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나에게로 가는 시간 -33년을 건너온 육아일기(교육 편)
1999년 8월 1일 일요일
준영이가 할머니 손에서 나한테로 넘어온지도 1년 4개월쯤 되었다.
내가 직접 아이의 일상을 챙긴 시간이기도 하다.
일곱 살 준영이는 요즘 우리 가족중에 가장 바쁜 몸이다.
한글은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대신 숫자에 호기심을 보이니 수학학습지를 시작했고,
항상 동그라미 그리기를 좋아해서 미술 학원을 보내고,
수영은 스포츠센타로 나랑 같이 다닌지 오래되었다.
그리고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영어유치원까지.
초등학교 입학 전에 마쳐야 할 과제가 산더미 같은 세상이다.
이 시대가 부모에게 요구하는 최소한의 도리 같은 것들.
다행히 준영이가 이 일정을 즐겁게 소화하고 있어 마음이 놓인다.
사교육의 범위를 어디까지 할 것인가? 무엇을 언제 시작해야하는지 생각하고 있다.
‘아이가 싫어하면 안 시킨다.’ 라는 걸 원칙으로 삼고 있다.
2026년 2월 4일 수요일
이제 와 돌이켜보는 영어유치원은 ‘사교육의 허망함’과 ‘형편없는 가성비’라는 두 단어로 요약된다.
냉정하게 말해, 교육비 중 가장 어리석은 지출로 기억된다. 물론 아이의 학습 능력에 따라 개인차는 있겠지만, 우리 아이의 경우엔 그랬다. 그리고 나는 우리 아이 같은 사례가 아직까지도 한국 사교육 시장의 보편적인 모습임이 안타깝다.
1998년, 준영이가 여섯 살이 되자마자 나는 유치원을 수소문했다. 기왕 보낼 거라면 경제적으로 무리를 해서라도 영어유치원에 보내고 싶었다. 당시 영어유치원의 원비는 평범한 월급쟁이 부모에게는 결코 만만치 않은 금액이었다. 하지만 ‘아이를 위한다’는 명분은 과도한 교육비 지출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무적의 면죄부였다.
당시 막 붐이 일기 시작한 ‘00랜드’ 영어유치원은 사교육 시장의 신선한 충격이었다. 세련된 시설과 체계적인 시스템, 무엇보다 원어민 강사들의 자유분방하고 권위적이지 않은 태도가 마음에 쏙 들었다. 게다가 엄마들을 위한 저렴한 영어 수업까지 제공하니, 아이 교육과 내 자기계발을 동시에 잡는 ‘탁월한 선택’처럼 보였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자 생각도 못한 벽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엄마들과 교류가 깊어질수록 아빠들의 직업과 수입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대기업 증권회사 과장인 남편의 명함은 그곳에서 명함조차 내밀기 민망한 수준이었다. 의사나 사업가는 기본이었고, 친정이나 시댁의 배경이 든든한 ‘사모님’들이 주를 이뤘다. 나같은 소시민이 낄 자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의 옷차림, 머리 스타일, 타고 다니는 차에선 자연스러운 부유함이 흘러넘쳤다. 경기도 신도시의 유치원이 이 정도였으니, 당시 대치동은 어떠했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뱁새가 황새를 쫓다 가랑이가 찢어지는 듯한 ‘상대적 빈곤감’을 나는 생애 처음으로 그곳에서 맛보았다.
그들이 돈 자랑을 한 것도 아니었다. 자신이 가진 것을 일부러 드러내지도, 그렇다고 숨기지도 않았다. 그래서 더 주눅이 들었는데 문득 고교 시절의 기억이 겹쳐졌다.
고 3때 짝꿍이 대기업 통운회사 오너 손녀였다. 당시 무지개 지우개가 유행이었는데 지우개에서 향이 나왔다. 일부러 광화문 흑곰문구까지 가서 사야하는 희귀템이었고 지우개가 500원이었으니 나한테는 그림의 떡이었다. 학생 버스비가 토큰으로 80원 정도였으니 얼마나 비싼지 알 것이다. 나는 지금이나 그때나 문구를 좋아한다. 별명이 문구의 여왕이었다. 토요일 학교를 마치면 광화문까지 걸어가서 흑곰문구에 들러 뭐 새로 나온 게 없나 보는 낙으로 살았다. 그런데 바로 그 비싼 향기나는 무지개 지우개를 그 친구가 사용하고 있는 게 아닌가? 세상에~~저 비싼 걸 아무 거리낌 없이 쓴다고?
나는 반갑고도 놀라워서
“이거 어디서 놨어. 흑곰문구에 갔었어? 나 한 번만 써봐도 돼?” ”
흥분해서 어쩔 줄 몰라했던 모양이다.
날 가만히 쳐다보던 친구가 “갖고 싶었던 거야?”
“당연하지”
너무 맑고 투명한 얼굴로 가볍게 “그럼 너 가져.”
“뭐시라?”
역시 대기업 오너 손녀는 클라스가 달랐다.
하지만 내가 위화감을 느낀 건 그 친구의 집에 갔을 때였다. 한강변(동부이촌동)에 우리 나라 최초로 맨션아파트가 생겼는데 그 친구는 거기 살았다. 물론 1학년때 반포 아파트에 살았던 미국에서 전학온 친구네도 가봤지만 거기하고는 또 다른 넘사벽이었다. 100평이 넘는 크기도 압도적이었고 가구며 실내 분위기는 아무것도 모르는 고등학생이 봐도 고급 그 자체였다. '아~~ 이런 곳에 사는 아이였구나.' 그리고 나를 바라다 준다고 옷장에서 목도리를 꺼내서 두르는데 그 목도리의 고급진 느낌이라니. 색깔이며 감촉이며 그냥봐도 명품이었던 것이다.
그때 느꼈던 경제적 계층의 위화감이 영어유치원 엄마들 모임에서 고스란히 재현되었다. 그들은 악의 없이 친절했고 꼬인 구석이 없었지만, 그 무해한 여유가 오히려 소시민인 나를 더 주눅 들게 했다. 결국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면서 나는 그 세계에서 탈출하듯 빠져나왔다. 특별히 가깝게 지내던 수더분한 엄마도 이사를 했으니 더 다닐 이유도 없었다. 나중에 보니 그 수더분한 엄마도 영동대교 근처 '00캐슬'로 이사를 했다는 걸 알았다.
영어유치원은 아이에게 영어에 대한 자신감 그리고 외국인에 대한 거부감을 없앴다는 것은 분명 수확이었다. 그러나 그걸 얻자고 지불하는 비용으로는 많이 비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영어 실력은 결국 본인의 의지와 지속적인 노력이 결정하는 것이지, 유아기의 ‘비싼 환경’이 담보해 주는 것이 아니었다. 그 뒤로 들리는 영어유치원에 대한 잡음은 한국 사회 사교육의 어두운 단면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에게 말해줄 수 있다면 이렇게 전하고 싶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소비에 휘둘리지 말라고. 부모의 불안감을 먹고 자라는 사교육 시장에서 진짜 지켜야 했던 건, 아이의 영어 단어나 발음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에 대한 부모의 중심잡기었다고 말이다. 가성비를 따지기엔 너무나 뼈아픈, 그러나 덕분에 ‘교육비 지출이라는 면죄부’을 직시하게 해 준 값비싼 수업료였다.
* 개인적인 경험이므로 사교육으로 좋은 결과를 얻은 부모님들은 그냥 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