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품는 가치

연재 : 나에게로 가는 시간 - 33년을 건너온 육아일기(임신과 출산편)

by 꼭두새벽

1992년 8월 24일 월요일


계속되는 입덧으로 지치고 힘들다. 특히 아침에 울렁거림이 심해서 출근 길이 지옥이다. 그래도 아기가 잘 자라주고 있으니 다행이라는 마음이 앞선다.

아기만 건강하다면 입덧이야 그럭저럭 넘길 수 있다.

이 신비로운 경험, 아기라는 아름다운 선물에 아침 저녁으로 감사하고 싶어진다. 아기를 품고나서 늘 어딘가에 감사하고 있다. 좋은 일은 다 아기의 덕으로 돌리고, 내게 주어지는 모든 축복에 겸손해진다. 내가 지녔던 욕심, 과거 누군가에게 했던 실수나 잘못, 어리석음 등이 아기를 통해서 말끔히 정화되는 듯한, 꼭 그렇게 될 거라고 믿고 싶다. 아가에게 떳떳한 엄마로 서고 싶다.


2025년 9월 30일 화요일


이리 귀한 마음은 생명을 내 몸에 품지 않았으면 몰랐을 거였다.

살다 보면 고비마다 겸손과 감사를 배우게 되지만, 내게 첫 번째 강렬한 배움은 임신이었다.

임신이 아니면 서른이 갓 넘은 나이에 알 수 없었을 경험인 것이다.

그건 단순히 생리적 경험이 아니라, ‘생명을 잉태한 존재로서의 자각’이었다.

생명을 품은 존재는 강하고 겸손하다.


그럼에도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로 이어지는 그 모든 순간순간 힘들고 지치는 게 사실이다.

생명을 키우는 일에 온 몸으로 직접 참여하는 일이니 쉬울 리 없다.

이 과정을 겪은 이는 자식에 대한 애착도 끈질기다. 그만큼 온전했기 때문이다.

자식과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기 힘든 건 여성이 미련해서도 감정적이여서도 아니다.

모성을 찬양하면서 모성을 쉽게 끊어내지 못한다고 비난하지 마시라.

임신에 대해 별로 해주는 것도 없으면서 거대 담론으로 찬양일색은 지금까지도 동의하지 않는다.

책임지지 않는 찬사는 언제나 공허하다.


자식을 떠나보내는 일은, 엄마에게 유난히 더 많은 결단과 이별의 연습을 요구한다.

그래도 내 온전한 전부를 떠나보내는 일은 임신과 출산 만큼이나 가치있는 일이란 걸 믿기 바란다.

뺏기는 게 아니라 세상을 향해 더 넓은 ‘마음’을 품게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생명을 품고 양육하면서 알게된 진짜 가치라고 해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