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위한다'는 착각의 소비

연재 : 나에게로 가는 시간-33년을 건너온 육아일기(소비 편)

by 꼭두새벽

1996년 6월 17일 월요일


가족 여행으로 설악산에 다녀왔다. 남편회사 동료와 같이 한 여행이었다.

지난 여행은 나도 준영이도 아파서 힘들었지만 이번엔 편안하고 즐거웠다.

사실 혜민이네랑 같이 가서 준영이도 더 즐거웠을 거다. 둘이 제법 사이좋게 놀아서 다행이었다.


비선대에선 둘이 물장난을 했다. 아빠가 물제비를 해주면 준영이는 환호성으로 아빠를 으쓱하게 했다.

한 없이 그 놀이에 열중했다. 일정이 있어서 억지로 끌고 내려왔다.

다음은 케이블카로 권금성으로 가는 거였다. 케이블카를 타는 건 혜민이가 더 좋아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엔 준영이도 혜민이도 둘 다 잠들었다.


일요일 아침에는 경포대에 갔다. 날이 궂고 바람이 불었지만 아이들이 모두 좋아했다.

해수욕장의 모래는 정말 예뻤다. 서울 놀이터에 있는 먼지 날리는 빛바랜 모래하고 차원이 달랐다.

“뜰아래 반짝이는 금 모래 빛” 노래 가사는 역시 시(詩)였다.

오후에는 말을 태웠다. 아이들은 무서워하지 않고 굉장히 좋아했다. 말에서 내려와서는 기분이 한껏 상승해서 둘이서 폴짝폴짝 뛰었다. 준영이가 말보고 멍멍이라고 해도 괜찮았다.

바다와 산도 바꿔서 말하곤 깔깔 웃는 준영이의 청개구리식 요즘 말투다.




2026년 1월 24일 토요일


당시 우리는 여행이나 나들이를 꽤 자주 갔다. 그건 일종의 보상심리 같은 거였다.

평일에 같이 못 있어주니까 주말이나 휴가를 이용해 색다른 경험을 아이와 하고 싶었을 거였다. 게다가 육아를 맡아주는 친정엄마가 온천을 좋아해서 당시 이천에 새로 개장한 노천온천을 자주 다녔다. 아침 일찍 출발해서 온천을 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점심으로 이천 쌀밥 정식을 먹는 코스였다. 엄마는 이천 쌀을 좋아했고, 준영이는 조기를 좋아했다. 그 정식에는 반찬으로 조기가 구워 나왔다.


지금 생각해도 사치를 했던 건 아니다.

흥청망청 소비할 돈이 있을 리가! 아이 보험과 약간의 적금을 넣고 은행 대출금과 이자를 따박따박 갚아나갔다. 그것만으로도 헉헉대며 항상 빠듯하게 살았다. 그래도 아이의 양육비나 지출을 엄격하게 줄이지 않았다.

하지만 돈에 관한 공부를 하지 않았고, 또 할 필요도 못 느꼈던 건 잘못이었다.

더 큰 잘못은 돈 공부 없이도 남편이 벌어다 주는 월급으로 알뜰살뜰 가정경제를 이끄는 주부들, 맞벌이를 하더라도 통장을 움켜쥐고 악착같이 살아가는 여성들과는 다른 행보를 걸었다는 것이다.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거라는 막연한 개똥철학을 가지고 있었으니 100원 벌면 100원 쓰고 10원 벌면 10원 쓰겠다는 대책 없는 경제관념이었다.


아이에게 쓰는 돈은 아깝지 않았을 뿐 아니라, 과소비를 해도 다른 것에 비해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명분을 부여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고 사랑이라고 착각했던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살짝 무리를 해서라도 아이에게 좋은 걸 해주고 싶은 마음을 한동안 버리지 못했다. 더 문제는 육아에 필요한 지출이라는 면죄부합리적인 소비를 하고 있다는 정당성이 만나면서 잘못된 소비 패턴이나 소비 감각을 반성하는 계기를 놓쳤다는 것에 있었다.


수입을 훨씬 초과하는 지출은 아니라도 기분에 따라서 수입을 살짝 넘나드는 아슬아슬한 소비를 했던 것이다. 그러니 돈은 늘 조금씩 부족했고, 그래서 더 벌어야 한다는 욕망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구조였다. 그래서 위험하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소비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면서 살았던 30대의 젊은 나를 불러내서 막아주고 싶은 흑역사가 바로 이 경제 부분이다. 그때는 그게 잘못된 거라는 걸 몰랐다. 젊은 날의 내가 ‘아이에 대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했던 소비들이 실은 불안의 증거였음을 이제는 안다.


30대 후반부터 시작된 잘못된 소비는 정확한 반성 없이 오랜 시간 지속되었다. 이후 아이를 영어유치원에 보내면서 절정에 달했다. 소비에 대한 그리고 돈에 대한 무서움을 알게 된 건 가장의 실직으로 중산층이라는 허위의식에서 강제로 벗어난 후였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었지만 그렇게라도 깨달은 걸 이제는 천행으로 여긴다.


지금 내 책장에는 경제나, 돈(재테크) 공부 관련 도서가 좀 있다. 하지만 그게 실질적인 부의 축적으로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다. 인생후반부에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는 자각이 체감되면서 우선순위를 매겨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했다. 나한테 좋은 게 뭔지 살피는 과정에서 돈이 날 행복하게 해주지 않는다는 확신이 서자, 돈을 모으는 일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경제적 자유라는 달콤한 말도 내겐 더 이상 효력이 없었다.


돈을 많이 벌어서 만들어내는 경제적 자유도 있겠지만, 소비에 대한 근본적인 사고를 바꿈으로 해서 얻는 경제적 자유도 있었는데 후자가 나한테 더 적합했다. 풍족하게 소유하는 것보다 “더 적게 하지만 더 풍요롭게 존재” 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 과정에서 미니멀라이프를 만나고 지금은 여러 각도로 실천 중이다. 물론 하루아침에 개과천선해서 다다른 건 아니었다. 이것 역시 시간을 두고 나아갔다.


돈이 돈을 벌어온다지만, 거기까지 가는데 많은 시간과 공부가 필요할 거고, 어느 정도 부의 축적을 이룬 사람이 돈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는 멘털 관리가 필요하다는 걸 안다면 그 반대도 마찬가지임을 말하고 싶다.

'적게 소유하면서 풍성하게 존재하는 것'도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먼저 공부를 했고, 그다음은 내가 가진 기존의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기성세대에게 물려받은 가치관과 신념을 뒤집어 다시 시작하는 생각의 지각변동이 필요했다. 생각을 바꿔 먹는다고 그런 상태가 저절로 오는 것도 아니다.

실천은 항상 더 어렵다.

자본주의는 교묘하고, 치밀하고, 집요하게 ‘더 많이’를 설계한다. 그 함정에서 빠져나와 나만의 ‘충분함’을 정의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현재는 완벽하지 않지만 '자발적 빈곤'과 '선택적 결핍'을 좌우명으로 장착하고 적재적소에 사용하고 있다. 또한 이런 삶이 지속가능하려면 입에 풀칠할 수 있는 경제구조는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한다.


중요한 부분이 아직 남아있다. 그 숙제는 바로 '나 만의 삶의 의미와 보람을 찾는 것'에 적극적이어야 한다. 이 역시 쉽지가 않다는 걸 고백한다. 여전히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를 소비자로만 존재하게 하려 하지만, 나는 기꺼이 ‘자발적 빈곤’과 '선택적 결핍'의 길을 걷는다. 그 길을 걷는 사람에게 비로소 보이는 나만의 보람과 의미는 봉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