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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기자 Jan 21. 2021

왜 그렇게 친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5세 이전 아이들은 함께 노는 시기가 아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아이를 낳기 전 하던 업무가 사람을 만나는 일이었다.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해서 모임에도 많이 참여했다. 이런 생활 때문이었을까. 아이를 낳고 무의식 중에 아이에게도 친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이가 백일이 지나고 외출이 가능해지자 병원에서 만난 엄마들 모임, 조리원 동기 모임, 공동육아 모임, 심지어 동네 엄마 모임까지 주선해 만들며 '아이도 친구랑 같이 놀기를 원할 거야'라며 그렇게 돌아다녔다.


물론 어릴 때부터 같이 놀던 친구들이 자연스럽게 인연이 된다면 그것도 참 좋은 일이다. 그런데 이제 기어 다니고 걸어 다니는 아이가 친구가 얼마나 필요할까.


아이도 친구랑 같이 놀고 싶어 하겠지 이런 마음으로 여기저기 많이 다녔다. 사진은 조리원 동기 모임


보통 아이들의 발단 단계상 4살까지는 또래 친구들과 함께 노는 시기가 아니다. 전문가들은 5살 정도부터 함께 놀기가 가능하다고 한다. 5살이 되었다 하더라도 기관이나 동네 친구들과 잠깐씩 놀아도 충분하다고 한다. 당시에는 이런 사실을 몰랐다.


생존 육아라 할 만큼 하루하루 버텨내는 게 시급해서 이런 공부를 하고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아이가 기고 걸어 다니게 되자 '아이도 또래 친구와 있으면 좋겠지, 친구랑 놀게 해야지' 그렇게 해야 하는 줄 알았다.


물론, 개인적으로 다양한 모임에 참여했던 이유가 몇 가지 더 있기는 하다. 일단, 주변에 가까이 사는 가족이나 친척이 없었다. 살고 있는 지역적 특성으로 아파트가 없고 놀이터도 없고, 심지어 큰 마트 하나 없는 이 동네에서 호기심이 많고 나가고 싶어 하는 아이를 데리고 어디 나가지도 않고 집에만 있는 건 힘들었다.  


거의 매일 외출을 했던 것 같다. 동네 한 바퀴면 좋았겠지만... 동네에서 애를 키우는 엄마를 만나기 쉽지 않고, 만날 공간도 없으니 동네 한 바퀴 수준이 아니었다. 주로 다른 구로 넘어갔다. 다른 구에 살고 있는 아이 엄마 집이나 마트, 실내 놀이터를 다녔던 것 같다. 아이가 걷기 시작했을 때는 아이들을 데리고 유아를 대상으로 한 미술관, 박물관, 연극, 공원 등도 다녔던 것 같다.


아이가 어릴수록 외출할 때 짐이 많은데 그 짐을 들고, 아기띠를 하며 아이가 먹는 시간, 낮잠 자는 시간을 챙기며 돌아다니는 건 힘든 일이다. 그나마 요령이 생긴 게 아이와 엄마에 컨디션을 고려해서 그때그때 선택적으로 다녔다.


걷기 시작하면서 아이 친구들과 함께 여기저기 많이 다녔다. 사진은 유아 대상 전시회.


돌이켜보면 '아이가 외롭지 않을까. 심심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친구들과 놀고 싶어 하지 않을까. 친구를 만들어줘야 해'라는 강박관념이 있었던 것 같다. 어린이집을 다닌 뒤에도 하원 후 어린이집 놀이터나 서로에 집에서 친구와 놀게 하고 그랬다.


주말에도 혼자 육아를 담당하는 날이 있으면, 나와 같은 상황에 있는 동네 엄마나 다른 구에 엄마와 함께 같이 놀기도 하고 외출하기도 했다.  


아이도 하원 후에 친구들과 노는 건 당연한 일이고, 말을 하기 시작하고는 "누구랑 놀고 싶어", "오늘은 누구랑 놀아?", "누구네 우리 집에 초대할까"를 늘 말하며 지냈다. '그래, 아이도 늘 누구와 놀기를 원하잖아' 하면서 그 누구를 찾으려고 여기저기 관계를 가지기에 바빴던 것 같다.   








사실 아이를 데리고 엄마들을 만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많은 에너지가 쓰인다.


엄마들끼리도 마음이 맞고 아이끼리도 마음이 맞아 인연을 맺게 되기가 어렵다. 엄마들은 마음이 맞는데 아이들은 서로 안 맞을 수도 있고, 아이끼리는 합이 맞는데 엄마들끼리 맞지 않는 경우도 많다.


아이를 데리고 엄마들을 만나는 건 회사에서 사람들과 관계 맺는 것과도 다르고 학교나 취미 생활 모임에서 친구를 사귀는 것과도 다르다. 남자들이 군대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것과 비교할까. 각자에 삶에 배경, 입장에 따라 생각이 다양하다. 그래서 파생되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도 있다.


또, 함께 노는 게 힘든 시기에 아이들이 놀다 보면 아이들끼리 갈등 상황이 많다. 아이들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되기도 하고 오해를 낳기도 한다. 아이 키우는 방식이 다 다른데 서로에 훈육 방식을 놓고 감정이 상할 수도 있다.


아이 입장에서도 사회성이 형성되지도 않는 아이들이 의도하지 않게 관계에 실패를 많이 경험하면 민감한 친구들은 관계 자체를 거부할 수도 있다. 아이마다 다르겠지만 전문가가 발달 단계에서 5세 이후라고 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아이에 친구는 아이가 커서 주도적으로 맺는 것이 가장 좋다는 걸 알게 됐다. 아무리 어려도 아이들도 자기가 좋아하고 친하게 지내고 싶은 친구가 따로 있다. 그리고 서로 싸우고 투닥거려도 쿵작이 맞는 그래서 또 보고 싶은 친구가 있다. 경험치가 적은 나이인데도 그런 게 있는데 본격 사회성을 갖춰 나가는 시기가 되면 알아서 할 것 같다.


어느 순간, '아이가 친구 없이 혹은 엄마와 둘이 놀아도 괜찮구나. 잘 노는구나'를 알게 됐다. 아이에 발달이나 기질 등을 공부하면서 오히려 이 시기에는 아이와 부모(주양육자)와의 관계에 더 집중해야 되는구나 했다.


친구랑 굳이 놀지 않아도 되는구나를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넓게 교류하던 관계가 정리되고, 약속을 일부러 정하는 일도 거의 없어졌다. 우연히 친구와 마주쳤는데 시간이 맞아 자연스럽게 놀다가 헤어지거나 동네에 두 세명 정도 마음 맞는 사람끼리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약속을 정해 만나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졌다.


아이 발달에서 5세 이전엔 함께 놀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난 이후에는 하원 후 자연스레 만난 친구와 짧게 놀다 헤어진다.


생각해보면, 결국 그 모임들은 또 하나의 엄마(부모) 모임이었다. 육아는 외롭다. 나 역시 왕성하게 사회생활을 하다가 주변에 도와줄 가족 하나 없이 집에 고립되어 아이만 보는 상황은 당황스러웠다. 아이를 낳았을 뿐인데 갑자기 세상에 홀로 떨어진 기분이었다. 힘들고 어렵고, 외롭고, 모르겠고, 공유하고 싶은 누군가가 필요했다.


맘 카페 글에서 아이를 안고 동네 마트에 갔다가 시식코너에서 제품 홍보하는 사람을 붙잡고 30분을 수다 떨고 왔다는 글을 보면서 그 마음이 어떤 심정인지 공감했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부모가 되고 맺는 관계들이 아이를 위한 것인지, 엄마를 위한 것인지 혹은 엄마와 아이 둘 다를 위한 것인지 구분할 필요가 있다. 5세 전후까지는 엄마가 서로에 육아를 응원하고, 위로할 수 있는 사이를 만들고 싶다면 차라리 그것에 집중해서 관계 맺기를 하면 시행착오가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또한, 아이를 데리고 부모끼리 만나더라도 아이들이 함께 노는 것이 힘든 시기인 것을 인지하고 교류한다면 서로가 이해되고 용인되는 부분이 많을 것 같다.


나 역시 돌이켜보면 모임을 통해 육아를 하며 힘들고 지친 마음을 다른 부모들과 공유하고 위로받았던 게 컸던 것 같다. 결국 그렇게 활동했던 모임이나 그런 마음을 주고받은 엄마들만 관계가 남기도 했다. 이런 마음을 공유할 수 있는 마음 맞는 엄마 한 둘이면 충분했던 것 같다.


"친구랑 놀아야 해, 친구가 있어야 해"라는 생각을 내려놓은 순간부터 아이에게 더 집중할 수 있어 좋았다. 그러고 나서 아이도 훨씬 더 안정감이 생겼다. 관계 맺는 것에 쏟았던 에너지를 나와 아이와의 관계에 쓰고 아이가 하는 놀이에 집중하는데 썼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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