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변화를 얼마나 실감할 수 있을지 회의한다. 겉으로 보이는 변화만이 아닌 몸 깊숙이 일어나는 미묘한 움직임을 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 그냥 느끼는 것이다.


아기는 자신을 방어하는데 거의 본능적인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서 급하게 다림질을 하는데 아주 강한 땅김이 배에 통증으로 느껴졌다. 몸을 갑자기 움직이니까 불편했던 모양이다. 나는 이럴 때 생존하려는 생명의 치열함을 느낀다. 나는 아기가 건강하다는 걸 믿는다.



2025년 9월 22일 월요일


놀랍고 기특하다.

자그마치 33년 전 육아일기에 이런 철학적이고 의식 있는 말을 남겼다는 사실에 나 스스로 놀라고 있다.

우주가 되었다며 경이롭게 생명을 내 안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임신의 경험이 이후 내 삶 전반에 긍정적이고 겸허한 태도를 가져다주었다는 점에서 감사하다.


하지만 당시의 시대상은 그리 위대하지 않았다.

한국은 여전히 개발도상국이었고,

군부독재가 막 종식되었지만 민주주의는 아직 단단히 뿌리내리지 못했다.

인권이라는 말은 어딘가 배부른 소리처럼 들리던 때였다.

헌법에 임산부와 어린이에 대한 보호 조항이 있었지만,

일상 속 배려는 거의 없었다.

어디서든 담배 연기가 가득했고, 건물 안 사무실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횡단보도를 건널때조차 차가 사람보다 우선이라는 듯 신경질적인 경적 소리를 들어야 했다.

임신 중이던 나는 이런 몰상식과 무배려에 자주 분노했지만,

사회적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때의 한국 사회는 임산부까지 품어줄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분하고 억울했지만, 개인적으로 삭일 수밖에 없었다.

저출산이라는 단어는 먼 나라 이야기였으니 대중교통에 임산부 배려석 따위도 없었다.

힘들면 직장을 그만두면 그만이었다.

출산 후에도 직장을 다니는 여성에게는 차가운 시선이 아니라 노골적인 비난이 쏟아지던 때였으니까.


‘애를 낳고 다음 날로 밭에 나가 일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딸들과 며느리들에게 회자되면서,

산후조리를 사치로 여기는 근거로 쓰였다.

이런 식의 여성에 대한 암묵적인 압박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았다.

거기에 시어머니의 구박, 여성을 억누르던 사회적 관습과 이념까지 여전히 전해졌다.

임신, 출산, 육아에 이르는 모든 책임은 여성 개인과 가족에게 전가되었고,

사회와 국가는 보호하는 시늉만 간신히 할 뿐이었다.

남성의 육아휴직은커녕,

여성의 육아휴직조차 여성 고용과 승진에 장애물이었으니

당시 '저출산'이라는 단어는 먼 나라의 배부른 소리였다.

우리는 여전히 친정엄마가 딸의 산후조리를 책임지는 구조가 당연시되었고,

그 과정에서 모녀는 애증으로 끈끈해졌다.


모성애는 본능이라기보다 사회가 강요한 책임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사회가 무엇을 강요하든)

몸과 가슴으로 느낀 임신의 위대함을 경이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생명을 품는 그 시간을 관찰하며 사유할 수 있었던 건 지금까지도 큰 선물이자 배움이다.

지난 육아를 돌아보면 후회와 자책이 종종 밀려오지만,

오래된 일기 속 단단한 문장들을 보며 조금은 위안을 얻는다.

이제 와 돌아보니, 임신은 단순히 아이를 품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 자신을 품는 시간이었고,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한 시작이었다.

시대는 나를 배려하지 않았지만, 그 속에서 내가 배운 겸허와 단단함은 오롯이 내 것이 되었다.

그 시절의 기록은 낡은 일기가 아니라, 지금도 내 삶을 지탱해 주는 작은 등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