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와 발리에서 한 달 살기, 가능할까?
생각보다 할 만한 육아였다.
밤잠을 못자고 피곤함에 절어 살게 되고,
끼니를 못 챙겨 밥그릇 하나로 모든 걸 해결하게 된다고 했다. 겉으론 ‘아휴 그러니까요, 저도 꽤나 전투육아였지뭐에요’ 라곤 말했지만 속으론 한창 때의 직장생활과 비교하며 ‘생각보다 할 만 한 데?’이라 생각했다.
2박3일을 회사 책상에서 먹고 일하고 회사 화장실에서 정체모를 비누로 세수하고 옷 한 번 못 갈아입고 일했던 적도 있다.
에어컨도 안 돌아가는 한여름의 카페에서, 광고’주님’들의 곁에서, 기자’님들’의 눈칫밥 먹으며 어떻게 하면 기사 한 번 더 내 볼까, 광고주님 맘에 들까 전전긍긍하던 진짜 ‘헬시절’도 있었는걸 뭐.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야
아무리 일이 힘들다지만 그래도 퇴근이 있었고 휴가가 있었다.
그러나 육아에선 일시적 퇴근은 있어도 휴가란 얻을 수 없는 일이었다.
친정엄마에게 잠시 아일 맡기고 떠나면 되겠지만 이 죽일 놈의 장녀컴플렉스가 문제였다.
‘난 우리 엄마에게 고생을 짊어지게 하고 싶지 않아, 조부모의 육아악습 고리는 내가 끊으리!’ 라는 과도한 사명감과 책임감에 사로잡혀 버려서.
하지만 이제 한계다. 좀이 쑤신다. 가방을 싸고 싶다. 애는 두고 갈 수 없다.
그래서 데려 가기로 했다. 수많은 엄마들처럼 초록 검색창에 ‘아기와 해외여행’, ‘00개월 아기와 비행기’ 등 수유중에도 애가 잠든 와중에도 머릿 속에 생각이 날 때 마다 검색을 해봤다. 결국 그녀들도 용감한 선택을 했고, 데리고 갔고, 무탈하게 돌아오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맘 한 구석에 있는 쫄보의 심성을 어찌 털어내기가 쉽지 않다. 물갈이를 하면 어쩔것이며, 갑자기 아프면 그건 또 어떻게 할 것인가. 고스란히 내 책임이다.
내 잘못이 아니어도 내 잘못인 것이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순간 ‘아 이 여행 괜찮은 걸까’하는 부담감이 엄습해왔다.
나 애랑 같이 여행갈거야!
십중팔구 힘들 거라는 답만 돌아왔다. 니가 쉬러 가는 거겠냐, 아서라, 엄마 욕심에 애 잡는다 등등.
그래, 힘들겠지.
하지만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
이 생각이 나의 뇌리에 이미 깊이 박혀 버렸기에 마음 먹었다. 행복지수가 바닥을 치기 전 어서 준비하자. 그래, 떠나자!
어디로 가지?
괌은 우선 제외였다.
남들 할 거 다 따라하고 싶던 임신 시절, 태교여행으로 떠났던 괌은 아무래도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비슷한 먹거리, 여기저기 들리는 한국말들.
(우리 동포들이 싫다는 게 아니다. 그래도 비싼 돈 들여 여행 왔는데 국내느낌 낭낭하면 김빠지는 그 기분들 다들 아시잖아요.)
유럽은 나도 힘들다. 아무리 여행병 걸린 엄마라지만 내 새끼 거기까지 데려가기엔 아가에게 고난의 행군이 될 게 뻔했다.
후보를 하나씩 지우고 나니 지도에 남는 나라가 몇 없다. 실의에 빠지려던 밤, 용량이 많아 버벅대던 핸드폰 사진 정리도 할 겸 블로그에 들어갔다. 한참을 비워둔 빈집같던 이 곳에 케케묵은 먼지을 털어내듯 옛 포스팅을 하나씩 읽어 내려갔다.
그 때 날 잡아낸 초록의 사진들. 발리였다.
그래 발리, 다시 발리로 떠나자.
나의 마지막 20대 대미를 장식해 준 그 곳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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