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절개를 결심하다

출산의 두려움이 엄습하다

by 하나둘셋


나의 출산 예정일은 4월 초. 이제 출산 D-DAY가 언 20일 대로 떨어져 가는 시점이 왔다. 지금은 본격적인 휴직을 시작했지만 임신 초기 근무를 다닐 때 같이 일하던 동료 선생님이 임신의 기쁨이 더 큰 지, 출산의 두려움이 더 큰 지 물어봤었다. 그때는 출산의 두려움이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이유인즉슨 꽤나 먼 이벤트였기 때문이다. 임신 초기에는 당장 유산기가 있다는 말을 듣고 몸조심에 유념해야 했으며, 또 안정기가 된 중기 이후엔 육아용품을 알아보고 준비하느라 바빴다. 그 와중에 일을 해내야 했으므로 출산의 두려움을 느낄 새가 없었다는 말이 좀 더 정확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이제 육아용품 준비도 어느 정도 끝내고, 컨디션 난조가 될까 봐 걱정되던 3월 1일 마지막 수업까지 마무리를 잘하고 나니 요즘은 꽤나 한가한 시간도 맞이하게 되었다. 첫째가 있는 경산엄마들의 조언은 '지금 마지막으로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 잘 즐기라'였지만, 점점 디데이로 접어들며 이제야 출산의 두려움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먼저 진통에 대한 걱정이었다. 진통이 5분 ~ 7분 간격으로 오기 시작하면 병원을 가야 한다는데, 일단 진통을 겪어본 적 없으니 내가 과연 이게 진통이라는 걸 알아챌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있었다. 혹은 너무 아파서 혼자서 갈 수 없는 정도일까 걱정되었다. 또 중간에 이사를 하게 되면서 기존 다니던 병원과 거리가 멀어졌다. 대중교통으로는 대략 1시간, 택시로는 30분 거리이기에 그 아픈 와중에 병원을 잘 갈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감도 생겼다. 출산은 아기와 나의 건강이 연관되어 있다 보니 더더욱 신경이 쓰였다.


그러다 보니 최근 약간의 무력감을 느꼈었다. 물론 철저하게 정보를 알아보며 '대비'는 할 수 있다. 하지만 갑자기 양수가 터졌다거나 하는 등의 위급상황을 들으며 두려움과 불안감은 점점 더 나를 늪으로 이끌었다. 그리하여 남편 퇴근 시간에 맞춰 장을 보고 밥을 해주는 일상에도 변화가 생겼었다. 배달을 시켜 먹거나 남편에게 오늘은 밖에서 저녁을 사 먹자 하는 날이 생겼다. 몸이 점점 무거워지기도 했고 말이다.


그렇게 막달 검사 날이 다가왔다. 막달 검사는 산모가 아이를 잘 낳을 수 있는 안전한 상태인지를 확인하는 검사이다. 심전도 검사, 소변 검사, 아기 초음파 검사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날 의사 선생님이 진료한 나의 상황은 다음과 같았다.


1. 골반 큰 편이 아님

2. 아이가 목에 탯줄을 한 바퀴 감고 있음.

3. 36주에 이미 아기 몸무게 3kg 넘음.

4. 아기 머리가 큰 편


1의 상황 : 나의 엄마도 골반이 큰 편이 아니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엄마의 증언에 따르면 나를 낳을 때 거의 10시간 넘게 진통하다가 낳지 못해서 결국 제왕 수술을 했다고 했다. 심지어 나는 그때 우량아도 아니었으며 몸무게 2.5kg도 넘지 않는 미숙아를 간신히 면하는 정도였다. 신체적 조건의 불리함을 들은 이상 엄마의 이력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2의 상황 : 의사 선생님은 약 10명 중 1명 꼴로 이런 상황이 발생한다고 했다. 검색을 해보니 2-3바퀴는 위험할 수 있어도 1바퀴 정도 감고 있는 건 일반적 상황이라는 검색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의사 선생님 말에 의하면 내가 골반이 작은 편이기 때문에 탯줄을 목에 감고 있는 상태로 출산을 하다 골반에라도 끼여서 상황이 길어지게 되면 아이에게 산소 및 혈액 공급이 안 될 수 있어 위험한 상황이 될 수 있다고 하셨다. 어떤 병원에서는 아이가 목에 탯줄을 감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 무조건 제왕절개로 결정한다고도 했다. 그러나, 자연분만을 아예 시도 못 할 정도는 아니라고 나의 의견이 중요하다고 말해주셨다.


3의 상황 : 나의 경우 임신성 당뇨가 있는 편이다. 그리하여 당 조절에 따라 아기에게 너무 많은 당이 가면 위험하므로 나름 주의를 기울였다. 매일 참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되도록 건강하게 먹으려 식이요법을 했고, 아이스크림과 같은 단순 당을 멀리하려 했다. 그리하여 32주까지는 그래도 아기가 2kg를 갓 넘은 몸무게로 나름 평균치에 있었다. 그러나 32-36주 사이엔 조금 고삐가 풀렸었다. 설날이 있었으며, 태교 여행도 다녀왔다. 달달구리 및 과일을 양껏 담아 뷔페를 즐긴 날도 있으며, 배스킨라빈스에서 새로 출시되었다고 하는 두바이에서 온 엄마는 외계인 아이스크림도 사이즈 업해서 야무지게 먹어주었다. 그랬더니 36주에 갔을 땐 4주 만에 1kg가 자란 것이다. 의사 선생님도 지금까지의 진료에서 아이가 항상 큰 편에 속하긴 했지만, 그래도 정상 범주라고 말씀해 주시더니 36주엔 꽤나 크다며 난산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셨다. 36주의 아기 몸무게 정상범위는 2.5kg에서 2.6kg라고 하셨다. 그러나 나의 경우 이 상태로라면 마지막 주에 최소 아기 몸무게가 3.5kg에서 4kg까지도 넘을 수 있다고 하셨다.


결국 남편과의 상의 끝에 제왕절개를 결정하게 되었다. 사실 나는 자연분만파였다. 그리하여 지금의 병원도 TV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자연주의' 병원으로 알려져 있어 택하게 된 것이었다. 심지어 내가 다니는 지금 병원은 산모들의 빛이라 알려진 무통주사도 잘 놔주지 않는다고 했다. 그 이유인즉슨 무통주사를 맞게 되면 산모도 아기도 통증이 사라지는데, 그러면 아기도 나올 생각이 없어진다는 거였다. 산모가 통증을 느낄 때, 아기도 고통을 함께 느끼므로 출산은 엄마와 아기의 합동 노력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무통 주사는 아기의 노력까지 없앨 수 있으므로 지양하는 것이었다. 처음엔 다소 놀랐지만, 그래도 그런 철학이 있는 병원이라 택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모든 상황을 종합했을 때 아무래도 제왕절개 선택지가 안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수술 날짜를 잡고 집으로 귀가했다. 그날부터는 무기력이 사라졌다. 그동안 자연분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무력감이 수술 날짜를 잡고 나니 온전히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걷힌 것이다. 다시 밥을 짓고, 자연분만에서 제왕절개로 바뀐 상황에 대한 준비물을 챙기고, 글을 쓴다.


가끔 배를 치는 것이 아닌 뱃속에서 아기가 뭔가를 꽉 움켜쥐는 느낌이 종종 있었다. 출산 설명을 해주는 어플에서 뱃속에 있는 아기에게 가장 재미있는 장난감은 탯줄이라는 글을 봤었는데, 막달 검사를 받고 난 후에 아마 아기가 탯줄을 움켜쥐고 노는 게 나에게 그렇게 느껴진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탯줄을 이렇게나 열심히 갖고 노는 아가의 모습은 어떨까?