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름은 왜 하나야?"
아이 세 살 때다.
“엄마 이름은 왜 하나야?”
“그러게, 이름이 여러 개면 부를 때 헷갈리지 않을까?”
“난 이름이 많았으면 좋겠어.”
“무슨 이름 하고 싶은데?”
“큰 돌멩이? 작은 튀김?”
우리 부부는 한 동안 아이 이름을 그때, 그때 부르고 싶은 이름으로 불러줬다. 마치 인디언 이름 같은 신기한 이름으로 말이다. 사람들은 우리 아이를 보고 ‘자유로운 영혼’라는 말을 많이 했다. 자유도도 높고 생각이나 행동하는 것이 엉뚱하고 신기할 때가 많다.
때때로 바닥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며, “엄마, 엄마도 누워서 하늘 좀 봐. 하늘이 너무 예뻐” 이런 말을 하고는 했다. 정해진 활동보다는 틀이나 경계 없이 주변에 주어진 상황으로 상상을 하며 노는 것을 더 좋아한다. 흙바닥에 풀이나 꽃, 나뭇가지로 무언가를 만들고, 그렸으며 물을 부어 집이나 성을 만들었다. 주변에 떠돌아다니는 고양이를 좋아해서 밥을 주길 원했고, 동네 강아지를 좋아해서 이름을 외우고 다녔다.
타고난 기질이다. 그런데, 이런 기질을 있는 그대로 아이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부암동이란 환경이 큰 영향을 준 것 같다. 산책길에 보이는 풀, 나무, 돌멩이, 흙 이런 모든 것들이 아이의 놀잇감이었다. 동네에 아이들이 많이 없어서 비교대상도 별로 없었고, 육아 정보도 크게 없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부암동이란 동네가 아이를 키우는 인프라가 편리하지 않았지만, 불편하게 사는 대신 아이는 자기가 태어난 모습 그대로 자유를 느끼며 성장했던 것 같다. 어쩌면 우리 아이에게는 처음부터 부암동이란 환경이 자연스러웠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는 자기가 자라고 태어난 이곳에 대한 애착이 무척 깊다. “엄마, 난 여기가 너무 좋아. 산도 나무도, 풀도, 하늘도 다 마음에 들어. 다른 곳에 이사를 가고 싶지 않아” 이런 말을 자주 한다. 한 집, 두 집, 이웃의 누군가가 떠나갈 때마다 다짐하듯 우리 부부에게 “자기는 이사 가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해왔다.
그리고 나 역시 부암동을 사랑하게 됐다. 나와 닮은 아이를 보며 사회생활을 하며 잊었던 날 것의 있는 그대로 내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이 동네와 누구보다 어울리는 사람은 ‘나’라는 것도 알게 됐다. 부암동에서 아이를 키우는 동안, 시행착오는 있었지만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라는 시선을 떨쳐낼 수 있었고, 인간관계에 더 이상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을 수 있게 됐다. 또, 적어도 남들처럼은 살아야 한다며 알 수 없는 강박에 아등바등하던 내 모습을 위로하고 떠나보낼 수 있었다. 있는 그대로 살아도 하늘이 무너지거나 내 삶이 어떻게 되거나 하지 않았다. 오히려 순간을 더 집중하고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있는 나를 받아들이고 감사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