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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륜 May 13. 2021

읽는 자가 들은 말

파스칼 키냐르의 말_마음산책


책은 읽는 이의 것이다.

쓰는 이의 손을 떠나는 순간부터 책은 새로운 여행을 시작한다. 


선선한 봄날 저녁, 골목길 카페에서 <파스칼 키냐르의 말> 속으로 여행을 떠났다. 책 읽지 않는 시대에 책 읽는 젊은 세대들이 모였다. 마음산책북클럽이 깔아준 자리에 낯선 어깨가 서로 닿을 듯 앉았는데, 책 좀 읽는다는 지난 세대는 구석에서 숨죽이고 구경했다. 


번역자와 편집자의 대담이 이어지고 독자의 말이 하나 둘씩 흘러나올 때 나는 키냐르가 말한 잃어버린 목소리의 의미를 조금 알듯했다. 책의 한 부분을 읽으며 울었다는 젊은 여성의 고백은 <파스칼 키냐르의 말>을 온몸으로 읽어낸 한 장면으로 내게 다가왔다.


//이 잃어버린 목소리는 독서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독서하는 동안은 침묵합니다. 목소리를 잃어버립니다. 잃어버린 목소리는 발성 단계 이전, 태어나기 이전의 그 순수하고 절대적인 듣기 상태와도 같을 수 있습니다. 열병에 걸린 듯 정신 없이 빠져드는 독서 중에는 언어를 가르치는 자의 입술 위의 그 무엇도 의미가 없습니다.//


출판사에서 가제본으로 보내준 <파스칼 키냐르의 말>을 읽으면서 처음 만난 작가의 내공에 정신이 없었다. 그의 책을 읽어본 적이 없는데 그의 말을 들으려니 버거웠다. 샹탈 라페르데메종의 질문과 파스칼 키냐르의 대답으로 이루어진 이 책 속의 침묵, 카오스, silete, attaca와 같은 단어들의 의미가 그의 작품에 어떻게 나타나는지 궁금했다. 


소설 <세상의 모든 아침>을 찾아 읽어보았다. 음악가 집안 출신의 아버지와 언어학자 집안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파스칼 키냐르를 이해하기 가장 적절한 소설일 듯싶었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이 소설은 미문美文을 추구하지 않는 키냐르 글의 몰입도를 제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16세기의 현악기 비올라 드 감바viola da gamba로 연주되는 음악은 어떨지 상상했다.


//음악은 말이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기 위해 그저 거기 있는 거라네.//


음악 속에 은둔하는 스승과 왕을 위한 음악을 하던 제자가 함께 연주하며 흘린 눈물. 키냐르의 말을 읽고 자신의 작은 방에서 혼자 흘린 독자의 눈물과 다른 것일까?


<파스칼 키냐르의 말>이 파스칼 키냐르의 철학을 읽는 책이라면 <세상의 모든 아침>은 들리지 않는 음악으로 그의 철학을 환영처럼 써나려 간 책이다. 말이 문자로 책이 되었지만 작가의 영혼은 언어로 규정될 수 없는 의식을 써 내려가고 있다. 철저히 고독 속에서 몸 저 밑바닥에서 온 침묵된 것silete의 카오스를 지나 첫 음attaca의 숭고함을 들려준다. 


알지 못했던 작가를 알고, 듣지 못했던 말을 들으면서, 읽는 것과 쓰는 것의 철학은 삶의 결연한 자세와 맞닿아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나의 아둔한 머리가 읽어낸 책들은 그 몸에 품은 질과 색이 천차만별이라 감히 이렇다 말하지 못하겠다. 쓰는 일 앞에 날마다 오그라드는 두 손은 부끄러워 내놓지도 않으련다. 다만 깊은 고독을 기꺼이 마주하고 의식의 깊은 곳까지 써 내려가는 작가들의 책을 읽을 수 있어 감사할 뿐이다.


그리 많지 않은 독자를 위해 자본의 권력에 굴하지 않고 책을 만들고 있는 이들에게 고마웠다. 나는 책 읽지 않는 이 시대가 슬프다. 책 속에 잠겨 인생을 통찰해보려는 의지조차 없는 세대가 안타깝다. 읽지 않는 이들에게 키나르의 말을 잠깐 들려주고 싶다. 


//키냐르: 정신은 뭔가 할 것을 찾고, 실제로 하는 것 같지만, 결국 머리를 푹 숙인 채 사회적 통합체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우물에서 물을 긷듯 알아본 것을 끌어내보지만, 결국 텅 빈 통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 텅 빈 곳은 자기 육신이 들어갈 구멍, 결국은 죽음이죠.


샹탈: 그렇다면 누가 자유로운가요?


키냐르: 읽기. 읽는다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 이전의 경험들의 독소가 가장 최근의 몸 속으로, 황홀경에 빠진 명사들 속으로 침투합니다. 읽힌 경험들이 지금의 경험을 심화하고, 타자 혹은 죽음이라는 벽면의 다른 쪽에서 따온 단어들이 지금의 단어들을 심화합니다. 왜냐하면 책 속에서 우리는 죽음 저 편의 생을 만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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