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과 닮음의 부부
보고 싶은 영화의 리스트가 점점 길어지고 있다. 기분에 따라 장르도 정해야 하고 영화의 결말이 너무 열려있다거나 터부시 한 주제의 영화는 또 아무 때나 보면 싫고 중요한 영화는 집중해서 보고 싶은데 그날의 컨디션이 받쳐 주지 않아 포기하다 보니 괜스레 이런저런 제약만 쌓이고 영화 리스트는 점점 길어진다. 게다가 영화 타이틀에 도시 이름이 떡하니 들어가 있으면 더 어렵다. 이런 류의 영화는 흡사 여행지를 고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특히나 좋아하는 도시의 이름이 나올 때면 약간 아껴두었다가 여행이 필요한 시기에 꺼내서 관람하는데 요 방식, 꽤 묘미가 있다. 무튼 요새 내내 파리 여행이 생각났는데 겸사 오늘의 영화는 <위크엔드 인 파리(2013)> 로 해볼 작정이다.
로저 미첼 감독의 <위크엔드 인 파리>는 물론 여행 영화다. 그러나 다른 여행 영화의 핵심처럼 장소가 주는 아름다움을 담뿍 담아낸 관광처 홍보 영화 같은 느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매 여정마다 유난한 사건들이 발생해 해결을 한다거나, 장소의 이동과 함께 새로운 인물이 매번 등장하는 형식의 로드무비도 아니다. 이 영화는 온전히 주인공 노부부 닉(짐 브로드벤트)과 멕(린제이 던칸) 두 사람 간의 위기극복에 집중하였고 파리라는 도시는 그저 부부의 신혼여행 장소라는 단순한 이유로 병행된 느낌이다. 위기극복이란 단어가 조금은 진지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미 30여 년을 함께 지내왔고 서로 깊은 대화는 없어진 지 오래지만 이미 말할 것도 없이 깊은 이들 부부의 모습을 통해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배움을 얻었다고나 할까, 로맨스 되찾기 여행이란 타이틀을 내걸었지만 사실 이들의 모습은 파리와 함께 그 자체가 로맨스고 사랑이었다.
짐작이 가겠지만 영화의 첫 시퀀스부터 이 주인공들은 삐걱거린다. 삐걱거리는 소리도 여간 빈번한 게 아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분명 잘 맞지 않는 나무가 붙었을 때 내는 소리이긴 한데 뭐랄까, 마모된 부분이 오랜 세월을 거쳐 너무나도 정교히 교합된 느낌이랄까. 엄청 요란하게 삐걱거리면서도 되게 잘 굴러가는 그런 수레바퀴를 보고 있는 느낌이고 오히려 유려하게 잘 만들어진 바퀴보다 한번 더 눈길이 가고 더 정이 간다.
영화를 관람하다 보면 ‘아니, 이 영화 리얼리즘 영화야?’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게끔 하는 대목들이 있다. 그만큼 오래된 부부만의 세심한 포인트를 장점으로 살리는 사실적인 웃음코드가 있다. 이 감독의 초기작이었던 <노팅힐>에서도 느꼈던 부분인데 때로는 까칠하고 퉁명스러운 자신의 여자 앞에서 어수룩한 매력을 풍기는 영국 남자의 재미를 한껏 살리는 재주와 영국의 노팅힐에서도 파리에서도 도시를 구석구석, 조근조근 돌아다니며 낭만을 해석하는 특유의 재주가 있는 것 같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면, 30년 전 그들이 묶었던 호텔은 지금 그들에겐 너무 좁고 낡았다. 메뉴판을 볼 때도 돋보기를 꺼내야 한다. 여행 가방을 들고 계단을 단숨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을 서로 자랑하는 나이가 된 것이다. 영화 속 멕은 꽤나 즉흥적이고 낭만적인 캐릭터를 표현한다. 파리의 낭만을 얻기 위해서라면 호텔 스위트룸의 숙박 정도는 오케이다. 보통 즉흥적인 성격이라는 뜻에는 많은 뜻이 담겨 있지만 나는 그 말의 중심엔 항상 이후 벌어질 사건에 대한 특별한 대책이 없다는 식이라는 것을 잘 안다. 왜냐하면 멕의 인물 설정은 거의 내 모습 같았기 때문이다. 그와 대조적으로 닉은 뭐랄까, 여성 호르몬이 채워지고 있는 중인 중년 남성의 느낌이다. 여자가 기대하는 남성성은 아니지만 또 그 어수룩한 면모에서 풍기는 귀여운 멋이 다분하다. 가끔 보면 충분한 멋이지만 문제는 이것이 내 남자일 경우에, 또는 이러한 성격 패턴을 40년 가까이 옆에 두고 보아 온 멕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이처럼 멕과 닉의 대조적인 성격은 영화를 이끌어가는 중심 소재이며 모든 사건의 원인이고 또 해결 방식이다. 이 둘을 바라보면서 분명 누군가는 우리의 모습과 닮아서, 또 누군가는 우리의 모습과 달라서 흥미를 느끼지 않을까 싶다. 물론 나의 경우는 전자에 가까웠지만 말이다.
닮음과 다름의 부부, 멕과 닉
내가 ‘결혼’이라는 어마어마한 것을 결심했던 그때, 주위의 많은 지인들이 불안에 떠는 내 눈빛을 보며 가장 많이 던진 이야기가 닮음과 다름에 관한 이야기였다. 누군가는 서로가 너무 닮아서 다툼이 잦다는 이야기, 또 다른 누군가는 서로가 너무 달라서 매일 싸운다는 이야기. 또는 뭐 닮은 구석이 많아 결혼을 결심했는데 알고 보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달랐더라는 이야기, 등등. 그 다양하고 무궁무진한 스토리들이 놀랍게도 모두 하나의 결론으로 내달렸다. 그것은 다름 아닌 “싸움”
‘아, 결혼을 하면 완전 무조건 반드시 싸우게 되겠구나.’
결과를 미리 알고 고사장에 들어가는 수험생의 마인드로 임하다 보니 결혼생활에 로맨틱한 기대나 감흥 따위는 없어진 게 맞지만 실로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싸움-신혼시절 싸움의 대부분은 진정 사소한 문제에서 번지는 경우가 많다더니 그것은 가히 진리였다.- 정도는 후훗, 하며 대처해서 넘어갈 수 있는 여유가 생기게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단 한 번의 다툼이나 싸움도 없이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것은 당연히 판타지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싸움이라는 게 무슨 폭죽놀이처럼 여기저기 터져 가며 번질 때가 한 해에 두어 번쯤은 있다. 내가 성인도 남편이 군자도 아닌데 싸움이 발생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닮음과 다름의 관점으로 이야기하자면 나와 남편의 성격은 정반대이다. 나는 외면적으로는 굉장히 침착하고 차분해 보인다는 말도 안 되는 오해를 줄 때가 많은데 사실 나의 어느 포인트가 그러한 느낌을 주는 것인지 생각해 볼 때마다 잘 모르겠다. 평생 긴 머리를 유지하고 있어서 그런가도 싶고, 하여간 나는 굉장히 덜렁거리고 사실은 안 그런 척 하지만 뭐 하나에 꽂히면 성질도 꽤나 급한데 설상가상으로다가 관심이 없는 매사엔 치명적으로 게으르다. 반면, 남편을 이야기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마초적인 면을 많이 언급하지만 남편은 내가 평생 만난 사람들 중 가장 주위 깊으며 빈틈이 없는 세심한 성격이다. 한 가지 결정함에 있어서 그에 파생된 10가지 이상의 위험과 안전, 그리고 득과 실이 그의 머릿속에는 단번에 플로차트로 그려지는 듯한 느낌이다. 영화 <루시:Lucy,2014>의 스칼렛 요한슨 같은 느낌이랄까, 그래, 인간이라면 저 정도의 뇌는 활용하는 것이 맞는 건데 그에 비하면 나는 뇌의 10%도 안 쓰고 막 살아가는 느낌이라 매일 주눅이 들었다. 그러다 괜히 한 번씩 뿔따구가 나면 ‘아니, 갓 면허를 따서 고속도로에 나온 사람 마냥 왜 저렇게 많은 걱정과 우려를 미리 해서 삶을 고단하게 만드는 것인가,’ 라며 핀잔도 해보지만 결국 돌아오는 건 나의 무지몽매함의 확인사살일 뿐이다. 사실 반대로 생각하면 그의 눈에 나는 면허도 없이 고속도로에 나온 열일곱 살 망나니로 보일 텐데 나를 보며 얼마나 가슴 조일까 싶은 것이다. 물론 세심한 성격이니 만큼 스트레스도 더 받을 테고 말이다.
놀라운 것은 해가 거듭될수록 내가 그런 고달픈 성격(?)의 남편을 닮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고달픈 성격이라고 표현은 했지만 사실 어디까지나 미리 예방하고 준비해서 손해 볼 것은 없다. 그리고 그 편이 시행착오를 훨씬 줄일 수 있는 방안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무튼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된 건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닮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예전엔 생판 다르기만 했었지만 슬슬 비슷하게 물들어가고 있는 이 느낌. 분명 다른데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는 그런 진짜 부부의 모습이 되어가는 것이다. 아마 <위크엔드 인 파리>가 나에게 이토록 감동이 되었던 것도 멕의 모습에서 일부 나의 모습을 대면한 것이나 그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 것, 그리고 어쩌면 우리의 오래된 모습을 미리 보게 된 것 같은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닮아서 싸우는 것도, 달라서 싸우는 것도 다 맞는 말이다. 이들 부부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게 참 오래된 부부에서만 볼 수 있는 특유의 느낌이 있다. 싸움도 싸움 같지 않은 느낌, 미운데 웃음이 나는 느낌, 다른 듯 너무 닮은 느낌, 그건 곧 묵직한 사랑의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