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륜 May 21. 2021

투덜이 작가의 다시 영국산책

빌 브라이슨의 영국산책 2


계시_를 받은 듯 브라이슨은 다시 영국 여행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15년의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온 영국은 변했다. 까칠한 할아버지가 되어 버린 세월이 야속한지 여행 내내 투덜거린다. 면전에서는 한 마디도 못하는 욕대사를 독백으로 처리하며 쉴 사이 없이 영국을 누빈다. 버스로 기차로 자동차로 그리고 걷는다. 긴 여정은 할배의 조건에 맞춰 남쪽 "빌어먹을 보그너"에서 시작해 이리저리 종횡무진하다 북쪽 "케이프레스"에서 마무리 된다.


브라이슨의 여행은 실하다. 여행기에 담고 있는 엄청난 지식을 다 소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편하게 읽다 끌리는 이야기에는 귀를 기울여 본다. 브리이슨의 책 맛은 부페식당의 접시여행과 비슷하달까? 이곳저곳 기웃기웃하다가 입 맛에 맞는 음식을 찾으면 부른 배를 끌고 한 접시 더 집중해서 먹어보는 거다. 이를테면 "에베레스트산의 이름은 산과 거의 상관 없는 이의 이름이며 발음도 잘못되었다"는 등의 이야기에 꽂힌다. 호브라는 시골 동네를 산책하는 데 이런 이유가 있었다니... 이 매력 때문에 브라이슨의 여행기는 빛이 난다.


"수십 년 동안 기억 아래 묻혀 있던 것들이 어느 순간 너무도 선명하게 떠오른 것은 대단히 특별한 일이다."


이전에 살았던 곳을 다시 가보는 브라이슨의 마음은 애잔해진다. 첫 직장 휴게실 한 구석에 1950년대 부터 모아져 있던 <우먼스 오운> 잡지 여섯상자. 그는 이 잡지들로 대영제국의 생활상과 문화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던 옛날을 추억한다. "그 해 여름, 나는 내 평생의 여름날들을 다 합한 것보다도 더 많은 것들을 배웠다."고 고백하면서...


우리의 스타 브라이슨은 이제 꼰대 티를 잔뜩 내며 사랑하는 영국의 변해버린 모습을 슬퍼하고 있다. 


"이제 이곳의 집들은 다시는 그 시절의 모습으로 되돌아가지 않을 것이며 한때 우리를 기쁘게 해줬던 것들도 다시는 눈길을 받지 못할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그런 것들에 더 이상 기뻐하지 않기 때문이다."


감성과 지성과 투정으로 버무린 그의 여행기는 언제나 만족스럽다. 흔한 여행기들처럼 사진 한 장도 없어도 생생하다. 문장으로 상상하고 문단으로 만끽한다. 참고로 500페이지, 물론 빡빡한 글자로. 난 이런 책을 읽으면 뿌듯하다, 책 값을 제대로 낸 기분이다.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브라이슨

매거진의 이전글 철 없는 이의 지중해 읽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