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다

by 안유진


때로 우울은 밀려오는 물 같아서 발 끝에 닿기만 해도 우울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나는 주로 젖어버린 김에 차라리 온몸이 젖도록 내버려 두자고 생각해버리는 편이었다. 우울이 나를 잠식해버리도록, 깊이를 모르는 우울의 끝까지 나를 추락시켜버리자고. 그러고 나면 오히려 생각보다 깊지 않은 우울에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요즘은 잠식되는 게 싫다. 무기력해지는 스스로가 싫고, 그 상황에 다시 놓이는 게 싫다. 완전히 젖어버린 나를 말리는 데에 또다시 시간이 걸리는 것에 진절머리가 난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는데 나만 퇴보하는 것 같다.

그만 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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