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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륜 Jun 16. 2021

인간과 기계의 미래 생태계

통제불능 / 케빈켈리


#과학책읽기 

대장정은 일 년 육 개월 동안 이어졌고, 이 책은 코로나가 창궐할 때 시작해서 석 달 만에 끝냈다. 과학책은 혼자 노트하며 읽기에 급급해서 리뷰를 올리는 건 쉽지 않았다. 이 책은 감히 강추하며 리뷰를 올려본다. 구백페이지 쯤이야 하는 분들도 분명 계시리라. 나처럼 아둔한 문과머리도 읽어낼 수 있는 찐과학책이다. 


#미래생태계

1994년에 쓰여졌으니 책 속의 예언은 이미 도래. 알파고는 세상에서 가장 바둑을 잘 두니까. 사반세기가 지난 후에야 우리나라에서 번역되어, 칼 세이건 님이 <코스모스>를 50만부 정도 팔아낼 동안 고작 3,300여권이 독자의 손으로 넘어갔는데, 1000명 정도가 읽었으면 다행. 얼마전 중고 서점에 손 때 하나 묻지 않은채로 곱게 꽂혀있는 걸 확인. 좀 일찍 한국에서 출간되었으면 좋았을텐데 아쉽다.


#매트릭스 

워쇼스키 감독에게 영감을 준 책이라는 말이 수긍. 나도 읽으면서 계속 떠오르던 <스미스>의 까만 안경과 번쩍이던 이마. 저자 케빈 켈리의 주장처럼 제어하지 않아야 현명해질 인공생명을 믿을 수 있을까? 의심하는 우리는 인간이 모든 것의 주인이라고 믿는 무지한 오만의 존재는 아닌지. 생물학으로부터 논리를 추출하고 공학의 구조가 생명체로 도입되는 인공생명의 시대. 1994년에 바라본 시대는 이미 와 있다.


#인터넷 

1969년 미국 국방부가 핵전쟁 하에서도 안정적인 정보 교환을 위한 네트워크 연구에 착수한 것이 시초. 민간으로 풀어진 후 제어와 통제가 불능한 생태계가 되었다. 저자가 <통제불능>을 통해 계속 주장하는, 생태계의 창발(자기 조직화 self-organization 에 의해 단순한 구성 요소를 모아놓은 전체구조에서 새로운 특성이나 행동이 나타남)에 대표적인 현상이다.


#철학이야기 

과학이 나아갈 방향과 가져야 할 자세를 이야기 한다. 새로운 길을 걷고 있는 과학자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정신과 새로운 시도들에서 미래를 제시한다. 젊은(당시 그들의 나이로, 그들도 이제 중년을 넘겼을 듯) 과학자들은 작은 불편함과 질문에서 생태계를 바꿔갈 만한 진화의 패러다임을 쓰고 있다. 그 시도에는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를 창조하는 물리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생명의 원리와 사회 구조를 과학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융합의 영혼이 깃들어있다.


#예언서

늦게 출간되어도 지나간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과 미래의 이야기를 통찰하고 있다. 산업생태계, 네트워크경제, 전자화폐, 인공진화 등 제어의 미래를 예언하고 현재의 근거를 제시한다. 이사야가 메시아를 예언한 것 처럼, 예언서는 예언의 성취 후에 더 빛난다. 이사야서를 읽을 때 우리는 앞으로 다가올 심판에 대한 두려움으로 무장한다. 그리고 현재의 나와 세상에 조명한다. 예언서를 읽는 이유다. 


#신이되는아홉가지법칙 

이 책의 대미는 인공진화인데 '진화'라는 단어에 예민해지는 이유는 神과 自然의 영역을 종교와 과학으로 경계화한 이기적인 인간 때문이다. 우리는 神을 믿으면 창조와 진화의 갈등의 딜레마에 빠진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케빈 켈리가 말하는 신을 新이라고 읽었다. 물론 영어로는 God으로 쓰여졌을테지만. 결론을 다 알려주면 구백페이지를 읽은 것이 쫌 아까워지니까 여기까지. 


#과학책

서재에서 꾸역꾸역 읽은 책들 <코스모스> <빅히스토리> <종의 기원> <이기적유전자> <통제 불능>, 그리고 사이사이 끼워넣은 <알고리즘,인생을 계산하다> <떨림과 울림> <원더풀사이언스> 등의 여정. 나 과학잘알못에서 바뀐 것은 별로 없지만 생각의 전환은 시작할 수 있었다. 어제 오늘 일을 걱정하던 삶에서 미래의 지구를 상상하는 삶이 끼어들었다. 매일 아침 신문에서 과학뉴스를 확인하고 새로운 뉴스들을 스크랩한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던 분의 말은 이제 바뀌었다. 세상은 과학이다. 


덧붙임.

독서노트 한 권의 절반을 채운 내용들을 읽어보니 이 책은 진짜 괜찮구나. 읽기 정말 잘했어. 쓰담쓰담. 눈 앞에 닥친 일에 허덕이던 삶을 벗어나게 한 책. 어쩌면 그런 일들은 아무 것도 아닌 거였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생각 속에 자리잡고 자라가게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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