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나에게로 가는 시간 - 30년을 건너온 육아일기 (사회 편)
1999년 7월 1일 목요일
바로 어제, 유치원생 어린이들이 불길 속에서 생명을 잃는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있었다. 가슴이 너무 아파 차마 뉴스와 신문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좁은 창문 밑에 옹기종기 모여 서로를 붙든 채 사그라졌을 19명의 아이를 생각하면, 심장이 미어지다 못해 타들어 가는 것만 같다. 그 어린것들이 마주했을 공포와 절망을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부디 고통 없이 하늘나라로 갔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 준영이와 꼭 닮았을 천사들의 죽음 앞에 분노로 치가 떨린다. 아이를 믿고 보냈을 부모들의 무너진 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그 어떤 위로도 입 밖으로 내뱉기 힘겨운 밤이다.
2026년 1월 31일 토요일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사고는 1999년 6월 30일 새벽에 발생했다. 소위 ‘사고 공화국’이라 불리던 시절의 비극적인 정점을 찍은 참사였다. 물론 이후에도 사고는 멈추지 않았으나, 90년대 중반의 한국 사회는 유독 잔인했다. 압축 성장과 개발만을 최우선으로 달려온 시대가 남긴 어두운 그림자였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의 붕괴, 그리고 씨랜드 화재까지. ‘안전불감증’이라는 단어가 우리 사회의 고질병처럼 회자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무렵이다.
당시의 기억과 겹쳐지는 영화 한 편이 있다. 1998년에 개봉한 <라이언 일병 구하기>다. 영화 속 미국은 한 명의 병사를 구하기 위해 숙련된 밀러 대위가 이끄는 소수의 군인(7명)이 목숨을 건다. 당시 한국 사회 일각에서는 "고작 한 명 때문에 5명이 희생(밀러대위 포함)을 치르는 게 말이 되느냐"는 반응도 있었다. 그러나 그 냉소 이면에는 사실 깊은 부러움이 깔려 있었다. 단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국가가 어떤 가치를 수호해야 하는지, 그 확고한 신념과 시스템에 대한 동경이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흐른 지금, 나는 뜻밖에도 탈북민의 목소리를 통해 우리 사회가 비로소 그 가치를 실현하는 나라로 나아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북한 이탈 주민 나민희 씨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청계천의 안전시설을 소개한 적이 있다.
그녀는 '우천 시 수문 자동 열림' 안내판과 곳곳에 비치된 구명환, 사다리를 보며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상세한 안전 문구들을 읽는 것만으로도 국가로부터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한국은 단 한두 명의 인명 사고만 나도 온 나라가 떠들썩하잖아요. 그러니까 시스템이 개선되는 거예요. 사고가 나기 전에 위험에 대비하니까요. 북한은 수백 명이 죽어야 겨우 보도를 하고, 그마저도 축소하기 바쁘죠." 사람의 목숨을 너무나 가볍게 여기는 고향의 현실에 분노하던 그녀는 덧붙였다. "이곳에 와서야 비로소 나도 내 목숨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됐어요." 이 고백은 내가 30년 전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보며 느꼈던 그 부러움과 정확히 같은 맥락으로 닿아 있다.
어느 국가도 국민의 안전을 100% 완벽하게 보장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람의 목숨을 귀하게 여기는 태도는 정책과 제도로 증명되어야 한다. 1990년대의 한국은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느라 안전이라는 당연한 가치를 주류의 목소리로 만들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우리는 지금까지도 '각자도생'의 길로 내몰리고 있다.
삼풍백화점 붕괴를 바로 옆에서 목격했을 때는 살아남았다는 안도감보다 죄책감이 컸다. 하지만 씨랜드 화재는 우리 사회의 적나라한 민낯을 마주하는 고통스러운 분노를 안겨주었다. 이제야 나는 그 불편했던 과거를 되짚어 볼 수 있는 객관적인 거리감을 갖게 되었다. 30여년전의 육아일기를 보면서 지금의 내가 느끼는 건 한 낱 개인의 시간도 그 개인이 속한 사회와 시대와 결코 분리될 수 없었다는 자각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육아일기를 다시 꺼내 든 이유중에 하나가 개인의 삶이 시대의 솔직한 목격자가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 개인의 서사 속에는 지난 30여 년간 한국 사회가 겪어온 변화의 결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30년 전과 비교하면 한국 사회는 분명 달라졌다.
안전에 대한 인식도, 제도도, 생명을 대하는 태도도 완벽하진 않지만 분명 나아졌다. 하지만 안전은 한 번의 구축으로 완성되는 결과물이 아니다. 끊임없이 점검하고 보수해야 하는 영원한 현재진행형의 과제다. 가장 최근에 세월호까지, 고통의 사건들이 이를 말해주지 않는가?
사람의 목숨을 귀히 여기는 사회는 화려한 구호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억울한 죽음을 기억하고, 기록하며,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점검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자각이 쌓여 만들어지는 것이라 믿는다.
한 국가의 품격은 그런 국민들에게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