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앤기자 Jan 25. 2021

"다 내 거야" 하는 아이

사회성이 갖춰지고 때가 되면 알아서 나눠주기 시작한다.

우리 아이 36개월까지만 하더라도 "다 내 거야"를 입에 달고 살았다. 특히, 자기가 매일 놀았던 공간에서는 그 위세가 더 대단했다.


매일 노는 놀이터나 모래사장에 있는 장난감은 뭐 하나 양보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자신에 집은 어떨까. 누구 집에 놀러 오기라도 하면 놀이 내내 "내 거야" 하는 아이 쫓아다니며 말리느라 시간이 다 가곤 했다.  


매일 노는 모래놀이터에 평소 알고 지내는 친구가 놀러 왔다. 텃세를 부리듯 자신이 놀던 공간이라며 장난감 두 개만 내어주고 자기가 다 할 거라 한다.


다른 또래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친구들 집에 놀러 가도 자신에 물건에 손대는 건 힘들어한다. 아이 발달 단계를 이해하면 당연한 일이다. 함께 노는 시기가 조금씩 가능한 5세 전후가 되어야 아이들은 사회성을 갖춰나가면서 장난감을 공유할 수 있다. 물론, 5세가 되어도 자신에 장난감을 내어주는 건 힘든 일이다.


특히, 우리 아이는 "내 거야"가 강한 친구였다. 앞서 내가 쓴 글에서 언급한 우리 아이 기질에서도 유추할 수 있다.


우리 아이처럼 자기 경계가 분명한 아이가 자신의 영역에서 장난감을 공유한다는  어려운 일이다. 자신이 내어 주기도 쉽지 않지만, 어떤 누군가가 자기에 경계를 허물고 물건을 가져간다는 것도 아이는 위협을 받는 것이라 인지하기 때문에 공격할 대상이라고 여긴다.


https://brunch.co.kr/@annrlwk/2


연관해서 보면, 이런 친구들은 대다수 대인관계에 대한 긴장도도 상당히 높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관계가 쉽게 대립적인 상황으로 바뀐다. 36개월 이전까지 또래 친구와 기질에서 나타나는 대립 상황이 많았다.


우리 아이는 4살이 넘어서면서 조금씩 친구들과 장난감을 함께 가지고 놀게 되었을 때도 자신에 물건에 대한 요구, 허락에 과정이 없이 가져가면 그 상황을 몹시 불편해했다. 사실 어른도 그렇고 누구든 그렇지 않을까. 좀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아이를 보며 기질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물론, 함께 놀기가 안 되는 시기부터 물건을 잘 나눠주는 아이들도 있다. 첫 글에서 밝혔듯 아이 역시 저마다 자기 색깔을 드러내며 다르기 때문이다. 개인에 경험에 비추어 공유하고자 한다.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장난감은 '네가 들고 있는 그 장난감'


유아기 아이들이 놀다 보면 "내 거야" 혹은 "나도 이 장난감 가지고 놀고 싶은데"는 매 순간 일어나는 일이다. 부모들 사이에는 이런 말도 있다.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장난감은 '네가 들고 있는 그 장난감'"이라며 장난감이 아무리 많아도 친구가 들고 있는 순간 전쟁이 시작된다.


조율하는 게 참 쉽지 않다. 간혹 쉽게 양보하거나 그러든 말든 상관없어하는 아이가 있는데 그런 성향에 친구를 만나면 이런 부분이 잘 넘어가는데 같은 기질에 아이라도 만나면 누구 하나 울고, 집에 가야 끝나는 일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함께 노는 게 힘든 5세 이전에는 또래 아이들과 놀기보다는 주양육자와 아이 1:1 관계에 집중하는 거다. 유대인들은 36개월 이전에는 친구네 집에도 놀러 가지 않고, 친구를 집으로 초대하지 않는다는 글을 봤다. 자기 물건에 대한 소유 개념을 확고하게 심어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런데, 어디 그럴 수가 있나. 어린이집 끝나고 친구들과 놀기도 하고 동네 친구와 어울려 놀 수도 있고 사촌들과도 놀 수 있다. 하다못해 홀로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에 가도 그곳에서 또래 아이를 만나 같이 놀 상황이 생긴다. 또래와 만나는 일을 아예 차단하고 사는 건 쉽지 않을 것 같다.


아이 기질에 대해 공부한 뒤에는 혼자 아이를 데리고 유아 활동을 위한 공공시설이나 공원, 놀이터를 많이 갔다. 거기서 모르는 친구라 할지라도 자연스럽게 만나 같이 놀다가 오는 것이다. 부모도 아이도 부담이 없고, 놀다가 안 맞으면 인사하고 돌아서면 그만이었다.


탁 트인 공원, 놀이터에서 자연스럽게 만나 놀면 갈등 상황도 없고 서로 부담도 없이 즐겁게 놀다 헤어질 수 있다.


가끔 친구와 약속을 잡을 때는 가급적 실내에 한정된 공간이 아닌, 탁 트인 외부 공간에서 약속을 잡았다. 이런 공간에서 만나면 갈등 상황이 줄어든다. 자연 공간에서 놀다 보면 주변에 흩어진 흙, 돌멩이, 나뭇가지, 꽃 등등이 다 장난감이 된다. 그런 것까지 싸움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즐겁게 놀다 헤어질 수 있다.


어쩔  없이 실내에서 만날 때는 공간을 분리해서 놀았다. 어차피 이 시기에 아이들 대다수 각자 논다. 어린이집에서도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 놀이를 하며 각자 노는 모습을 자주 볼 수가 있다.


그래서 각자 놀고 싶은 장난감을 들고 따로 방에 들어가서 놀기도 하고, 놀고 싶은 장난감으로 따로따로 각각 떨어져서 놀게 하기도 했다. 물론 이것도 이렇게 노는 게 가능한 친구가 있고, 가능하지 않는 친구가 있다.


이렇게까지 해서 친구와 놀아야 하나 싶긴 하지만, 가끔 아이도 부모도 외로울 때가 있다. 특히나 나처럼 주변에 가족이 없고, 남편조차 퇴근이 늦고 남편이 주말까지 업무를 하는 경우. 아이가 일어나서 잠잘 때까지 오롯이 혼자 아이를 봐야 하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각자 방에 있지만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충족될 때가 있는 것이다. 육아와 가사에 지쳐서 어쩌지도 못할 때 한 공간에서 누군가와 육아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힘이 될 때가 있다.


, 호기심이 많고 에너지가 많은 아이들은 집에서 엄마와 아이 둘만 노는데 한계가 있다. 아이 내재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쌓여있는 것을 분출하지 않으면 짜증도 많고, 잠도 자지 못해 서로가 힘들다.


우리 아이가 그랬다. 기질적으로 위험 회피 성향이 강하지만 사람에 관심이 많고, 활동량이 많았다. 아이 또한  누군가 함께 놀기를 원했다. 매번 요구를 들어줄 수는 없었지만 하원  놀이터에서 자연스럽게 만나는 친구와 자주 놀았다.


24개월이 지나 의사소통이 가능해지고는 아이가 친구와 놀려고 할 때면 아이에게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얘기를 했다.


자신에 장난감에 대한 소유권에 대해 존중해 주면서도 "함께 놀려면 장난감도 같이 나눠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럼 아이는 "자신에게 소중한 건데 그걸 나누는 게 힘들다"라고 얘기한다.(아이 대답을 들으면 맞는 말만 해서 할 말이 없을 때가 많다. 그래도 "함께 놀려면 장난감을 나눌 수밖에 없다"라며 설명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등 상황이 깊어지면 아이를 데리고  자리에서 벗어났다. 아이에게 설명도 하고, 화제를 전환해보는 등  몇 가지 노력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일이 발생해서 서로가 불편할 때는 아이를 안고 그대로 헤어졌다.


물론, 아이는 그 자리를 엄마가 강제적으로 떠나게 하는 부분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울면서 화를 낸다. 자리를 벗어나서 차분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아이에게 설명을 했다.


이 시기에 아이들이 듣고 대답도 하지만, 아직 모든 것을 이해하기는 어렵다고. 그래도 꾸준히 반복적으로 설명했다. 역할 놀이도 했다. 상대에 입장이 되어 볼 수 있도록. 아직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타인에 대한 입장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이런 역할 놀이를 통해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해봤다.


관련 책도 찾아 읽어줬다. 그림책에 보면 "내 거야" 하는 책들이 있다. 그런 책을 보며 상대 기분도 이야기하고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묻고 답하고 그랬다.


그레이트북스 '내 거야, 내 거!'. 자신과 유사한 행동을 하는 대상을 보며 아이와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엄마도 아이와 관련 행동을 하는 그림책을 보며 치유하기도 한다.


36개월쯤 지나니깐 자신에 장난감을 스스로 나눠주기도 하고 집에 가져가라고 빌려주기도 했다.


사실, 여러 가지 노력들보다는 아이 커가고 그럴 시기가 되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하는  같다. 아마 사회성이 조금씩 갖춰지면서 장난감을 나눠야겠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한  같다.


늘 생각하지만 아이도 아이만의 시간이 있다는 걸 느낀다. 다 때가 있는 거구나. 부모에 가장 중요한 역할은 기다리는 거구나.


코로나 바이러스 19로 친구와에 교류가 거의 없는 지금 아이는 종종 묻는다. " 친구를 만날  없냐고" 5살이  아이는 이제 사회성을 조금 갖춰서 함께 놀기를 시작하는데 친구들을 만날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가끔은 그립다. 놀이터에 가면 누구나 만나서 함께   있었던 때를 말이다. 언제쯤 그런 시기가 다시 돌아올까.


 

매거진의 이전글 왜 그렇게 친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