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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기자 Oct 08. 2021

아버지와 역류성 식도염

그는 어디로 갔을까

 찬 바람이 분다. 속이 쓰리다. 잠에서 깬다. 새벽이다. 할 일이 없다. 글을 쓴다. 참으로 오래된 병이다. 아버지를 닮았다. 늘 위를 쓰다듬으며 트림을 하던 그는 지금 생각해 보면 역류성 식도염이었다. 그의 자동차에는 늘 겔포스가 한 가득 실려있었고, 식후에 커피 한 잔 마시듯 겔포스를 쭉쭉 빨아 당겨 넘겼다. 무슨 맛일까 궁금해서 몰래 뜯어서 먹어 봤다가 토해냈던 기억이 난다. 생긴 것도 하얗고 걸쭉해서 세상에 없을 것 같은 모양인데 맛도 없다. 그때는 왜 이걸 그렇게 열심히 먹을까 했다. 


@ 보령제약 홈페이지


 힘든 하루의 노동이 끝나면 술을 질펀하게 마시고는 한 손에는 과일을 담은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집으로 왔다. 그때도 늘 새벽이었다. 자는 나를 깨워 말을 꺼내고는 했다. 평소에는 말 한마디 없던 사람이. 그 많은 말을 삼켰던 걸까. 그는 늘 자유롭고 싶어 했다. 지금의 나처럼 말이다. 어린 내 눈에는 축 처진 어깨 사이로 날개를 달고 하늘로 올라갈 것 가고 싶은 아이 같았다. 나무꾼과 선녀에 나오는 선녀처럼 말이다. 선녀와 다르게 혼자서 날아가고 싶은 것 같긴 하지만. 


 그의 차 옆 좌석은 항상 내가 앉았다. 아주 어린 나이 때부터다. 우린 둘이서 데이트를 많이 했다. 한 바퀴 돌고 오자, 말을 꺼내면 차를 타고 어디까지 안 가는 곳이 없이 여기저기를 누볐다. 비가 오는 날이면 해운대 달맞이 언덕 어느 자리에 차를 세워두고 내리는 비를, 내려다보이는 바다를 한참이고 말없이 보고는 했다. 고속도로 어느 가판대에서 샀을지도 모를 테이프에서 구슬픈 옛날 노래가 흘러나왔다. 어린 나는 그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축축한 기분이 싫지는 않았다. 


 그는 아침이면 일어나 명상을 했다. 양반 다리를 하고 꼿꼿하게 앉아 눈을 감고 참선을 했다. 어린 나는 물끄러미 그 모습을 지켜봤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어제 마신 술을 후회했을까. 오늘은 안 마셔야지 다짐했을까. 아니면 오늘 하루도 살아내야 함을 확인했을까. 어쨌든 명상이 끝나면 기지개를 한 껏 켜고 마른 얼굴을 소리가 나도록 비비고 간단한 맨손 체조를 하고 물 한잔을 마셨다. 겉보기에 좋은 시작인 것 같았다. 크면 나도 그래야겠다 그랬다. 


 그는 어깨가 말리고, 등은 살짝 굽어 있었는데 그런 자세로 담배를 피우는 뒷모습을 보면 세상 짐 다 진 것 같았다. 역류성 식도염 때문에 그런 자세가 되었다는 건 한참 뒤에 알았다. 언젠가부터 그 모습을 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되면서이다. 쓰린 속을 부여잡다가 보면 어느새 등이 굽어지고 어깨가 말려들어갔다. 목이 타고 혀가 늘 상처나 있다. 기운이 머리에 뜨고 생각이 많아진다. 자연스럽게 말을 삼키게 된다. 어릴 때 지켜보던 그와 비슷한 나이가 되어가는 나를 본다. 


 비가 오면 그처럼 해운대 달맞이 고개로 달려가보고 싶다. 그 자리 차를 세워두고 내리는 비와 내려다보이는 바다를 실컷 보면서 구슬픈 노래를 들어보고 싶다. 그를 옆에 태우고 말이다. 그런데, 그가 없다. 그는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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