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륜 Jul 29. 2021

아하! 그래서 제비꽃이 많아졌구나.

여름에 읽으면 좋은 다섯 권의 자연책


나의 라이딩은 달리기보다 멈추기가 먼저였다.

서 있는 그 곳을 바라보기 위해 달려갔는지도 모르겠다. 산을 끼고 강을 따라 들판을 가로질러 달려가면 언제나 나무와 꽃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물이 아름다운 강가에 꽃들이 흐드러져 있으면 눈은 시원스럽게 뻗은 길에서 벗어나 자전거를 세워놓을 곳 찾기에 바쁘다.


내가 사진을 찍으려고 꽃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남편이 어느새 저 만큼 떨어진 곳에서 기다려준다. 이제 우리는 가다, 서고, 보면, 기다린다. 꽃의 이름을 불러주어야 내 맘에 남을 것 같아 검색도 빼놓지 않는다. 다시 안장에 올라타고 페달을 돌리면서 이름을 외운다. 개양귀비, 금계국, 석잠화, 수레국화, 애기똥풀…. 식물의 이름을 아는 건 몇 개 없었고 궁금해도 다시 달려가야 해서 언제나 아쉬웠다.


꽃잎도 나뭇잎도 사라진 겨울에는 헐벗어도 늠름하게 서있는 나무들이 궁금했다. 봄에 산책할 때마다 만나는 나무들이 새순 올리기를 기다리며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우리 동네에는 뽕나무와 버드나무 그리고 포플러가 가장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자연책을 읽은 후 한 그루의 나무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아는 만큼 보이는 진리는 자연으로 나를 이끌어주었다.


나무 사이에 숨어있는 새들의 지저귐에 귀를 기울이고, 뜨거운 햇살에 등을 내어주고 작은 곤충들을 들여다보았다. 나무아래 풀잎에서 매미의 탈피를 찾아냈을 때 내 마음은 어린아이가 되었고, 새롭게 피어나는 꽃의 종류와 특징을 찾아보면서 행복했다. 코로나의 시간 동안 읽은 자연과학책은 살아있는 생물이 주는 기쁨을 가르쳐주었다. 여기에 소개하는 다섯 권은 지난 한 해 동안 나의 마음을 지켜낸 백신과도 같은 책들이다.




『길고 긴 나무의 삶』 피오나 스태퍼드(Fiona Stafford) / 클
문학, 신화, 예술로 읽는 나무 이야기


나무는 꽃보다 가깝다. 꽃이 한 순간을 누리는 희열이라면, 나무는 역사로 나이테를 그리는 세월이다. 민족을 상징하는 나무도 있고, 신화 속에서 나무로 환생하는 영혼도 있다. 이 책은 나무에 대한 개인적인 탐구다. 잘 알려진 열여섯 종류의 나무를 역사와 문화 속에서 찾아낸 이야기로 흥미롭게 소개한다. 어느 곳에서나 만나기 쉬운 버드나무가 얼마나 바람둥이인지도, 젊음을 상징하는 사과나무가 쉽게 노화되어 삼십 년 이상 살기가 쉽지 않다는 것도 가르쳐준다.


나무는 모든 세월을 견디며 계절을 따라 환생하는 변화의 생명을 지녔다. 겨우내 죽은 듯 고요하게 눈보라를 맞고 서 있다가 아무도 모르는 밤 사이, 모두의 관심이 사라질 때 일한다. 마른 가지에 숨을 띄우고 싹을 올리며 기운을 끌어올린다. 나는 손톱만큼 올라온 나무의 순을 사랑한다. 동면의 긴 시간을 조용히 끝내고 서서히 움직이는 그 생명에 늘 경의를 표한다. 꽃이 핀 후에 몰려드는 관심은 너무도 당연하여 서글프기도 하다. 여름은 나무의 계절이다. 나뭇가지가 바람과 푸른 춤을 출 때 나무 그늘 아래로 지나가면, 나는 슬쩍 마스크를 내리고 긴 숨을 들이켜본다.


이 책은 읽은 후에는 길 가의 가로수가 다르게 보인다. '이 나무 이름이 뭘까?' 궁금해지면 이 책을 찾아보게 된다. 친구와 걸으며, “미루나무 꼭대기에 조각 구름 걸려있네~” 흥얼거리다가 “미루나무가 바로 이 포플러 나무야”하고 아는 척 할 수 있다.




『식물의 책』 이소영 / 책읽는수요일
식물세밀화가 이소영의 도시식물 이야기


만나는 나무들과 새롭게 피어나는 꽃들의 이름을 불러주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 ‘썸을 타려면 공을 들여야지’하면서, 식물과 연애를 시작하는 기분으로 읽은 책이다. 작지만 알차고 다정하기까지 하다. 『길고 긴 나무의 삶』이 멀리서 바라보고 훔쳐본 무뚝뚝한 남자 같다면, 『식물의 책』은 손잡고 산책 가자고 다정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식물과 연애하는데 진도가 꽤 나갔다고 할까?


세밀화로 정성스럽게 그려진 식물들의 이야기가 작은 책 속을 알차게 채우고 있다. 이 책에 소개 된 식물은 대부분 우리 주위에서 흔히 만날 수 있다. 길 바닥에 솟아나오는 민들레도 정원에서 곱게 자란 튤립도 모두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 책에 소개된 제비꽃 그림을 보고 나는 우리동네에는 두 가지 제비꽃이 모두 개미 때문에 많아졌다는 것을 알았다. 토마토와 딸기이야기를 읽고 장보러 가면 오늘 들어온 과일은 무슨 품종인지 찬찬히 살펴보게 된다.


저자는 자신이 그린 세밀화와 함께 식물의 라틴어 속명을 가르쳐주고, 연결되는 뜻과 원산지에 대한 이야기를 친절하게 설명한다. 씨와 열매에 대해서도 자세히 소개되어 있어서 간단한 식물도감처럼 늘 곁에 두고 찾아보면 좋다. 아름다운 세밀화를 감상하는 것도 책을 읽는 큰 즐거움이다. 식물을 키우기 시작한 사람들에게는 더욱 사랑스럽고 유익한 책.




『야생의 위로』 에마 미첼(Emma Mitchell) / 푸른숲
산책길 동식물에게서 찾은 항우울제


작가는 우울증환자다. 자신의 오두막집 정원과 주변의 숲을 산책한다. 때로는 비를 맞고 진흙탕에 빠져가며 철새무리를 보러 다닌다. 에너지가 넘치기 때문이 아니다. 살기 위해 야생을 찾고 동식물의 생명력을 느끼며 자신에게 남아있는 생명의 불씨를 지펴간다. 또한 작가는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동물학을 전공한 박물학자이다. 동식물에 대한 지식으로 탄탄한 책이다.


채집 사진들이 아름답다. 디자이너이며 창작자이기도 한 작가는 채집한 식물과 화석들을 늘어놓고 살펴볼 때 빵을 반죽할 때와 비슷한 상태가 된다고. 위안을 주고 우울을 거둬가고, 무엇보다 찾아냈을 때 느꼈던 만족감이 무엇보다 크다고 한다. 사계절마다 다른 야생의 스케치가 사진과 함께 조화롭게 편집된 좋은 책이다. 자연의 변화와 함께 우울증을 이겨내려는 작가의 투병도 눈물겹다.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고 자신의 병을 관찰하는 자세로 이겨내는 모습을 읽으며 작가에게 마음으로 격려를 보내게 된다.


가까운 산이나 들로 산책을 꾸준히 즐기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마음에 아픔을 가지고 견뎌내려고 애쓰는 친구가 있다면 선물하면 좋겠다. 이 책을 읽은 후 나의 산책은 풍요로워졌다. 걷다 보면 어느새 뭔가 들여다 보고 있다. 오늘은 해당화를 보았다. 해당화의 열매가 꼬마사과처럼 생겼다는 걸 처음 알았다. 나무에 꽃보다 열매가 훨씬 많다. 여름이 왔다.




『매혹하는 식물의 뇌』
스테파노 만쿠소(Stefano Mancuso), 알렉산드라 비올라(Alessandra Viola) / 행성B이오스
식물의 지능과 감각의 비밀을 풀다


사람들은 자기가 제일 똑똑한 줄 안다. 인간 중심의 사고는 많은 것을 잃게 만들었다. 만물의 영장으로 진화되었다는 인간은 이제 눈 앞의 것을 편하게 얻으려는 방향으로 퇴보하고 있는 것 같다. 식물은 사람들 발에 짓밟혀도 살아남는다. 지구에서 가장 오래 사는 생물이자 가장 많은 생물이다. 인간과 식물 중 누가 더 중요할까? 인간이 사라지면 지상낙원이 돌아올지도. 식물이 사라진다면 바로 지옥이 아닐까.

 

뿌리 깊은 나무도, 사막에서 살아가는 선인장도 모두 지성을 가졌다. 식물은 역동성이 가득한 뿌리라는 아름다운 뇌로 집단 지성을 발휘하고, 가지와 잎, 꽃 등 모든 개체들이 분산지능으로 서로에게 정보를 전달한다. 땅 위에 발을 딛고 살아도 귀를 막고 사는 사람보다도 식물의 귀는 밝다. 온 몸으로 듣는다. 진동으로 느끼고 뿌리를 통해 의사 소통을 하며 '친족과 이방인' '친구와 적'을 구분한다. 식물은 계획이 다 있다.


이 책을 읽으면 열정적인 이태리 식물학자님의 쏙쏙 귀에 들어오는 강의를 듣는 것 같다. 편집도 좋고 번역도 훌륭하다. 설명을 위한 삽화들도 친절하고, 필요한 영문 단어들이 함께 편집되어 이해도가 높다. 소소한 부분에 신경을 많이 쓴 좋은 과학책이다.




『숲에서 우주를 보다』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David George Haskell) / 에이도스
과학과 시를 넘나드는 자연문학의 새로운 장르


아는 만큼 보인다. 지식을 소유한 자의 관찰은 철학을 이루지만, 무지한 산책자는 순간의 감동에 기대어 하루를 살아낼 뿐이다. 나무의 이름도 모르는 나의 호기심은 감상의 우물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자주 질척거렸다. 숲에서 우주를 본 생물학자의 일기가 복음서처럼 다가온다. 딱딱한 교리가 아니라 시처럼 전해주니 공원의 가로수가 숲으로 변하는 듯하다.


우리의 눈은 손바닥 위에 놓인 화면 속에 붙잡혀 있다. 그 속에 볼 것이 너무 많아서 숲을 보지 못한다. 생물학자인 작가는 숲에 앉아 쉴 수 있는 작은 바위를 자신만의 만다라(曼陀羅)로 만들었다. 자주 이 곳을 찾아와 한 해 동안 변화되는 숲을 관찰했다. 하늘과 맞닿은 임관(林冠), 철 마다 울어대는 새들, 부식(腐植)의 엔진이 된 균류에 이르기 까지. 모기에게 기꺼이 자신의 팔을 내어주고 돋보기로 관찰을 허락 받는 혈투도 감내한다. 그리고 숲과 갈라져있던 장벽들을 한 꺼풀 벗겨낸다.


달팽이도 우리처럼 볼까? 달팽이에게 “본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내 몸과 달팽이의 몸은 모두 탄소와 흙의 말랑말랑한 덩어리로 만들어졌는데, 내 의식처럼 달팽이도 생각이 있지 않을까? 질문의 과정은 과학의 눈을 열어준다. 작가의 만다라에 함께 앉아 달팽이의 걸음을 느끼며 축축해진 공기의 화학성분도 알고 나니 나무를 더 오래 올려다보게 된다. 이 책은 늘 즐기던 산책과 등산을 자연과 나를 깨달아가는 성찰의 시간이 되도록 이끌어준다.


덧붙임
위의 글은 <월간길벗> 7월호를 위해 쓰여졌습니다.

리딩라이더의 마지막 글입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여러분, 감사해요. 덕분에 힘이 많이 생겼습니다.

새로운 매거진에서 뵙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왜 우리는 언제나 너무 늦게 사랑하는 걸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