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키 유이 지음| 리프
나의 친애하는 벗에게
1.
20대의 일본의 젊은 작가는 철저히 괴테 신(神)에 짓눌려서 괴테로 시작해서 괴테로 끝나는 소설을 내놨어.
난 정말 놀랐다. 이 책. 마치 10년 전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을 보는 것만 같았다. 인간이 그 선두를 내줄 수밖에 없는 두뇌싸움에서 마지막 스퍼트를 보여주는 안간힘.
소설의 단순한 줄거리와, 르네상스인이라 불리는 세계의 지성 괴테를 가져와 그의 화려하고 번득이는 통찰과 수사들을 콕 찝어내 스즈키 유이라는 다소 거칠고도 귀여운 천에 다이아를 던져둔 것 같은 소설이라니!
결국은 소설. 그의 이러한 소설적 편집(괴테의 명문의 편집)은 수많은 지구상의 생물 중에서 인류만이 이룩한 그 문화콘텐츠마저 AI에게 강탈당하고 허탈하게 서 있는 근미래를 보여주는 것 같다. 인류가 축적한 데이터의 인용과 편집이라면 각 개인은 결코 AI에게 이길 수 없다. 데이터의 검토와 재편이야말로 그들의 전문분야니까.
그러므로 작가의 이러한 지식 자랑과 괴테를 쥐어짜는 편집 기술을 하다못해 소설로 써먹은 자는 도래한, 무섭게 자기 진화하는 AI 시대를 풍자하는 걸까.
주인공 이름이 ‘도이치’인 걸 보고는 빵 터졌어. 정말 웃기는 짬뽕이지 않은가. 마루야마 겐지를 발굴한 그 상이 ‘도이치’를 주인공으로 해서 괴테를 빨아주는 것은 좀 그렇지 않은가. 우리 문단의 평론가들도 극찬을 해서 도서관에서 이 책을 찾아볼 수 없다는데 그럴만한 일인가. 스즈키 유이가 젊고 무진장 영리하다는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우리까지 물개박수를 칠 까닭은 뭔가.
우리에겐 한강이 있지 않은가. 21세기의 고독한 숙고자 한강. 스스로 침잠한 자아, 낮게 낮게 심해에 홀로 유영하여 끝끝내 핀 우울하고 아름다운 문장들. 지금의 인류가 된 건 그야말로 공감 능력 때문 아닌가. 그 능력이 너무나 커서, 코리아의 노벨문학상 첫 번째 수상자임에도 불구하고 이 공감능력으로 인하여 크게 웃지도 못하는 그녀야말로 끊임없이 더 찬양해야 하지 않을까. <소년이 온다>의 슬픔의 무게와 항거를 보라. 문학적 항거.
우리에게 문학이란 뭔가. 내겐 소일거리일 뿐이지만 능력 있는 자 들아, 혓바닥이 뱀처럼 길어서 현란하게 문단을 씹어 먹는 자 들아, 한강을 찬양할지어다.
2.
괴테가 모든 것을 말했대. 그러니 후대는 그것을 훔쳐서 적절히 배열하고 뒤틀고 찬양하는 일만 남은 건가.
서로가 서로를 베껴 쓰고 있어. 과거의 영광에 기대어 후광을 업고 발언하며 잘난 척하고 있어. 이런 유의 문학이라면 정말 AI가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신형철의 에티카는 괴테의 에티카고 괴테의 에티카는 스피노자의 에티카래. 이런, 이게 ‘새로운 세대의 파우스트’래.
이건 정말, AI가 집필해 놓은 것 같아. 이 풍경은 기시감이 들어. 10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알파고. 인공지능이 써주는 소설이 대중화되기 전에 인간 작가가 마지막으로 바짝 긴장해서, 한 개인이자, 개별 작가가 갖고 있는 지식을 총망라해 이것 봐라 하며 보여주는. 그도 이 소설을 쓰기 위해 AI 검색을 수백 번은 한 게 아닐까 하는. 괴테라는 반짝이는 조각들로 배가 너무 빵빵해서 기어이 뱃가죽이 찢기고 문장들이 쏟아져 나올 것 같아. 입이며 코는 이미 곤죽이 된 책들이 꾸역꾸역 역류하고 있어. 오 이런, 이렇게 무리할 건 없는데!
스즈키 유이, 막차를 타듯 그렇게 급히 뛰어오를 건 없어. 이 소설조차 한낱 모래로 쌓은 바벨탑일 뿐이야.
그들의 선조가 잘 해냈던 것처럼 목까지 차오른 세계사적 급변에 서양을 베끼기나 하고. 양적 폭탄 좀 봐. 2001년 생이고 연간 1000권의 책을 읽는다고 작가 소개를 해주네. 이것이 스즈키 유이래. AI는 똑딱하는 순간에 몇 권의 책을 읽을 것 같아. 이런 물량공세라면 누가 더 낫겠나. 다시 묻게 되네. 샤르트르여, '문학이란 무엇인가'.
○ 색인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숫자는 본 책의 페이지.
15. 어린 시절 스승의 집에서 본 소녀 시절 모습은 어렴풋이 남아 있으면서도 20대 후반의 어른스러운 명랑함이 선명하게 배어나 도이치의 눈동자 안쪽부터 눈꺼풀 뒤쪽까지 그녀의 색으로 가득 찼다.
23. “독일 사람은 말이야.” 요한이 말했다. “명언을 인용할 때 그게 누구의 말인지 모르거나 싫은 본인이 생각해 낸 말일 때도 일단 ‘괴테가 말하기를’이라고. 덧붙여둬. 왜냐하면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거든.”
27. 또 도이치 자신도 소소한 대화 도중 자기도 모르게 괴테의 권위를 빌려 의견을 밀어붙이려 할 때가 있었다.
53. 특히 진분서원판 전집 제12권에는 헤세, 발레리, 엘리엇 등 호화로운 필진 열 명의 괴테론이 수록되어 있어서 도이치는 이로부터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예를 들면 “모든 것을 알고자 했고, 모든 것을 배우고자 했으며, 다른 사람이 우연히 가지고 있는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한...... 가장 포괄적이며 가장 전면적인 딜레탕트...... 종합적인 아마추어”라는 토마스 만의 평가는 지금도 도이치가 괴테를 이해하는 데 거대한 암석권을 이루고 있으며, 열 명 가운데 아마도 가장 괴테와 거리가 멀었을 발레리의 <괴테를 기리며>에서는 각별한 감명을 받았다.
77. 도이치는 각각의 사례를 메모하지는 않았지만 시카리가 방금 말한 명언의 세 가지 유형(요약형, 전승형, 위작형)은 머리에 새겨두었다. 곧바로 기억할 수 있는 이론은 대개 현실이 복잡성으로 인해 오류를 품고 있기는 해도 일단 이론으로서는 뛰어난 경우가 많다. “단순한 것은 항상 허위다. 단순하지 않은 것은 쓸모가 없다”라는 발레리의 말을 굳이 꺼낼 필요도 없다.
77. 주) 미국의 신학자 라인 홀드 니버가 쓴 것으로 알려진 기도문. “주여,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함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 그리고 그 둘의 차이를 구별하는 지혜를 주소서.”
79. 끊임없는 자기비판. 전문 분야에 대한 아는 척과 그 외의 분야에 대한 모르는 척이 매너로 여겨지는 학문의 세계에서는 이 또한 시카리가 지닌 수많은 미덕 중 하나였다.
80. 즉 명언은 분명 유명한 위인의 유명한 말이지만 실제로는 익명성과 무개성이 조건이 되는 셈이야. 혹은 맥락에서 떨어져 나왔기 때문에 오히려 온갖 맥락에 적용할 수 있는 활용도 만점의 말이거나. 근데 난 그래도 된다고 봐. 착각이야말로 평범한 말을 명언으로 만들어준다고나 할까. 요즘 시대의 소설의 한 구절이나 하이쿠 시구, 정치가의 연설, 유행어 같은 게 명언이 되려면 사람들이 ‘신화력’이 회복되어야 해!
98. 이런 식으로 약 120쪽 분량의 소책자가 터져나갈 듯했고, 왠지 1980년대에 올스타 총출동 무대가 떠오르기도 했다.
117. 세상은 언제나 똑같군. 여러 가지 상태가 항상 반복되지. 어느 민족이건 다른 민족과 마찬가지로 살고 사랑하고 느끼고 있어. 모든 것은 이미 말해줬고 우리는 기껏해야 그것을 다른 형식이나 표현으로 되풀이할 뿐이야..... 실생활에서 따오든 책에서 따오든 그런 건 아무 상관없어. 제대로 사용했는지 아닌지 그것만이 중요하지. 나의 메피스토펠레스도 셰익스피어의 노래를 부른다만, 왜 그게 안 된다는 건가? 셰익스피어의 노래가 그 장면에 딱 들어맞고, 말하고자 하는 바를 속 시원히 말해주면 되는데 어째서 내가 고생해서 나의 글을 새로 써야 할까? 예술에는 전체적으로 혈통이라는 게 있어. 옛 독일 청년들은 대화 마디마디에 성서를 인용할 수 있도록 교육받았는데, 그건 결국 감정이나 사건이 영원히 되풀이된다는 것을 암시하고 명시하지. 우리의 사상을 표현하는 데 옛사람들이 엄선한 품위 있는 언어를 사용할 때 그들이 우리의 마음 깊은 곳을 우리보다 더 정교하게 열어서 보여준다는 점을 인정하는 게야. 거장들은 항상 옛사람의 장점을 이용하는데 그 점이 그들을 위대하게 만든다네.
130. 시는 자연과 마찬가지로 창조의 과정에서 빛과 그림자를, 숭고함과 그로테스크함을, 다시 말해 영혼과 육체, 정신과 짐승성을 혼동하지 않고 혼합하기 시작할 것이다. _ 요약형으로 줄이면 “시 모든 것을 혼동하지 않고 혼합하기 시작한다”가 될 텐데 괴테도 위고를 알고 있었으니 어쩌면 이 문장을 읽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것을 주어만 바꾸어 “사랑은 모든 것을 혼동하지 않고 혼합하기 시작한다라고 말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사랑과 시는 역시 다르다. 물론 플라톤은 사랑의 손길을 받으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라고 말했다지만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알고 시를 깨우치는 경우는 있을지언정 시를 읽고 사랑을 깨우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168. 사람은 자신의 사상 전체가 아니라 파편으로 이해되지. 실언 하나로 커리어가 박살 나는 정치가나 연예인은 그 나쁜 예지만, 반대의 경우도 존재할 수 있어. 예컨대 괴테는 스피노자의 <에티카> 속 한마디만으로 이 철학자를 사랑하게 되지 않았을까? 전에 중국 작가 모옌이 그 유명한 소설 <백 년의 고독>을 몇 장밖에 안 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분명 거짓말일 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그럴 수도 있겠다 싶더라. 결국 작가나 사상가는 어딘가에서 날아온 나뭇잎 한 장으로 자신의 숲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잖아. 그렇다면 우리들 독자 쪽에서도 그 책 중 한 장으로 새로운 사원을 짓지 않으면.....
200. 명언 기록장의 시대이기도 해서, 당시는 연령 신앙이라고 해야 하나, 명언을 말하면 그 말의 힘을 습득할 수 있다고 믿었대. 그 믿음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잖아. 그래서 사람들은 명언을 기념품 머그컵에 새기고, 문구류에 인쇄하고, 벽에다 낙서로 쓰고, 별거 아닌 대화 속에 끼워 넣으면 교양인인 척할 수도 있고.... 그 후로도 명언집 전통은 이어져서 존 헤이우드나 라로슈푸코 같은 작가들이 나왔고, 프랭클린의 <가난한 리처드의 달력>도 등장했지. 여기까지는 여전히 교양 있는 개인이 고대부터 존재했던 말들을 명언집으로 모아서 소개하는 계몽주의의 분위기가 짙게 풍겼어. 이윽고 매스 미디어의 시대가 오자 정치가, 운동선수, 종교 지도자, 팝 가수가 명언을 인용하기 시작해. 그들은 그야말로 제멋대로 명언을 사용했어. 그게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갔지. ‘거짓말도 자주 하면 진실이 된다’라고 레닌이 절묘하게 표현했듯이 인용 횟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 말은 진실이 돼. 그리고 지금, 온갖 SNS에서 명언은 항상 팝적으로 생산 복제되고 있어....
203. 도이치가 ‘The Garden of Words’에 올라와 있는 “뛰어난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라는, 잡스가 종종 인용했던 피카소인지 스트라빈스키인지 말과 “미숙한 시인은 차용하고 숙련된 시인은 도용한다. 좋은 시인은 대체로 먼 옛날의 작품 또는 언어나 분야가 다른 작품에서 인용한다”라는 엘리엇의 말을 바탕으로 모더니즘에 대해 개관하는 짧은 글을 다 읽었을 때.....
210. 열이 확 받아서 ‘언어 시스템 자체가 인용이야’라고 쏘아붙였지. 보르헤스도 그렇게 말했거든 하고. 그랬더니 스즈키가 ‘논쟁에서 권위를 방패로 쓰는 사람은 지성이 아니라 기억력을 쓰는 것에 불과해’라잖아. 다빈치도 그렇게 말했어. 하면서. 그럼 사귀는 수밖에 없지.
212. 베버는 아키코가 좋아하는 유튜버라는 것을 그리고 생각했다. 자신의 명언 찾기는 결코 의미 없는 짓이 아니었다. 모든 것은 반드시 이어져 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무언가로부터 생겨났고, 우리는 아직 살아 있으니까.
233. 영향의 불안. 미국의 문화 비평가 해롤드 블룸이 만들어낸 용어 후배 시인이 뛰어난 선배 시인을 존경하면서도 독창적이고자 하는 욕망으로 인해 선배의 작품을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방어적으로 읽어 자신의 창조성을 부각하는 것을 가리킴.
235. ‘책 한 권 쓰자고. 다른 책을 몇 권이나 더 쓰는 게 얼마나 고생스러운지 알아?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이 되는 건 힘든 일이라고. 그런 말에도 이제는 자기변명의 기색이 없었고 시카리는 날조한 서적을 전부 실제로 썼던 것이다.
* 그래서? 그래서는 뭐? 이 책은 재기 발랄 스즈키 유이가 쓴 독서록이자 그야말로 위대한 인류 지성에 대한 감탄이자 탄식이 섞인 감상문 같단 말이지. 인용으로 뒤덮인 새로운 장르의 개척이자 막바로 임계점에 이른 끝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