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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륜 May 29. 2021

불가지론자의 고백

왕국 / 임마누엘 카레르


태어났을 때 이미 카톨릭이었던 그는 신앙과 멀리 떨어져 살던 어느날 작가로서의 자부심에 기반을 둔 자신의 방어 시스템이 고장 났다는 것을 인정한다. 大母 자클린이 때가 왔다는 듯 그에게 성경을 건내주며 읽어보라고 한다.


//그리고, 너무 똑똑하지 않으려고 노력해 봐//

라면서.


그는 회심 후 3년 동안 복음서를 연구한다. 자신 안에 그리스도가 살기를 기도하며 한편으로는 이렇게 간절히 믿고 싶어 한다는 자체가 믿지 않는다는 증거는 아닐지 자문한다. 그는 왕국은 약하고 멸시 받고 결함 있는 것들이 모두 모여 있는 곳, 하지만 그리스도의 거처인 곳이라고 쓴다.


그러나 그는 1993년 부활절 아침 복음서 연구 노트의 마지막 페이지에 이렇게 고백하고 만다.


//주여, 이제 난 당신을 포기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날 버리지 마소서//


그는 결국 불가지론자가 된다.


이 책은 회의론자이자 불가지론자인 임마누엘 카레르가 2014년에 발표한 초기 기독교 역사를 재구성한 faction이다. 그는 복음서를 연구하면서 종교를 역사의 영역에 위치시켜 저자와 저술 의도 그리고 시대적 상황을 파헤친다. 사도행전과 누가복음의 저자인 누가의 시각을 따라 바울을 살펴보며 그들이 경험한 인간의 삶과 당시 역사적인 배경을 통과한다.


//내가 이 책을 쓰는 목적은 내가 더 이상 부활을 믿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믿는 이들보다, 그리고 그것을 믿었던 내 자신보다 더 잘 안다고, 더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나는 나 자신을 너무 두둔하지 않기 위해 이 책을 쓴다//


요세푸스의 <유대전쟁사>의 내용과 저술 배경, 그리스문학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인 자료들을 집중시키고 해체하면서 바울, 누가, 요한의 행적을 뒤쫓는다.


//내가 이 책에서 이야기하려 하고 있는 것은 어떻게 하나의 복음서가 써질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이다. 정경(正經)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는 또 다른 이야기이며, 그것도 못지않게 짙은 신비에 싸여 있다//


읽기를 추천하는 이유,


임마누엘 카레르의 저술능력이 너무도 뛰어나기 때문이다. 700페이지의 이 방대한 논픽션 소설은 기독교의 핵심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지시하고 있으며 그 배경과 역사를 통해 이해하도록 이끌고 있다. 그의 친구와의 대화, 대모의 충고와 삶의 이야기를 통해 신앙의 면모를 상징적으로 서술하면서 신앙과 삶의 괴리를 고민하는 인간의 한계를 통렬하게 고백하고 있다.


카레르는 온전한 인간이기 위해 다만 인간이기를 바라며 낙원보다 인간을 선택한 오디세우스와, 이 삶에서 유일하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여기서 해방되어 그리스도가 다스리는 곳으로 가는 것이라는 바울의 고백을 비교하며 서술한다. 나 외에는 아무 것도 모르며, <나>라는 것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는 자신과, 별 볼 일 없는 <나>를 가지고 있는 장점은 거기에 지나치게 집중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라는 친구 에르베와의 엄청난 차이처럼.


같은 이유로 좀 추천하기 꺼려진다. 제대로 잘 써진 책이 불가지론자로부터 탄생될 때 덮어놓고 불매운동을 시작하는 기독교계의 자신 없음 때문이다. 읽지도 않은 이들이(그들은 700페이지 책을 잘 읽지 않는다. 기독교역사책도 목침용이라 펼쳐보지도 않았을꺼다.) 성도인 너는 왜 이 책을 추천하냐고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추천이 있든 말든 책은 읽어야 한다. 읽지 않은 자 말하지 말라. 제대로 읽으면 작가의 고뇌와 불신의 끝이 신앙의 부제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오해는 금물이다. 이 책은 믿지 않게 된 자를 이해하려는 책이 아니다. 믿을 수 없는 이유를 증명하려는 책은 더더욱 아니다. 기독교인이라면 두려움과 고민의 안경을 쓰고 열심히 읽어볼 가치가 충분하다. 자신의 믿음이 신기하고 감사해진다. 모든 책의 해석은 각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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