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나에게로 가는 시간-33년을 건너온 육아일기(소비 편)
2000년 12월 20일 수요일
일에 대해 좀더 열심히 생각하고 또 생각하자.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한다는 걸 보여주고 꼭 여기서 인정받자. 여기가 아니면 안된다고 생각하자. 여기서 잘해야 다른 곳에서도 인정 받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자. 2개월동안 8번의 대본으로 승부를 봐야한다. 거기에 내 모든 시간을 투자하자. 모니터를 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다. 모니터!!
2001년 2월 16일 금요일
카드를 쓰지말자. 돈을 아껴야 한다. 지금 저축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앞으로 4월까지 360만원 중에 200만원은 비상금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그래! 목표는 200만원을 통장에 두는 일이다. 옷도 당분간 사지말고 차 기름도 아껴야겠다. 준영이를 위한 지출을 줄이지 않고, 나한테 쓰는 돈을 줄이면 되는 일이다.
2026년 2월 07일 토요일
아이에게만큼은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았던 시절이기도 했다. 교육비와 아이를 위한 지출은 나에게 ‘좋은 엄마’라는 심리적 면죄부를 주었다. 예쁜 옷을 입히고 좋은 환경을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 내 불안한 자존감을 대신 채워주는 듯했다. 세일 기간을 이용했다며 합리적 소비로 포장한 것도 본질은 감정적 소비였다.
그리고 아들이 유치원에 갈 나이가 되자 (98년) 영어유치원으로 직행했다. 내 수입은 줄었고 일정하지 않았지만 남편은 대기업에서 건재했다. “00랜드”라는 영어유치원이 생겼는데, 당시로선 만만치 않았던 비용이었지만, 다른 곳에서 허리띠를 졸라매면 된다고 믿었다. 그 정도는 아이의 미래를 위한 마땅한 거름이라 생각했고 남편도 기꺼이 동의했다. 돌이켜보면 교육비 흑역사는 그렇게 2년의 영어 유치원 지출로 시작되었다.
당시 나는 정규직과 전일제 근무를 포기하고 친구 학원에서 국어 강사를 하거나, 프리랜서 방송구성작가로 일하던 시절이었다. 어디에도 매여 있지 않았으나,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부유(浮游)였다. 여전히 나는 젊었고 사회에 어떻하든 편입되고 싶은 욕망이 들끓었는데 길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자신의 욕망을 정확히 들여다보지 못했다. 모르니까 더 불안했던 것이다. 나는 지금도 이때의 일기를 읽으면 마음이 아릿하다. 그때 내가 뭘 원하는지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그 길을 닦았더라면, 받아주지 않는 사회에서 인정받기 위해 그토록 위태로운 열정을 쏟아붓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그러니 '내 탓이로소이다'가 더 크다.
그 시절, 내면의 불안과 사회적 인정을 향한 목마름은 ‘소비’라는 신기루로 흘러갔다. 과시를 위한 치장은 아니었으나, 흔들리는 마음을 물건으로 괴어두려는 생활형 방어 기제였다. 전일제 근무를 그만두고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의 밀도가 높아진 건 축복이었지만, 늘 전투처럼 임하던 출근길이 사라진 아침 풍경은 생경하기만 했다.
직장을 놓고 며칠 지나지 않아, 평일 낮의 백화점을 간 적이 있다. 평일에도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도대체 저 사람들은 뭐 먹고 사나' 싶었다. 모두 부유해 보였고 여유있어 보였다. 돈은 나만 없었다. 불안은 나를 매장으로 이끌었고 백화점에서 물건을 사는 것으로 내 불안을 잠재웠던 시절이었다. 명품을 사지는 못했지만 정품은 할부로 살 수 있었다. 그것이 일시적인 도파민의 분출이라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한 채, 어느새 쇼핑이라는 작은 중독에 스며들었다.
다행히 그 시간이 길지 않았다. 매달 돌아오는 카드 명세서라는 차가운 현실과 소비 뒤에 남는 그림자 같은 공허함을 눈치채고 백화점과 빠르게 손절했다. 일정한 수입이 없다는 불안이 빨리 정신차리게 했을 거였다. 하지만 여전히 생활용품을 쟁여놓고 사용하고 1+1을 현명한 소비라고 생각했으며, 싸다는 이유로 식재료를 탐하다가 결국 시들어 버리는 과정을 반복하며 내 마음의 허기를 확인했다. 더구나 아이를 위한 소비는 바로바로 실행했다. 내 것만 줄이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감정적 소비에 대한 나쁜 기억은 꽤 오랜동안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면서 실용적 소비로 전환되었다. 이제는 아무것도 쟁여두지 않는다.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만 들여와 소진하는 방식으로, 공간조차 넓은 여백으로 사용하며 산다.
지금이나 그때나 한가지 신비한 건, 우리 부부는 아이문제로는 다퉈본적이 없었다는 것. 보통은 자녀 교육으로 다툰다지만 우린 예외였다. 그건 교육에 관한 한 나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밀어주었던 남편 때문이라는 걸 나중에 알게 됐다. 지방에서 고등학교까지 나온 남편은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의 안목을 근거없이 신뢰한 것같다. 아니면 조금은 허영심이 작용한 그럴싸한 내 교육 이론이나 말빨에 남편이 말려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내 교육관을 믿어주는 남편의 지지 아래 교육여행이라는 이름으로 거하게 지출된 사건은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 호주 한 달 살기였다. 2003년의 뜨거웠던 4주. 그것은 내 인생 단기 교육비 지출의 가장 높은 숫자를 기록하며 대미를 장식했다. 하지만 이 지출은 지금도 후회가 없다. 다음 편은 호주 한 달 살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