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나에게로 가는 시간 - 33년을 건너온 육아일기 (교육 편)
2003년 7월 28일 월요일
* 초등학교 4학년 호주에서 쓴 일기
제목 : Monash Primary School (모나쉬 대학 부속 초등학교)
나는 오늘 이곳 학교를 처음 갔다. 조금 부끄럽고 떨렸다.
왜냐하면 이곳 친구들은 영어를 아주 잘하는데 나만 못했다. 영어말을 잘하는 게 부러웠다.
그래서 나는 갑자기 여기서 살고 싶다. 나도 여기서 살면 영어를 잘할 수 있다.
영어말을 잘하는 애들은 내가 어려워하는 스펠링을 잘 안다.
나는 쉬는 시간에 애들하고 놀 때 영어말로 했다. 내가 잘 못해도 애들은 잘 알아들었다.
그런데 애들이 빨리 말하는 건 내가 잘 못 알아듣는다.
하지만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말하는 건 잘 알아들을 수 있다.
그리고 이곳 애들은 생긴 게 좀 이상하다.
눈알이 파랗거나 약간 노란 애들도 있고 머리카락이 노란 애들도 있다.
그리고 얼굴이 까만 애도 있다. 처음엔 가까이 가기가 좀 이상했다.
그래도 점심시간에 같이 축구하니까 괜찮았다.
2026년 2월 18일 수요일
단기 교육비 지출의 절정은 단연코 호주에서의 한 달 살기였다.
지금이야 '한 달 살기'라는 말이 흔하지만 2003년에는 아예 없던 말이었다.
정확히 4주 동안 현지 학교를 다녔으니, 교육여행비라고 불러도 무리는 없겠다.
선택지는 멜버른이었다. 정확한 행정구역은 기억나지 않지만, 모나쉬 유니버시티가 있던 대학 마을이었고,
자연스럽게 모나쉬 대학의 부속 초등학교 4학년으로 들어갔다.
신기했던 건, 비록 한 달이지만 정식으로 학비를 내고 현지 아이들과 똑같이 학교생활을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학비는 주 단위로 낼 수 있었고, 당시 한국에서 한 달 사교육비보다 오히려 조금 적게 들었다. 처음 등록할 때 호주달러 100불 정도의 기부금을 냈고, 교복도 따로 구입해야 했다. 교복은 한국처럼 획일적이지 않았다. 상·하의를 포함해 총 18종류 중에서 고를 수 있었고, 색상과 로고만 교복일 뿐 디자인은 거의 사복에 가까웠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도 아무 문제 없이 입고 다녔다. 대만족이었다.
그 당시는 지금보다 정보도 훨씬 적었고, 사회 분위기도 달랐다. 무엇보다 교육에 관한 선택지가 지금보다 제한적이었다. 인터넷 보급과 휴대 전화 확산으로 디지털 사회의 기초로 진입하는 시기였고, 2009년 아이폰이 출시되면서 스마트폰 보급으로 생활방식의 대혁명이 일어나기 전이었다.
호주 행은 한국에서부터 준비가 만만치 않았는데, 가장 까다로웠던 건 아이의 예방접종 기록이었다. 아기 때부터 기본적으로 맞았던 모든 기록을 제출해야 했다. 다행히 무사통과. 천신만고 끝에 도착했고, 그렇게 멜버른에서의 한 달이 시작되었다.
모든 소비가 나쁜 건 아니다. 특히 교육비 지출은 늘 ‘결과’를 기준으로 평가된다.
학원을 보냈더니 성적이 올랐다거나,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다거나. 이런 교육비 지출은 그나마 설명이 가능한, 눈에 보이는 결과들이다. 하지만 진짜 교육의 결과는 한 사람이 인생을 사는 동안 어디서 어떻게 드러날지 모르기 때문에 단순히 평가하는게 불가능해 보인다.
어떤 영향은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드러난다. 한 사람의 품성으로, 혹은 내적인 힘으로 스며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육의 효과는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뒤섞여 나타난다. 한 인간의 성장을 몇 가지 원인이나 한두 번의 선택으로 설명하려는 건 위험하다. 이미 결과를 알고 난 뒤에 “그럴 줄 알았다”라고 말하는 건 '사후해석편향'에 가깝다. 지나고 보니 모든 게 필연처럼 보이는 착각이다.
만약 우리 아이가 명문대에 들어가고 대기업에 취직했다면, 호주 한달 살기의 선택을 두고 “잘했어”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반대로, 원하는 길을 가지 못했다고 해서 “그때 교육비를 아끼지 말 걸” 하고 후회하는 게 맞을까? 그 어느 쪽도 진실은 아니다. 그래서 사후해석편향이 섞인 평가는 결국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될 놈은 된다’는 말이 있듯, 결국 1차적으로는 아이 자신의 동기와 의지가 필요하고, 그다음이 교육비의 적절한 사용일 것이다.
비록 나의 불안이 가끔씩 과한 교육비로 이어져서 지금 돌아보면 소비의 흑역사처럼 보이는 선택도 있었지만 크게 후회는 없다. 가정경제가 무너져 풍족하지 않았던 시기에도 나는 사교육 시장에 뛰어들어 생계를 유지했다. 그 덕분에 아이에게 교육비를 쓰는 데만큼은 주저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내가 학원을 운영했던 이유는 충분하다고 믿는다.
인간의 교육과정은 그 어떤 동물보다 길다. 교육비는 나중에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현재에서 알 수 없기 때문에, 어떤 선택을 할지는 결국 개인의 가치관과 사회적 합의에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다만 다양한 선택지 속에서 아이에게 맞는 길을 탐색하고 실행할 수 있는 열린 교육관, 그리고 그것을 존중하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그래서 돌아보면, 호주에서의 한 달 살기는 결과로 증명해야 할 교육도 아니었고, 추억으로만 남길 여행도 아니었다. 아이는 교실 안에서 언어와 규칙이 다른 세계를 경험했고, 나는 교실 밖에서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해왔던 수많은 선택들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다. 시험도 성적도 없었지만, 낯선 환경에 적응하고 관계를 맺는 법을 몸으로 배웠다는 점에서 그것은 분명 교육이었다. 동시에 하루하루를 새로운 풍경 속에서 보내며, 주말엔 아이와 함께 멜버른 근교 여행도 다녔으니 여행이기도 했다.
교육과 여행, 어느 하나로 규정하기 어려웠기에 오히려 그 한 달은 부담이 되지 않았다.
무엇을 남겼는지 따져 묻지 않아도 되었고, 무엇을 놓쳤는지 계산할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그 선택은 사후해석편향으로 재단할 대상이 아니라,
그 시점의 나와 아이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의 결합이었다고 생각한다.
교육과 여행,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았다고 말할 수 있다면,
아마도 그 이유는 결과가 아니라 그 과정을 아이와 함께 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