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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륜 May 28. 2021

사람은 식물과 같다

랩걸 / 호프자런



이 책은 나무의 삶과 과학자의 자전적 스토리가 어우러진 책이다. 


계절을 느끼고 휴식과 위로를 주던 나무를 다시 보게 만들고 우리의 삶과 닮은 부분에 동감을 불러 일으킨다. 과학 앞에 움츠러드는 문외한인 나도 그녀가 들려주는 나무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집 앞 은행나무를 다시 우러러 보았다. 


나무도 과학도 우리와 늘 함께 산다.


//사람은 식물과 같다. 빛을 향해 자라난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과학을 선택한 것은 과학이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기본적인 의미의 집, 다시 말해 안전함을 느끼는 장소로 내게 제공해준 것이 과학이었다.//


실험실에 몸을 담고 육체와 영혼이 무너지지 않게 지키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는 랩 걸. 그녀는 식물을 연구하기 위해서 전쟁을 위한 연구로 자금을 확보해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인다. 밤을 새워 연구하며 일을 사랑해도 일은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안다.


//과학은 나에게 모든 것이 처음 추측하는 것보다 복잡하다는 것, 그리고 무엇을 발견하는 데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운 인생을 위한 레시피라는 것을 가르쳐줬다.//


그녀는 학부에서 문학을 전공하며 병원에서 주사약을 공급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식물학전공자로 새로운 선택을 한다. 현실의 문제들에 맞닥뜨릴 때마다 소설과 시의 한 구절을 떠올리고 읊조리며 짐을 이겨내고 새롭게 힘을 낸다. 과학과 문학의 콜라보로 무거운 상황들 속에서 지혜를 찾아간다.


//선인장은 사막이 좋아서 사막에 사는 것이 아니라 사막이 선인장을 죽이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사는 것이다. 사막에 사는 식물은 어떤 식물이라도 사막에서 가지고 나오면 더 잘 자란다. 사막은 나쁜 동네와 많은 면에서 비슷하다. 거기서 사는 사람은 다른 곳으로 갈 수가 없어서 거기서 사는 것이다. 물은 너무 적고, 빛은 너무 많고, 온도는 너무 높은 상태. 사막은 이 모든 불편한 조건을 극대화해서 가지고 있는 곳이다.//


그녀는 과학자로 새로운 발견을 통해 부족한 자신이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경험을 한다. 그리고 새로운 사고방식, 세상을 식물들의 관점에서 보는 방법을 배운다. "식물의 세계에 우리가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의 전환은 자연이 마치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 처럼 착각하며 살았던 오만함을 깨우쳐주었다.


//씨방 하나를 수정시켜 씨로 자라는 데 필요한 것은 꽃가루 한 톨이다. 씨 하나가 나무 한 그루로 자랄 수 있다. 나무 하나는 매년 수십만 송이의 꽃을 피운다. 꽃 한 송이는 수십만 개의 꽃가루를 만들어낸다. 성공적인 식물의 생식은 드문 일이긴 하지만, 한 번 일어나면 초신성에 버금가는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


그녀는 출산 후 아이의 어머니가 되지 않겠다고, 아버지가 될 것이라고 결심한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알고 자연스럽게 해낼 수 있는 일이니까. 해결 불가능하기 때문이 아니라 관습에서 벗어나야 할 필요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매일 밤 땅 속 깊은 곳에서 물을 길어 올려 약한 어린 나무에게 나눠주는 단풍나무의 자식 사랑처럼,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을 아이에게 공급해주는 것으로 부모의 역할을 받아들인다. 관습적인 어머니가 아닌 공급은 부모 모두의 운명이니까.


//나와 아들이 너무도 다르기 때문에 아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지를 알아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아직까지도 그 답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삶에서 뭔가를 이루어 내기 위해 그토록 오랫동안 열심히 일해온 나로서는 정말로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는데 귀중한 것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는 경험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예전에는 나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달라고 기도했지만 이제는 내가 고마움을 아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랩 걸]을 읽은 후 자전거를 타고 만나는 모든 나무들이 사랑스러웠다. 헬멧을 쓰다듬어 달라고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 아래로 일부러 지나가기도 했다. 


책 읽고 떠나는 길은 새롭게 보인다. 좋은 책은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우리가 알고 반응하는 삶이란 너무도 좁았다는 것, 일깨워주는 좋은 책이다.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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