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점, 그 애매하고도 난감한 점수에 대하여
오랜만에 글을 쓴다. 기록을 살펴보니 브런치에는 거의 올해 처음으로 글을 쓰는 듯하다. 올해 달력이 고작 2장 남은 이 시점에서 말이다. 올해 브런치가 내게 보내는 알림은 '글을 좀 써보세요'하는 독려의 알람뿐이었다. 그럼에도 글쓰기 버튼을 누를 수 없었던 그 이유인즉슨 올해 나의 인생에 큰 분기점이 있었다. 관계의 진전과 전환 그 사이를 부단히 달리느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내 인생에는 없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이벤트였기에, 그 과정에는 무수히 많은 감정이 오갔다. 둘이 되는 과정에 대한 얼떨떨함, 계속 놓이는 선택지에서 오는 스트레스, '인생에 한 번뿐인', '이왕 하는 거'의 날개를 단 옵션 추가금 파티에 대한 당혹스러움, 그 와중에 일상을 잘 해내야 하는 덤덤함, 또 축하와 부러움 그 사이에서 전해지는 엄청난 감사함과 실망스러운 행동에 대한 허탈하고 울적한 감정까지 말이다.
그야말로 감정의 폭풍이었다. 특히나 이런 언덕을 넘으며 서로 오해도 하고 함께 의지도 하게 되는 상대에 대해 느끼는 감정도 컸다. 큰 고마움과 때론 서운함, 어쩔 땐 벅참까지 말이다.
그리하여 중간중간 이런 감정과 순간들을 기록해 놓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너무 감정에 치우쳐 주접으로 끝나버리는 글이 될까 봐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느끼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흰 바탕의 페이지를 띄우는 일이 꽤나 오래 걸렸다. 이제야 큰 이벤트들을 어느 정도 지나와 바뀐 일상에도 적응을 해가고 있다. 감정들이 대체로 소화되며 안정적으로 쌓였다.
그러는 사이 나의 강사로서의 연차도 한 단계 더 쌓였다. 최근 어머니들과 통화를 하며 나에게 직방으로 던져진 숙제가 하나 있다. 바로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더 동기부여 시킬 수 있을까?'에 대한 것이다. 사실 본인이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도 분명 있긴 있다. 드물긴 하지만 있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엄마 손에 등 떠밀려 논술 학원에 앉아 있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정말 운 좋게도 아이가 학원 수업을 '그래도' 재미있어한다. 만화책만 보던 아이인데 그래도 요즘은 '줄글' 책도 읽으려고 한다. 하는 정도면 감사하다.
문제와 고민은 학원에는 어찌어찌 오지만 여전히 '하기 싫어'하는 아이들이다. 혹은 수업을 적당히는 따라오는데 '실력'이 향상되지 않는 아이들이다.
오늘은 '실력'이 향상되지 않는 아이들에 대해 좀 더 집중적으로 다루어보고자 한다.
일단 실력이 향상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알아보자. 공부에 필요한 것을 '공부 머리'와 '노력' 2가지 요소로만 본다면, 다음의 3가지 이유 때문일 것이다.
1. 친구의 공부 머리가 좋지 않다.
2. 머리는 좋으나 열심히 안 한다.
3. 머리도 안 좋고 열심히도 안 한다.
머리도 좋은데, 열심히까지 하면 너무나 감사한 일이므로 그건 제외하도록 한다.
2번 선택지는 공부라는 것이 처음 시작되던 옛날부터 어머니들의 대표적인 자녀 방어 멘트일 것이다.
"아우~ 우리 애가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 해서 그래요~"
나는 이것을 머리는 있으나 딱히 의욕이 없는 경우로 바꾸어 말해보고자 한다.
현장에서 내가 그렇게 느낀 이유는 아무래도 초등학생들이기 때문이다. 대학교를 진학하려는 생각이 있는 고3은 공부하지 말래도 공부를 할 것이다. 고등학생 정도만 되어도 '공부의 필요성'은 기본으로 장착이 되어 있으니 그 부분을 납득시킬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초등학생들은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가 납득이 되어있지 않은 친구들이 많다. 수없는 학원 뺑뺑이를 다니는 아이들이 종종 내게도 묻곤 한다. "선생님, 공부는 왜 해야 해요?"
나는 열심히 대답한다. 한 때는 아이들 눈높이에서 6 why기법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답변은 아이들이 직접 하도록 하면서 이어갔다.
1 why. 공부를 왜 해야 할까?
아이들은 대답한다. 좋은 대학교 가려고요~
2 why. 좋은 대학교를 왜 가야 할까?
아이들은 대답한다. 좋은 직장 가려고요~
3 why. 좋은 직장은 왜 가야 할까?
아이들은 대답한다. 돈 많이 벌려고요~
4 why. 돈은 왜 많이 벌어야 할까?
아이들은 대답한다. 그래야 음식도 사고 집도 살 수 있어요~ (여기서는 각양각색의 이유들이 나왔지만, 너무 장난스럽거나 개인적인 이유는 제외하고 적당히 공감할 수 있는 선에서 답변을 골랐다.)
5 why. 음식도 살 수 있고, 집도 내가 원하는 것을 살 수 있으면 어떨까?
아이들은 대답한다. 좋아요~ 행복해요~
이런 식으로 납득을 시켜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초등학교 아이들은 와닿지 않는다. 왜? 불우한 가정이 아닌 적당히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는 친구들의 경우, 당장은 부모님이 필수로 필요한 것을 모두 제공하기 때문이다. 본인이 원하는 기호품을 갖지 못할지언정, 살아가는 데 큰 결핍은 없는 상태이다. 그렇기에 아이들은 와닿지 않는다. 결국 딱히 공부의욕을 못 느낀 채로 학원에 다니는 상태가 된다.
물론 때때로 승부욕이 무척 엄청나거나 하는 등 개인적인 기질 자체가 남달라서 열심히 하는 친구도 있다. 친구에게 지기 싫어서, 혹은 내가 답변을 못하는 게 창피해서 등 이런저런 이유로 말이다.
하지만 그런 단계까지 넘어서서 친구에게 이기는 것도 글쎄, 지는 것도 글쎄, 초등학생 입에서 '꿈은 돈 많은 백수'요가 나온다면 말 다했다. 이미 나른한 경지에 오른 친구들이 많다.
이런 친구들은 어떻게 회유하면 좋을까? 일단 유명한 보상 시스템인 당근과 채찍을 살펴보자. 당근은 칭찬을 주는 방법이다. 채찍은 혼내거나 겁을 주는 방법이다.
사실 나는 채찍의 방법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부정적 동기부여보다는 이왕이면 '긍정적 동기부여', 본인이 진정 필요를 느껴서 하는 쪽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물론 채찍을 잘 쓰시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나의 채찍은 아이들에게 잘 통하지 않는다. 채찍의 방법을 효과적으로 잘 수행하지 못하는 탓에 나는 어쩔 수 없이 당근 쪽으로 방향으로 틀어본다.
하지만 또 도저히 당근을 줄 만한 것도 못 찾겠을 때 나도 의욕을 잃는다.
애매하고도 난감한 점수, 63점을 받아 든 학부모님이 나에게 물었다. 아이 실력이 바로 늘지 않아서 의아함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이제는 좀 선생님에게 여쭤봐도 될 것 같다.
"대체 아이의 실력이 왜 늘지 않을까요?"
효과적 당근과 채찍을 사용하지 못한 나는, 저에게도 주어진 숙제네요. 좀 더 고민해 보겠다. 아이에게 좀 더 피드백을 정확하게 말해주겠다. 등으로 상담을 마무리 지을 수밖에 없었다.
열심히 해야 함이 납득되지 않을 때, 칭찬도 채찍도 딱히 효과가 발휘되지 않을 때, 공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초등학교 아이들에게는 대체 어떤 방법이 좋을까? 혹시라도 가르쳐줄 분들이 계시다면 얼마든지 댓글을 남겨주셔도 좋다.
학령인구가 꾸준히 줄고 있어 내가 대체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존적인 고민도 전문성에 대한 고민과 함께 자라나는 이 시점에서, 그래도 "아이가 참 선생님과 선생님 수업을 좋아했는데 영어와 수학에 더 집중하게 되면서 아쉽게 논술 학원을 그만두게 되었네요. 그동안 너무 감사했어요. 앞으로도 좋은 선생님으로 성장하셔요~" 하는 마지막 수업을 마친 학부모님의 말씀이 그래도 꽤나 오늘 하루를 따뜻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