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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기자 Mar 01. 2022

노을 맛집, 부암동

부암동 길을 걸으며 서울 도심에서 ‘쉼’과 ‘문화’를 느껴보는 건 어떨까

푸른 기와집, 청와대에서 부암동으로 올라오는 길을 따라 걸어오면 청운중학교를 지나 윤동주 문학관이 보인다. 윤동주 문학관 위로 올라가면 시인의 언덕이 나오고 조선시대 한양 성곽이 이어져 있다. 다시 내려와 윤동주 문학관에서 길을 건너면 한양도성 사소문의 북문인 창의문이 있다. 이곳에 자줏빛 노을(자하, 紫霞)이 아름답게 내린다 해서 자하문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 이후 부암동을 비롯해 구기동, 평창동, 신영동, 홍지동 이 일대를 ‘자문밖’이라고 불렀다. 창의문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부암동이 나온다. 


‘서울 도심의 시골’이라고 불리는 부암동은 청와대와 인접하기 때문에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있다. 옛날부터 화가, 문인 등 예술가들이 사랑한 동네다. 최근 개성 넘치는 카페와 미술관 등이 생기며 감각적인 공간으로 주목받는 곳이다. 부암동은 어디를 가든 풍경을 액자 삼아 즐길 수 있고 역사와 문화가 겹겹이 쌓인 골목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부암동 길을 걸으며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쉼’과 ‘문화’를 느껴보는 건 어떨까.     


    

 

과거에 멈춰 있는 능금마을      

    

드라마 커피프린스에 이선균의 집으로 나오기도 했던 ‘산모퉁이’ 카페를 끼고 걸어가다 보면 여시제가 나오고 백사실 계곡으로 가는 입구가 나온다. 도롱뇽, 버들치가 산다는 1급수인 계곡을 따라 걸어다가 보면 능금 마을이 있다. 부암동이 ‘서울 도심의 시골’이라는 별명이 있지만 능금마을이야 말로 강원도 어느 시골 마을에 들어선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산속에 텃밭이 여기저기 있고, 오래된 집들이 띄엄띄엄 보인다.       



능금마을이라는 이름이 유래된 이야기는 여러 개가 있다. 그중 조선시대 인조의 셋째 아들인 인평대군이 중국에서 능금 씨를 가져다가 심었다고 해서 능금 마을이라고 이름 붙였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이 마을은 임금에게 바치는 귀한 능금이 생산되었다고 한다. 1970년대까지는 살구, 자두 등도 키우는 과수원 마을이었다. 조용하고 평화롭게 살던 마을은 1986년 ‘박정희 대통령을 죽이러 왔다’던 김신조가 내려오고 나서 한 동안 시끄러웠다고 한다.           


어려운 시절, 방 한 칸 만들어 집이라고 살면서 꽤 많은 가구가 있었는데 김신조 사건 이후 서류상으로 땅 주인이 아닌 사람은 다 내쫓겼다. 근처에 군부대가 주둔하고 민감한 지역이 되면서 군사보호구역 및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이기 시작했다. 몇 집 안 남은 집에 주민들의 재산권이 제한되었다. 지금은 25가구 정도만 남은 능금마을에는 어르신들만 남아 있다. 여름에 능금마을을 지나가면 할머니들이 텃밭에 심어놓은 오이를 따서 하나 먹으라며 권하기도 한다. 능금마을 끝자락에는 다른 가구들과 달리 마을의 풍경과 좀 동떨어져 보이는 마당이 넓은 제법 규모가 큰 집이 있다. 영화 ‘은교’에 주인공 집으로 나왔던 곳이라고 한다.   


        

사색의 달콤함! 인왕산 초소책방 더 숲         


윤동주 문학관을 지나 인왕산 숲길에 접어들어 10분 정도 걸어가다 보면 인왕산 초소책방이 나온다. 1986년에 김신조 사건으로 청와대 주변에는 곳곳에 초소가 생겼다. 그중 인왕산 중턱에 있는 50년 된 초소를 2020년에 리모델링해서 책방과 카페로 꾸몄다. 책방 곳곳에는 경찰초소의 구조물이 남겨져 있다. 벽돌로 된 초소 외벽의 일부가 남겨져 있기도 하고, 초소의 철제 출입문도 그대로 있다. 초소 난방을 위한 기름 탱크도 바위 아래 녹슬어 있는 채 그대로 뒀다. 이런 구조물은 새로 지은 카페와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통유리로 된 1층에는 다양한 주제의 책이 있어 숲 속 한가운데서 책을 보는 여유를 즐길 수 있다. 2층에 올라가면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탁 트인 풍경을 바라보며 커피나 차를 한 잔 하고 있자면, 바쁜 일상 속 쉼을 느낄 수 있다. 초소책방의 야경은 더 멋있다. 산책길 중간에 바위로 둘러싼 조명으로 한층 더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깜깜한 어둠이 깔려 있고 사방이 고요한 가운데 저 멀리 도심의 불빛들이 잠시 일상 해서 벗어날 수 있게 한다. 


초소책방은 복합 문화 공간으로 사용되며 전시나 문화 이벤트가 열리기도 한다. 주차장 공간이 협소해서 차를 이용해 오는 것 보다 숲길을 걸으며 방문하는 것이 초소책방을 제대로 즐길 수가 있다. 초소책방이 있는 산책길은 또 다른 길들과 연결되어 있다. 초소책방을 지나 숲길을 내려가면  수성동 계곡으로 내려올 수 있는 계단이 있다. 수성동 계곡을 따라 내려가면 서촌이 나온다. 계단을 지나쳐서 숲길을 따라 걸어 내려가면 ‘국궁 활터’를 지나 사직공원을 만날 수 있다.           



부암동 뷰 맛집, 목인박물관       

   

인사동에 있던 목인박물관 목석원이 2019년 부암동으로 이전했다. 부암동 주민센터 옆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면 꼭대기에 위치해있다. 박물관에 전시된 목석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목인박물관에서 보이는 풍경은 광활하고 멋있다. 눈앞에 북한산이 펼쳐 있다. 형제봉, 보현봉, 문수봉, 나한봉 등 산 봉우리들이 쭉 이어진 산 아래 담긴 부암동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산모퉁이 카페 주인이기도 한 목인박물관 김의광 관장은 태평양 서성환 창업자의 둘째 사위이기도 하다. 그는 설록차와 제주도 녹차박물관 ‘오설록’을 만드는데 일조한 인물로 회사를 나오고 박물관을 세웠다. 평생 모았던 목인들을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세계 각국의 목인을 볼 수 있다. 박물관 중간마다 풍광을 즐길 수 있는 벤치와 의자가 있다.            



청와대에서 올라와 부암동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창의문을 지나면 자하손 만두, 계열사 등 유명한 맛집이 이어져 있고, 환기미술관 등 크고 작은 미술관들이 있다. 한 바퀴 둘러보며 부암동의 아기자기하고 다양한 집들이 저마다의 모습을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다.



부암동에 있는 음식점이나 커피숍은 어디를 들어가도 맛이 있다. 단지, 취향의 차이다. 그 중 맘스키친은 일본인이 직접 경영하는 일본 가정식으로 카레와 그라탕 외에도 면이나 닭튀김, 디저트 등이 있고 대체로 맛있다. 



목인박물관을 내려와 영국인 형부와 한국인 처제가 운영하는 스코프에서 다른 곳에서 잘 맛 볼 수 없는 투박하지만 맛있는 영국식 빵을 먹어보길 권한다. 음료수와 커피는 그 옆에 위치한 럼버잭이나 소마 커피를 추천한다. 럼버잭의 경우 산자락의 암벽을 그대로 살려 인테리어를 했고, 2층의 창문 바에 앉아 반대편 산과 도로를 내려다보니 재미가 있다. 자몽이나 레몬을 통째로 잘라 넣은 음료수가 일품이다. 소마 커피는 공간은 작지만 주인이 커피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해서 커피 맛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그만큼 원두도 괜찮고 맛이 깊다. 커피를 한 잔 하고 여유가 있다면 흥선대원군의 별장이었던 석파정을 둘러봐도 좋다.      





* 하나원큐M 매거진 '스토리대한민국' 코너에 게재한 글입니다. https://hana1qm.com/?p=12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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